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늘'에 해당되는 글 115건

  1. 2010.03.22 초록빛 4
  2. 2010.03.20 두 가지 2
  3. 2010.03.18 아파트

초록빛

2010. 3. 22. 23:46 from 그래서 오늘
사소한 것이라도 기록을 해두기로 마음 먹고 난 뒤로 포스팅이 잦다.

집에 오는 버스에서 우산을 주웠다. 버스에서 사람들이 많이 내려 자리가 생겨서 앉았다. 그런데 발 밑에 우산이 있었다. 옆자리 남자도 내려버리고 버려진 우산이 분명해지자 우산을 집어들었다. 다른 색이었으면 귀찮아서라도 줍지 않았을텐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초록색이라 주웠다. 예쁘다. 나도 전철과 버스에 숱하게 우산을 두고 내렸으니 이것 하나 정도는 가져도 되겠지 하면서 들고 내렸다.

저녁은 같은 사무실을 쓰는 언니가 사주셨다. 초록색 풀들을 마음껏 먹었더니 기분이 상쾌하다. 다만 생파프리카가 없어서 아쉬웠다.

집에 왔는데 룸메가 언제까지 이 집에 살거냐고 했다. 이집으로 말하자면, 내가 서울에 와서 살고 있는 집 중 가장 싼 집이다. 이전에 살던 집이 300에 20이었는데, 이 집에는 뒤늦게 합류하는 바람에 보증금도 안냈다. 월20만원으로 세금까지 해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올해 말 방을 빼야 할 수도 있다. 아직은 가능성이지만, 뭔가 변화는 생길 것 같다. 돈뿐만 아니라 이동의 자유문제도 섞여 있어서 약간 복잡한 것 같다.  또 이사를 가야하나 싶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못 이기는 척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게 싫지만은 않은 눈치다. 내가. 아직 덜 지겨운가보다. 이사가. 가장 좋은 건 이사를 안 가는 것이지만 이사를 가게 된다면 더 짐을 줄이고 가볍게 있고 싶다. 안그래도 요즘 방의 물건을 하나둘 정리하고 있었다. 책을 돌려주고 버릴 것은 버리고. 침대 밑에 있는 것들까지 다 꺼내서 버려야겠다. 가벼운 짐으로 어디든 훌쩍 떠날 수 있게. 안 입는 옷도 버리고... 이참에 멀리 훅 떠나볼까 싶기도 하면서 설레는 건 왜일까. 아직 서울살이가 여행같나보다.

연두색 만년필이 눈에 띈다. 만년필로 일기쓰고 자야겠다. 초록빛 느낌으로...!


Posted by cox4 :

두 가지

2010. 3. 20. 18:49 from 그래서 오늘
눈을 떴는데 방안이 어두컴컴하다. 12시간을 연이어 잤다. 아 새벽에 두 시간 정도를 깨서 라디오를 듣다가, CD를 꺼내 듣다가 다시 잤다. 내 방만 어두운가 했더니 온 세상이 어둡다. 이런 날은 자칫하면 마음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서둘러 움직였다. 몸을 움직이는 것과 곧장 본론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과의 대화는 '정신적 나약함'에 빠져 '판단착오'를 저지르는 것을 막아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두 가지가 마음의 부대낌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마음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으면 해결은 어렵다. 용기를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은 일단 몸을 움직이는 것과 곧장 본론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과의 대화를 하였다. 내일은 용기를!
Posted by cox4 :

아파트

2010. 3. 18. 21:23 from 그래서 오늘
대학로에서 273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라디오 방송에서 대구 소식이 나왔다. 아파트간 층간 소음 때문에 살인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얼마나 쌓이고 쌓였으면 그런 일까지 벌어졌을까 싶었다. 아파트 층간을 더 두텁게 만들든지 뭔가 대책이 필요한 거 아닌가 싶다. 지민이도 아파트에 사는데 윗층에 말이 산다고 했다. 아이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너무 커서 말이 뛰어다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나는 잘 모르겠지만, 내 머리 위에서 말이 뛰어다닌다고 생각만해도 짜증이 날 것 같다. 그런 지민이도 아랫집 사람이 곧 말이라고 부를 지도 모르는 사람을 낳는다. 오늘 새삼스럽게 신기했다. 내 친구 배에 사람이 들어있다는 것이. 언젠가는 나도 사람을 낳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전화와서 곧 이사를 갈거라고 했다. 늘 주택에서만 살았는데 이번엔 아파트에 가기로 했단다. 융자를 내는 것이 싫어서 엄마는 오래되고(그렇지만 부동산에서는 튼튼하다고 주장하는) 싼 아파트를 사기로 했단다. 나는 잘 샀다면서 사람 살 집이 튼튼하면 된다고 엄마편을 들어주었다. 아빠는 융자를 내어서 새 아파트를 사자고 했단다. 예전에 빚을 내어 집을 샀다가 IMF가 터지는 바람에 빚이 불고 불어서 얼마나 고생을 했냐며 엄마가 결사반대를 했고, 아빠도 늙었는지 엄마 말에 수긍했다고 한다. 오래된 아파트지만 인테리어를 다 바꾸면 일이년 후엔 이삼천을 더 받고 팔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말이다. 지금은 공사중이라고 한다. 아빠가 늙고 있다는 게 한편으론 다행이다. 아빠가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만만하게 진 빚 때문에 엄마는 어디든 가야했고 아빠는 갈데가 없었던 그 시간들이 생각난다. 그 시간들은 자식 셋을 동시에 대학에 보내야했던 2005년 정도까지 이어졌던 것 같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집안살림이 흑자로 돌아설 수 있었던 걸 생각하면 나도 참 나밖에 모르고 산 것 같다.

오늘 지민의 룸메인 철이 오빠가 당선된 신춘문예(희곡) 작품으로 연극이 올려졌다. 저녁에 그 연극을 보고 왔다. 재개발 때문에 살기가 힘든 부부가 자식에게 유산이라도 물려주기 위해 자살을 하는 내용의 연극이다. 제목은 유산. 연극으로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그 대사들을 내가 아는 '사람'이 썼다는 게...마음 저렸다. 그리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또 엄마 생각이 났다. "내가 너거 때문에 살지. 죽지 못해 살지." 한참 엄마가 힘들 때 우리한테 자주 했던 말이다. 지금은 "그래도 그 때 안 죽길 잘했제?" 하며 철없이 놀리는 내 말에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리는 엄마이지만, 그 때만 정말 죽을 듯한 표정으로 그런 말을 자주 했다.철이 오빠가 쓴 희곡의 부부는 자식 때문에 죽고, 우리 엄마(아빠도?)는 자식 때문에 죽지 못하고 살았다.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죽음을 가까이 하며 냉정한 시대인 지금을 버티고 있나보다.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