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늘'에 해당되는 글 115건

  1. 2010.01.24 심플한 4
  2. 2010.01.21 곶감 6
  3. 2010.01.18

심플한

2010. 1. 24. 02:15 from 그래서 오늘
[심야식당]을 야금야금 보고 있다. 볼 때마다 거기 나오는 음식이 먹고 싶어지는데, 오늘은 감자샐러드. 막 삶아진 감자를 보고 있으면 막 장보러 가고 싶다. 요리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대부분 새벽이라 못 나간다. 오늘도 배는 고픈데 감자나 고구마 같은 게 먹고 싶은데 집에 사둔 게 없다. 심플한 맛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

           


밥을 한 주걱 퍼서 김에 싸 먹었다. 고소한 김이 따뜻한 밥 앞에서 흐물흐물해져서 착 감기면 입으로 쏙쏙. 심플해서 좋은 맛. 심심하지는 않은 맛. 하지만 그 맛을 음미할새도 없이 금방 해치워버렸다.
Posted by cox4 :

곶감

2010. 1. 21. 02:26 from 그래서 오늘
방금 끝난 sbs 특별 다큐 [ 감익는 겨울 ]을 보았다. 홈페이지에 나온 제목은 저건데, 방송에서는 뭐였는지 모르겠다. 곶감이 유명한 옥천의 마을을 몇 개월 동안 촬영한 거였다. 엔딩크레딧은 독립다큐멘터리만큼이나 소박했다. 푸른별영상이란 곳에서 외주제작을 했던데 재미있게 보았다.

어릴 때 생각이 많이 났다. 농사 돕던 일도 많이 생각나고,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고구마가 익길 기다리던 꼬맹이 때도 생각이 났다. 변비인데도 곶감을 좋아해서 엄청 먹었던 생각도 난다. 초등학교 3-4학년 때까지의 일인데도 그 느낌들이 참 생생하다. 어렸을 땐데도 온갖일을 다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방송다큐의 포맷(에 대한 안 좋은 고정관념이 있다. 속성스러운 느낌)이긴 하지만 동네 어르신들이 편하게 이야기해서 좋았다. 인위적으로 시키거나 한 느낌도 별로 없었다. 몇 개월 동안 시간을 가지고 찍은 느낌이 좋았다. 감을 깎아서 걸고, 햇볕에 마른 곶감을 다시 들고 오는 것. 어르신들이 먼저 말하실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느낌의 장면들이 좋았다. 억지로 질문을 하는 느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보고, 궁금해하는 카메라에게 어른들이 이야기를 걸어오는 느낌. 물론 내레이션이 많긴 했지만 오버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곶감이 계속 나왔기때문에 12시 넘어서 집에 왔지만, 들어오자마자 가방도 안 벗고 침 흘리면서 계속 봤다.

한 아저씨가 소똥을 경운기에 가득 싣고 산으로 갔다. 감나무에 뿌리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감나무가 우리에게 감을 주었으니, 감나무에게도 먹을 것을 주는 게 맞다고 말씀하셨다. 그 아저씨 뿐만 아니라 온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몇 대 전 조상들이 심어놓은 감나무 덕에 이렇게 먹고 사니, 자신들의 후손을 생각해서 거름을 주고, 묘목을 심는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도 반복되었다. 당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후대를 생각하는 삶의 방식이 몸에 밴. 아침 전철에서 읽은 녹색평론의 글보다 가깝게 와닿는.

곶감을 주문할까보다. 특별히 좋아한다고 말할만한 음식이 많지는 않은데, 사과와 곶감, 고구마는 참 좋아한다. 곶감이 점점 비싸지고, 먹고 싶어서 물어보면 중국산 뿐이다. 유기농을 주문하는 곳을 봤었는데 질러야겠다. 보양식. ㅎ 먹고 힘내야지!

어렴풋이라도 안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 특히 감정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었다는 걸 어쩔 수 없이 느끼고 있다. 어떤 것은 알려고 노력해서 알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알아지나보다. 이것도 남들 다아는 것이었을텐데, 이제사 처음으로 생각해본다. 처음으로 경험해본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리고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뒤늦게 깨닫는 나는, 낼모레 서른인데...모르는 게 이렇게 많아서야.

갈 길이 멀다.

Posted by cox4 :

2010. 1. 18. 15:08 from 그래서 오늘
스산한 음악을 듣다가 이불을 움켜쥐었다. 갑자기 몽골의 초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기차에서 본 저녁 무렵의 초원. 산도 없고 나무도 없고 강도 없고 집도 사람도 없고, 매케한 먼지만 가득한 초원. 초원이 아니라 사막인 것 같다. 몇시간째 보이는 똑같은 풍경. 두려웠다. 저기 나 혼자 있게 되면 어떨까. 점점 어둠은 몰려오고 짐승들의 소리만 들린다면. 보이는 불빛이라고는 달빛과 별빛 밖에 없다면. 사람이 만들어낸 인공의 빛, 사람의 힘을 상징하는 전깃불이 없다면 어떨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 자신 뿐이고, 내가 만들어내는 두려움과 끊임없이 싸워야만 한다면. 상상하는 것만으로 두려움이 밀려와서 기차에 있는 손잡이를 꼭 잡았다. 차가운 쇳덩이로 만들어진 손잡이가 따뜻해질 때까지 꼭 쥐었다. 기차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힘을 주어서. 음악 때문인지 그 날의 초원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불을 꼭 움켜쥐었다. 부드러운 이불의 촉감을 느끼며 잠들었다.

그렇게 잠들어서인지 힘든 꿈을 꾸었다. 스토리가 짜여져있고 그것이 다 기억나는 피곤한 꿈이었다. 지진으로 학교의 건물들이 무너지고, 떨어지는 콘크리트 천장을 피해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가는 건물마다 하나씩 무너지고 온 몸에 힘을 주고 달렸다. 많은 친구들이 죽어갔지만 나는 살아보려고 슬퍼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달리다가 깼는데 새벽 5시. 온 몸이 뻐근해서 스탠드를 켜고 앉았다.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생각나지 않아서 다시 누웠다.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눕고 다시 이불을 꼭 쥐고 스탠드 불빛이 방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다 다시 잠이 들었다.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