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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25 인생은 꿈, 꿈은 인생 5
버스 맨 뒷자리, 30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일어나서 버스노선을 본다. 그 때 낭랑하고 똑부러지는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오른쪽 귀로 들어와 박혔다.

"엄마, 목말라, 물줘."

너무도 똑부러지는 목소리. 다섯 살 정도 되어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찰랑찰랑한 단발머리에 짧은 앞머리. 생긴 것도 오밀조밀. 머리띠를 벗었다가 다시 끼는 모습이 참 야무지다. 아이들은 언제부터 목마른 느낌을 인식하고, 목마르다고 표현하게 되는 걸까. 생각에 빠져있는데, 아이가 영어로 노래를 부른다. 그 유창한 발음에 또 한번 놀랐다. 그 엄마가 영어로 몇 마디 한다. 그녀 역시 유창하다. 부럽다. 내가 아이를 기르게 된다면, 그래도 영어는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하고 싶다. 학원에 억지로 보내지 않고 그렇게 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결국 유학인가 이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 들려오는 아이의 노래 마지막 구절.

"(영어노래;).....Life is dream."
그리고 덧붙이는 조숙한 목소리를 가진 아이의 해석.
" 꿈은 인생 같은거야."
"하하. 인생이 꿈같은 거야."
엄마가 수정해준다.
"인생은 꿈같은 거야."

나와 같은 곳에 내리는지 아이와 엄마가 버스 문 앞 자리에 앉았다. 엄마가 내리기 전에 카드를 단말기에 대자, 그 때 타는 사람들의 요금을 엄마가 내주는 줄 알았는지 묻는다.

"왜 엄마가 내?"
"어?"
"왜 엄마가 내?"
"내릴 때 찍는거야."

엄마가 여기가 창덕궁이 맞냐고 물어보러 간 사이에 노약자석에 앉아있던 아이가 안전벨트를 채웠다. 금방 창덕궁에 도착했고 나는 내리려는데, 아이가 혼자 버둥버둥 거리며 벨트를 풀려고 했다. 팔이 짧아 빨간색 버튼을 힘껏 누르지 못하고 있어서 도와주려다가 엄마가 있으니까 하면서 기다리는 사이, 엄마는 운전사 아저씨에게 물어보고 와서 바로 뒷문으로 내리려고 한다. 엄마가 내리려는 순간, 그 때까지 혼자 풀어보겠다고 끙끙대던 아이가 그제야 다급하게 엄마를 찾는다.

"엄마! 엄마! 이것 좀 풀어줘."
"으이구. 아저씨 잠깐만요."

열린 문으로 내리려다 말고 엄마는 뒤돌아보았다. 다섯살 짜리 아이가 안전벨트를 풀지 못하는 위험에 처했는데도 어떻게 엄마를 바로 찾지 않고 그렇게 혼자 알아서 해보려고 할 수 있을까. 자립심이 참 강하다며 감탄을 하며 걸어가는데 엄마가 아이를 혼내면서 뛰어간다.

"그래서 내가 너를 안 데리고 다닌다니까."

내겐 놀랄 정도로 똑부러지고 자립심이 강해보이는 그 아이도, 엄마에겐 말썽 피우는 말괄량이인가보다. 인생은 꿈, 꿈은 인생.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