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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18

2010. 1. 18. 15:08 from 그래서 오늘
스산한 음악을 듣다가 이불을 움켜쥐었다. 갑자기 몽골의 초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기차에서 본 저녁 무렵의 초원. 산도 없고 나무도 없고 강도 없고 집도 사람도 없고, 매케한 먼지만 가득한 초원. 초원이 아니라 사막인 것 같다. 몇시간째 보이는 똑같은 풍경. 두려웠다. 저기 나 혼자 있게 되면 어떨까. 점점 어둠은 몰려오고 짐승들의 소리만 들린다면. 보이는 불빛이라고는 달빛과 별빛 밖에 없다면. 사람이 만들어낸 인공의 빛, 사람의 힘을 상징하는 전깃불이 없다면 어떨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 자신 뿐이고, 내가 만들어내는 두려움과 끊임없이 싸워야만 한다면. 상상하는 것만으로 두려움이 밀려와서 기차에 있는 손잡이를 꼭 잡았다. 차가운 쇳덩이로 만들어진 손잡이가 따뜻해질 때까지 꼭 쥐었다. 기차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힘을 주어서. 음악 때문인지 그 날의 초원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불을 꼭 움켜쥐었다. 부드러운 이불의 촉감을 느끼며 잠들었다.

그렇게 잠들어서인지 힘든 꿈을 꾸었다. 스토리가 짜여져있고 그것이 다 기억나는 피곤한 꿈이었다. 지진으로 학교의 건물들이 무너지고, 떨어지는 콘크리트 천장을 피해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가는 건물마다 하나씩 무너지고 온 몸에 힘을 주고 달렸다. 많은 친구들이 죽어갔지만 나는 살아보려고 슬퍼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달리다가 깼는데 새벽 5시. 온 몸이 뻐근해서 스탠드를 켜고 앉았다.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생각나지 않아서 다시 누웠다.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눕고 다시 이불을 꼭 쥐고 스탠드 불빛이 방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다 다시 잠이 들었다.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