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늘'에 해당되는 글 115건

  1. 2015.11.12 신호를 보내는 몸
  2. 2015.09.10 졸린다
  3. 2015.09.03 제주여행 4일차, 마무으리

신호를 보내는 몸

2015. 11. 12. 00:46 from 그래서 오늘

오후부터 왼쪽 골이 아프다. 두통. 내가 제일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고통이다. 지끈지끈하게 머리가 아파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아침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잠이 부족하여서 30분만 자고 일어나 일을 하고, 저녁엔 강의를 들으러 가려고 했다. 알람을 맞추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울먹이면서 일어난 일을 설명하는데, 나도 덜컹 가슴이 내려앉았다. 집으로 오라고 하고 일단 보일러를 틀었다. 마음이 추울테니 방이라도 따뜻해야 한다. 그리고 물을 끓였다. 따뜻한 물을 주어야겠다. 그리고 또 뭘해야 하지. 종종거리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출구가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 뇌가 숨을 쉬지 못한다. 나의 일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생각들이 복잡하게 들이닥쳤다. 과부하다. 두통시작.


엄마도 두통이 있었다. 평소엔 괜찮지만 뭔가 근심이 생기거나 힘들면 두통으로 바로 넘어간다. 그걸 닮았다. 출구가 없는 문제를 잡고 끙끙 앓던 20대 초반은 자주 두통이 왔고 정말 싫었다. 그렇다고 일상 생활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괴로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친구가 가고 나도 강의를 들으러 갔다. 강의를 듣는 중엔 괜찮았는데 마치고 집으로 오니 다시 콕콕 두통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내면을 읽는 것이나 마음을 다스리는 법에 관심이 많은 것은 이 두통 때문이었다. 주로 내면의 문제로 두통이 시작 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고, 두통이 한 번 시작되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에 마음의 평안을 위해 애써왔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내 책임을 넘어서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가급적이면 어떤 상황이 닥칠 지 미리 예상해 준비하려고 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20대 후반부터는 두통의 횟수가 많이 줄었다. 그래도 두통이 오면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거나, 머릿 속에서 문제를 일단 떠나보내려고 하거나, 잔다거나, 걷는다거나 하는 방법을 취했다.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글쓰기다. 그 문제의 상황에 대해서, 그리고 나의 복잡한 감정에 대해서 그대로 적어나가다보면 선택해야 할 것과 포기해야 할 것이 보인다. 그러면 선택지 중에 장단을 따져서 선택을 하거나, 뭔가 노력을 해야 할 것의 목차를 적어보거나 과감히 포기하기로 마음 먹거나 하면서 나름의 결론을 낸다. 그렇게 한바탕 적고나면 두통이 조금 누그러진다. 숨 쉴 구멍이 생긴 것이다. 


지금도 그래서 적고 있다. 무엇이 이렇게 나를 짓누르는지는 조금 더 살펴봐야겠다. 친구에게 닥친 상황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일단 잠을 자야겠다. 

Posted by cox4 :

졸린다

2015. 9. 10. 01:08 from 그래서 오늘

새벽 첫 차를 타고 나가 촬영을 했다. 11시쯤 집에 와서 잠시 쉬고 다시 오후 인터뷰 촬영. 한 사람의 깊은 이야기를 값도 치르지 않고 들었다. 등 언저리에 떨어져 있던 기억이 꿈틀댔다. 들은 말을 소화하기 위한 움직임. 매번 비슷한 이야기를 하지만 할 때마다 다시 마음이 움직이는 친구와 저녁을 먹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확장된 마음이 다 접히지 않는다. 잠은 쏟아지는데 눕지 못하고 메모를 하고있다. 요즘 김소연 시인의 <수학자의 아침>이라는 시집을 한 권 들고 다닌다. 전에는 읽어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요즘에는 아주 조금 읽힌다. 몇 문장에 이렇게 많은 감정을 싣다니. 시인의 삶은 나와는 다를 것이다. 나의 속도와는 다를 것이다. 이렇게 새벽에 시작해 눈을 껌벅껌벅하면서도 잠들고 싶지 않은 나의 욕망과는 다를 것이다. 그래서 읽는다. 그래서 삼킨다. 더 많이 삼키고 더 가만히. 비로소 착지. 전원 off.

