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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04 손가락에 힘을 빡주고, 땅따먹기 1
대구다. 촬영을 할 겸 이사를 도울겸 내려왔다. 엄마랑 남동생은 일을 하느라 없고 언니도 임신중이라 아빠랑 내가 짐을 정리했다. 하루종일 걸레질을 해서 온몸이 쑤신다. 하루종일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10시가 넘어서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왔다. 머리가 아프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많이 이야기했지만 이 블로그에도 이야기해주려고 한다. 다음 작업으로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이라는 중편 다큐멘터리를 하고 있다. 기획을 처음 한 건 미디액트에서 다큐멘터리제작과정을 들을 때였으니까 벌써 5년 전인 것 같고, 작년에 서울영상위에서 제작지원금을 받았었다. 소액이긴 하지만 유용하긴 하다. 그래놓고 이런 저런 일들을 하다보니 작업을 진행하지 못했었다. 지금 시기를 놓치면 이야기에 힘이 빠질 것 같아서, 대구에 내려왔다. 그나마 가장 한가한 시기. 작업을 핑계로 교육도 못하고, 다른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니 더욱 열심히 해야한다.

중학교 3학년 때 DJ가 대통령 당선되던 날 받았던 충격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역감정에서부터 시작해서 계급, 투표로까지 이어질 것 같은데, 중심축은 나와 아빠의 관계 혹은 대화가 될 것 같다. 6월 2일 지방선거까지가 촬영할 생각이다. 이야기가 복잡해서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노력중이다. 기획서를 수정해서 다른 곳에도 제작지원을 신청할 생각이고, 몇몇 분들에게 심도있는 코멘트를 부탁할 생각이기도 하다. 여러가지 할 일이 많다.

자료를 쌓아놓거나, 간간이 생각나는 것을 기획해놓았던 블로그도 오픈한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도 있지만, 실은 블로그를 오픈함으로써 작업에 대한 책임을 좀 더 느끼길 바라는 것이 크다. 개청춘 블로그 하면서 그런 책임을 느꼈던 것 같다. 성실하게 생각을 이어갈 것에 대한. 반이다의 다른 친구들도 작업 중인데, 모두 어떻게 완성이 될까 기대가 된다. 모두 자신이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블로그에 올릴 기획의도나 구성도 정리해야겠다. 블로그에 놀러오신면 댓글로 의견도 마구 주시길.

그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 제작 블로그 : http://thereissomethingstrange.tistory.com/

기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지금 하는 작업이 '땅따먹기'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 운동장에서 땅따먹기 하는 걸 좋아했다. 팔을 쭉 뻗어서 그린 동그라미에서부터 시작해서 작은 돌을 손가락으로 친다. 한 번, 두 번, 세 번. 세 번을 쳐서 다시 동그라미로 무사히 돌아오면 그 면적이 내 땅이 되는 것이다. 다른 지역의 땅따먹기도 이랬는지 모르겠다. 돌멩이를 손가락으로 칠 때,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한 번, 두 번 칠 때도 신중하고 집중해야 하지만 그것이 마음먹은 곳으로 갔다고 해서 좋아서 흥분하면 안 된다. 땅따먹기의 결과는 세 번째 치기에서 돌이 자기 땅으로 다시 돌아오느냐 아니냐에 달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전을 기하기 위해 앞의 두 번의 치기에서 소심하게 치면 결코 넓은 땅을 차지할 수 없다. 손바닥만한 땅을 아무리 여러번 얻어도 대범하게 쳐서 한 번에 얻은 땅만큼 큰 땅을 가지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시간제한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해가 져서 어둑어둑해져서 땅에 그린 선이 보이지 않으면 놀이는 끝나기 때문이다. 놀이에서 넓은 땅을 얻는다고 해서 뭔가 이득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 넓은 땅을 가지면 기분이 좋다.

두 번째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서 약간 긴장되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작업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이번 작업이 앞으로 나의 작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 같다. 개청춘은 첫 작업이라 신중했던 것도 있고 공동연출이라서 안심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은 뭔가 피할 도리가 없어진 느낌이다. 부담이 되긴하지만 아직은 즐거움이 큰 것 같다.

이제 겨우 두번째 작업이고 앞으로 작업할 시간이 많이 남았단 걸 생각하면, 이번에는 돌멩이를 좀 세게 쳐보고 싶다. 손가락에 힘을 빡주고 치고 싶다. 그래서 돌멩이가 너무 멀리 날아가서 내 땅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넓은 운동장을 크게 한 번 돌아보고 싶다. 구경하고 싶다. 어떤 땅들이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지. (손가락에 힘주어서 튕겨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느낌이 좋다. 주문처럼...) 아직 해가 중천에 떠있다. 학교 수업을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았고, 해가 저물어서 저녁을 먹으러 집에 가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명심해야 할 것은 손가락에 빡 힘을 줄 때에도 세번째 치기에선 돌아올 수 있으리란 믿음을 잃지 않는 것, 최선을 다해 힘조절을 하는 것, 한 번 칠 때마다 모든 것이 걸린 것처럼 신중을 기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놀이인 것을 잊지 않는 것! 땅따먹기는 땅을 소유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시간을 즐기는 것이 목적이다. 나에게 다큐멘터리 작업도 그러하길, 특히 이번 작업은 더욱 그러하길. 아직 해가 중천이다.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