'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163건

  1. 2015.11.16 가만히 잡는 손
  2. 2015.11.12 신호를 보내는 몸
  3. 2015.09.10 졸린다

가만히 잡는 손

2015. 11. 16. 02:01 from 그래서 오늘

주말마다 강의가 있어서 대구에 내려간다. 엄마, 아빠는 가게가 바빠서 내가 내려가도 시간이 없어서 같이 놀지는 못한다. 일요일에 쉬기 때문에 토요일 저녁을 종종 같이 먹는 정도이다. 어제는 오랜만에 엄마, 아빠랑 저녁을 먹었다. 생일을 맞아 저녁을 쏜다고 했던 약속을 지켰다. 


엄마는 내가 내려왔다고 전화를 하면 냉장고에 뭘 뒀으니 먹으라고 한다. 근데 그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을 알고 맞춰서 둔다. 어제는 곶감이었다. 곶감만 보면 눈을 떼지 못하는데 엄마는 그걸 까먹지 않았다. 중국산 곶감이 많고 국내산 곶감도 맛없는 게 많아서 곶감을 살 때 신중하게 고르는 편인데, 엄마가 사둔 곶감은 엄마 옆 가게 할머니의 친구가 집에서 직접 만든 곶감이었다. 완전 고퀄리티에 엄청 싸게 팔아서 얼른 사왔다고 했다. 소량이라서 순식간에 다 팔렸다고 한다. 엄마가 곶감 사뒀다는 이야기에 수업 내내 집에 가서 곶감 먹을 생각만 했다. 


엄마랑 같은 방에서 잤다. 방이 건조해서 자고 깨기를 반복했다. 아침 무렵 옆에서 누워있던 엄마가 내 오른손을 가만히 잡았다. 잠결인데도 따뜻함이 전해졌다. 그리고 손을 놓지 않고 한참 있었다. 기도하나보다. 그러고 나는 그대로 잠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그 장면을 떠올려봤다. 아기였던 둘째가 어느새 자라서 이렇게 컸구나라고 생각하며, 엄마는 자는 나를 봤을 것 같다. 그렇게 상상하니 나도 아기였다가 순식간에 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정말 친구처럼 이야기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친구라 치면, 나에게 이렇게까지 잘해준 친구는 없었다. 이제는 내가 엄마, 아빠의 제일 잘해주는 친구가 되고 싶다. 남은 시간동안. 후회가 없도록. 



Posted by cox4 :

신호를 보내는 몸

2015. 11. 12. 00:46 from 그래서 오늘

오후부터 왼쪽 골이 아프다. 두통. 내가 제일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고통이다. 지끈지끈하게 머리가 아파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아침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잠이 부족하여서 30분만 자고 일어나 일을 하고, 저녁엔 강의를 들으러 가려고 했다. 알람을 맞추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울먹이면서 일어난 일을 설명하는데, 나도 덜컹 가슴이 내려앉았다. 집으로 오라고 하고 일단 보일러를 틀었다. 마음이 추울테니 방이라도 따뜻해야 한다. 그리고 물을 끓였다. 따뜻한 물을 주어야겠다. 그리고 또 뭘해야 하지. 종종거리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출구가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 뇌가 숨을 쉬지 못한다. 나의 일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생각들이 복잡하게 들이닥쳤다. 과부하다. 두통시작.


엄마도 두통이 있었다. 평소엔 괜찮지만 뭔가 근심이 생기거나 힘들면 두통으로 바로 넘어간다. 그걸 닮았다. 출구가 없는 문제를 잡고 끙끙 앓던 20대 초반은 자주 두통이 왔고 정말 싫었다. 그렇다고 일상 생활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괴로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친구가 가고 나도 강의를 들으러 갔다. 강의를 듣는 중엔 괜찮았는데 마치고 집으로 오니 다시 콕콕 두통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내면을 읽는 것이나 마음을 다스리는 법에 관심이 많은 것은 이 두통 때문이었다. 주로 내면의 문제로 두통이 시작 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고, 두통이 한 번 시작되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에 마음의 평안을 위해 애써왔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내 책임을 넘어서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가급적이면 어떤 상황이 닥칠 지 미리 예상해 준비하려고 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20대 후반부터는 두통의 횟수가 많이 줄었다. 그래도 두통이 오면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거나, 머릿 속에서 문제를 일단 떠나보내려고 하거나, 잔다거나, 걷는다거나 하는 방법을 취했다.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글쓰기다. 그 문제의 상황에 대해서, 그리고 나의 복잡한 감정에 대해서 그대로 적어나가다보면 선택해야 할 것과 포기해야 할 것이 보인다. 그러면 선택지 중에 장단을 따져서 선택을 하거나, 뭔가 노력을 해야 할 것의 목차를 적어보거나 과감히 포기하기로 마음 먹거나 하면서 나름의 결론을 낸다. 그렇게 한바탕 적고나면 두통이 조금 누그러진다. 숨 쉴 구멍이 생긴 것이다. 


지금도 그래서 적고 있다. 무엇이 이렇게 나를 짓누르는지는 조금 더 살펴봐야겠다. 친구에게 닥친 상황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일단 잠을 자야겠다. 

Posted by cox4 :

졸린다

2015. 9. 10. 01:08 from 그래서 오늘

새벽 첫 차를 타고 나가 촬영을 했다. 11시쯤 집에 와서 잠시 쉬고 다시 오후 인터뷰 촬영. 한 사람의 깊은 이야기를 값도 치르지 않고 들었다. 등 언저리에 떨어져 있던 기억이 꿈틀댔다. 들은 말을 소화하기 위한 움직임. 매번 비슷한 이야기를 하지만 할 때마다 다시 마음이 움직이는 친구와 저녁을 먹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확장된 마음이 다 접히지 않는다. 잠은 쏟아지는데 눕지 못하고 메모를 하고있다. 요즘 김소연 시인의 <수학자의 아침>이라는 시집을 한 권 들고 다닌다. 전에는 읽어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요즘에는 아주 조금 읽힌다. 몇 문장에 이렇게 많은 감정을 싣다니. 시인의 삶은 나와는 다를 것이다. 나의 속도와는 다를 것이다. 이렇게 새벽에 시작해 눈을 껌벅껌벅하면서도 잠들고 싶지 않은 나의 욕망과는 다를 것이다. 그래서 읽는다. 그래서 삼킨다. 더 많이 삼키고 더 가만히. 비로소 착지. 전원 off.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