Posted by cox4 :

아침에 일어나 게스트하우스에서 주는 조식, 오니기리와 된장국을 먹고 나왔다. 동네 카페에 가서 가자마자 있을 촬영을 위해 몇 가지 일을 하였다. 눈을 들어 창밖을 보는데 낮은 산과 나무들이 가득 보였다. 그 사이로 버스가 한 대 지나갔다. 속으로 나즈막히 말해보았다. 버스가 한 대 지나갔다. 한 대가 지나가다니, 줄줄이 신호대기에 걸려있는 것도 아니고, 줄줄이 버스전용차선을 달리는 것도 아니고 한 대가 지나가다니! 그리고 얼마 뒤 자동차가 한 대 지나갔다. 여기까지 여행을 온 것은 이런 속도를 느끼기 위한 게 아닐까. 내가 따라가고 있던 속도만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기 위해서 이 돈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얼른 일을 마무리하고 놀아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노트북으로 다다다다. 


동네에 짱 박혀 있었지만 돈을 꽤 쓴 것 같다. 하루 두 번 카페에 가면 크림치즈베이글까지 해서 15,000원. 밥값은 기본이 10,000원이고 조금 맛있는 걸 먹으려면 16,000원은 내야 한다. 하루 두끼. 그리고 동네에 서점이 있다는 이유로 읽을 책을 안 가지고 온데다 집중해서 읽다보니 금방 읽어버려서 두 권이나 샀다. 그리고 어제 오름과 숲을 다녀오는 길에 힘들어서 택시로 이동. 그리고 간간이 기념품과 소품 득템. 그래도 합쳐보면 얼마 되진 않지만 내가 한 소소한 행동에 대한 값치고는 꽤 비싼 편이다. 


그래도 마지막 날이나 맛있는 걸 먹어야지 하면서 이 동네의 맛집을 향해 오랫동안 걸었다. 도착하니 주인장들께서 휴가. 불편하게 해서 죄송하다는 메모를 보고 조금 더 직진했더니 사람들이 우글우글한 집 도착. 제주에서 먹고 싶었던 보말국을 파는 집을 발견했다. 대평리에서 먹은 국만큼 맛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좋았다. 다시 동네로 가려니 햇볕이 너무 강해 해변 정자에 누웠다. 해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길 기다리면서 한참. 파도소리, 차 한 대 지나가는 소리, 동네 사람이 타는 게 분명할 자전거 삐걱대는 소리, 다시 파도소리, 파도소리. 솨아악. 생각해보니 여행 와서 한 번도 음악을 플레이 하지 않았다. 김포공항으로 가는 길에도, 여기 도착해서도 한 번도 내 이어폰으로 음악은 듣지 않았다. 카페의 음악이나 분식집의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만 들었다. 이어폰으로 야구 중계는 좀 들었다만. 여튼. 나 스스로도 신기했다. 그걸 인지하고도 듣고 싶은 음악이 없었다. 어제 간 카페 주인장의 말대로 편안한 여행을 하고 있나보다. 그런 게 얼굴에 드러난다고 말했었다. 


책은 두 권 사서 읽었다. 여기 오면 동네 책방에서 사서 읽어야지 했던 [모든 요일의 기록]은 그날 밤 다 읽었다. 어떡하지. 또 책을 사서 하루만에 다 읽어버리면 서울로 돌아가는 날에 가방이 너무 무거울 것 같았다. 두 번째 책은 하루 안에 읽기 어려울 것 같은 두꺼운 소설책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샀다. 이전부터 여러 번 봤지만 뭔가 안 끌려서 읽지 않았는데, 여행와서 읽기는 좋을 것 같았다. 두꺼워서 샀는데 재미있어서 하루만에 다 읽을 뻔 했다. 조금 참으면서 나눠 읽고 조금 전에 카페에서 마저 다 읽는 행복을 누렸다. 마침 지금 카페에는 정원영 5집이 나온다. 


이번 여행이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정말 좋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좋았는지 아니었는지도 지금은 잘 판단하기 어렵다. 딱히 뭔가 한 것도 없다. 게스트하우스라 긴장했는지 밤마다 잠도 깊이 들지 못했다. 어젯밤엔 괴기스런 꿈 하나와 고양이들을 죽여서 음모를 꾸미는 조직, 그리고 그 조직의 편을 들어주는 박서울시장이 나오는 꿈을 꿨다. 낮에 길에서 죽은 고양이를 봐서 꾸게 된 꿈인 것 같다. 화장실도 편하지 않아서 제대로 못갔다. 길가다 방구를 꼈는데 동네가 너무 조용해서 뒤따라 오던 여자가 들어버리는 사고(일상이 아닌)도 있었다. 그럼 이번 여행이 어땠다고 말할 수 있을가. 아직 완벽하게 여행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음, 내일이면 돌아가니까, 생각해보면...


그래. 편안한 얼굴을 한 여행이었다. 그 정도이다. 더는 없다.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