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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살

2010. 4. 30. 02:39 from 그래서 오늘
심야식당 아저씨처럼 이 늦은 시간에 말벗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불러내지 않아도 어딘가에 늘 있는 사람, 편하게 찾아갈 수 있는 사람,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서와 하고 반겨줄 사람이 필요하다. 다행히 집 현관문을 룸메가 열어줬다. 올라오는 소리 들었다면서.

집근처 학교에서 [당신과나의전쟁] 상영회가 있어서 다녀왔다. 몇 번 가본 적 있던 울랄라에서 전과 막걸리를 먹으며 영화를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큐멘터리를 왜 하게 되었는지만 다섯번 대답했다. 그래서 울적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기분이 좀 많이 울적하다. 지금껏 수십번 했던 대답이지만, 오늘따라 그 대답이 빈곤하게 느껴졌다. 거짓말을 많이 했는데 모두 아무 의심 없이 믿을 때의 허탈함 같은...

요 몇주간 긴장하며 지냈다.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점점 무거워졌다. 가벼워지고 싶은데 나는 점점 무거워진다. 인생 되는대로, 라고 외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 그게 잘 안되어서 놓치는 것들이 생각난다. 그게 잘 안되어서 쌓이는 것들이 생각난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데, 알까?

야구공의 실밥을 만지며 라디오를 듣는다. 야구공의 단단함을 느낀다.
Posted by cox4 :

쑥쑥

2010. 4. 23. 13:26 from 그래서 오늘


비 내린 다음날의 촉촉한 공기. 새순, 나무, 초록빛. 171 버스 안. 매일 달라지는 여기. 자라난다.

Posted by cox4 :
오늘은 허겁지겁 책을 보았다. 원래 책을 읽으면 앞에서부터 죽 읽고, 뒤를 넘겨보는 일이 없는데 뭐가 급했는지 책을 서너장씩 넘기면서 보았다. 그러다 주르륵 책 전체를 훑어보았다. 읽기는 읽는데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내 상태를 정확히 표현해주는 문장이나, 위로해줄 문장을 찾았기 때문이다. 허겁지겁 읽는데 그런 게 있을리 없지. 자기계발서도 아닌데.

집이 더러운데 청소에 힘을 쏟고 싶지 않다. 물건이 점점 늘어나서 이사올 때보다 방이 훨씬 복잡해졌다. 입지 않는 옷, 보지 않는 책, 이면지, 빈상자, 꽃은 죽었지만 모양이 마음에 들어 흙만 담아놓은 화분, 어디에 쓸지 몰라 침대밑에 넣어둔 생활용품들. 2년동안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들은 버려도 될텐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챙겨둔다. 가장 버릴게 많은 것은 읽지 않는 책과 옷이다. 그중에서 청바지를 정리했다. 청바지의 질감이 좋아서 놓아둔 것, 너무 마음에 들었던 거라 닳았는데도 못 버리고 있던 것, 살이 빠져서 못 입는데 혹여나 다시 살이 찌면 입을 수 있을 것 같아 둔 것, 얽힌 추억이 소중해서 못 버린 청치마, 여름에 잘라서 입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몇 년째 묵혀둔 것. 그렇게 못 버리고 있는 청바지는 많지만 정작 입고 다니는 것은 단 두개 뿐이다. 과감하게 절반을 버리기로 했다. 못 입는 것은 버려야 한다. 집착과 미련 말고 쓸모. 그래도 추억이 생각나서 버리지 못한 몇 개가 남았다.

일기를 쓰려는데 만년필에 잉크가 나오지 않는다. 잘못세워뒀나 싶어서 한참 만졌다. 아직 몇 번 못 썼는데, 얘와의 인연이 다 되었나 생각할 때쯤 잉크가 왈칵 나왔다. 왼손에 검은 잉크가 군데군데 묻었다.

화장실 변기 물이 샌다. 이사왔을 때부터 한 두 방울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었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근데 점점 떨어지는 물이 많아지는 듯, 물소리가 졸졸졸 나기 시작했다. 집주인 아줌마는 물세가 너무 많이 나온다며, 고지서가 나올 때마다 '물을 아껴씁시다'라는 메모를 남겼다. 전에 살던 사람에 비해 두세배가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세수를 하다가 변기에 들어가는 물 수도꼭지를 잠궈보았다. 물이 점점 줄어들더니 10분이 안 되어서 변기물통에 있는 물이 다 없어졌다. 매일 이렇게 물이 빠져나갔다면 정말 큰 물낭비. 물을 잠궈놓고 내일 집주인에게 말하기로 했다. 진작 말할걸. 내일 아저씨도 그러실 것 같다. '진작 말하지.'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