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늘'에 해당되는 글 115건

  1. 2010.06.12 몸이 원하는 대로 1
  2. 2010.06.10 노동 2
  3. 2010.06.04 피부가 간질간질 2

몸이 원하는 대로

2010. 6. 12. 13:30 from 그래서 오늘
어젯밤 자기 전에 맞춰놓은 핸드폰 알람을 전체삭제 하였다. 보통은 알람을 여러 개 맞춰놓고 자는데 오늘은 집밖으로 나가지 않고 쉴 작정이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시간을 정하지 않었다. 잠이 들기 시작해 정신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타닥타닥 한 두방울 비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아침 9시반쯤 일어나니 후두둑 비가 제법 내리고 있다. 비 덕분에 약간 쌀쌀해진 방안 공기가 좋다. 빗소리를 들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 내 욕심에 대한 생각, 작업에 대한 생각들. 누워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한 시간이 가버렸다. 달콤한 휴일이 가는 것이 아쉬웠지만, 이런 게 쉬는 게 아니겠어? 하면서 테레비를 보았다. 테레비를 보며 룸메와 연애에 관한 수다를 한참 떨었다. 공통점이 많이 없는 친구이지만, 말이 통하는 걸 보면 동갑내기이긴 한가보다. 일이나 관계에 대해서 비슷한 정도의 고민을 하는 것 같다.

오늘 하루 집에서 작성해야 할 문서도 많고, 정리할 일도 많고, 읽고 싶은 책, 쓰고 싶은 이야기도 많다. 근데 자꾸 의자 뒤로 고개를 제쳐 비가 오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게 된다. 붉은 지붕을 적시는 비, 흔들리는 전깃줄, 4도정도 기울어져 내리는 빗줄기, 시멘트에 떨어지는 빗방울...(헉, 근데 갑자기 나타난 런닝 입은 옆집 할아버지)

천장을 바라보며, 창밖을 바라보며, 방안을 살펴보며 멍하니 있는 이 시간들이 나에겐 필요하다. 이게 내가 샘을 채우는 방법인 것 같다.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은 좀 제쳐두고, 몸이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내야겠다.

갑자기 감격. 오늘 무한도전 본방을 볼 수 있다.(!)
Posted by cox4 :

노동

2010. 6. 10. 01:55 from 그래서 오늘

0.
무릎팍 도사 볼 때는 잠이 왔었는데, 끝나고 나니 깼다. 쏟아질듯 잠이 오지 않으면 잘 자리에 눕지 않는다. 잠을 자려고 노력하는 게 정말 괴롭다. 잠은 스스륵 들어야 제 맛!

1. 
더워서 대나무 돗자리를 침대에 깔았다. 작년에 친구가 좋다고 선물해 준 것이다. 여름이 되었다는 게 실감났다. 작년 여름에 입던 셔츠를 입었더니, [샘터분식] 촬영하던 날도 생각이 나고 [개청춘] 편집하던 여름도 생각이 났다. 꽤 오래전 일인 것 같은데 불과 1,2년 전 일이라니. 지금은 1년이라는 시간이 참 길게 느껴진다. 3년전 제주도 바닷물에 둥둥 떠다닐 때 귓가에 부딪혔던 바닷물 소리, 다시 듣고 싶다. 여름엔 역시 물놀이.

2.
알바로 발암물질 관련 영상을 만들고 있다. 그 일로 공장을 몇 번 촬영했다. 주로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공장을 견학간 일은 있었지만, 지금껏 공장 구석구석을 면밀히 본 적은 없었다. 공장 안은 냄새가 심했고, 시끄러웠고, 더웠다. 무엇보다도 반복적이었다. 돈이 몹시 궁할 때, 어디라도 좋으니 월급 주는데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공장을 촬영하며 여기서 일할 수 있겠냐는 물음을 나 자신에게 계속 던졌다. 절래절래. 아무리 생각해도 반복적인 건 힘들 것 같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계속 서서하는 일은 못할 것 같다.  내 작업 일정을 내가 짜지 못하는 것이 힘들것 같다. 내가 할 일을 내가 선택하고 계획하고 책임지는 것. 거기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계속 드는 생각. 반복적으로 칼국수를 만드는 엄마아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서 생산직이 아니라 사무직에서 버티는 게 너무 힘들다는, 대학을 못간 것이 그렇게 후회가 된다는 아는 동생의 말.누나는 대학을 나와서 좋겠다는 말.

이런 생각이 며칠 째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런 생각이 괜찮은 걸까라는 판단도 함께 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무거운 카메라 들고 이곳 저곳 다니면서 사람들 만나는 일을 피곤하고 힘들어서 어떻게 하니? 돈도 못 벌면서.난 도저히 못하겠다. 야"라고 말하면 울컥할 것 같다. 물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이 힘들 때도 있고, 돈을 잘 못버는 것도 맞지만 나름의 재미와 쏠쏠한 기쁨과 보람 같은 것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누군가 내가 하는 일은 기피해야 할 고된 노동처럼 표현한다면 욱하거나 씁쓸해할 것 같다. 내가 공장에서의 일을 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것은, 몸으로 하는 노동에 대한 편견과 그 노동에서 맛보는 즐거움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거부감인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성향도. 그런데 사실 무엇보다 공장 노동이 객관적으로 힘들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내 안에 얽혀있는 생각들은 좀 더 들여다봐야겠으나, 일단 내린 결론은, 다큐멘터리 기획, 구성하느라 힘들 때 쉽게 '몸으로 하는 노동'을 하고 싶다고 말하지 말 것, 가끔 카메라 들고 촬영하면서 몸이 힘들다고 엄살피지 말 것, 경험해보지 못한 노동에 대해서 쉽게 판단하지 말 것. '노동' 그 자체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

3.
촬영을 하면서 아빠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 [개청춘] 주인공인 인식이 생각난다. 인식씨 아버지는 인식이 앉아서 하는 일을 하기 원하셨다고 했다. 흔히 화이트칼라의 노동, 사무직이라고 하는 노동을 앉아서 하는 일이라고 표현하는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나도 아빠가 앉아서 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아빠는 요즘, 카메라를 들고 이곳 저곳 쏘다니는 나를 서글프게 바라본다. 내가 앉아서 하는 일을 하기 원하시는지도 모르겠다. '노동의 종류'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다. [감정노동] 읽어봐야겠다.
Posted by cox4 :

피부가 간질간질

2010. 6. 4. 11:57 from 그래서 오늘
사무실에 와서 책상을 닦고 메일을 확인하고 블로그에 들어오니 일상으로 돌아온 느낌이 든다. 지난 일주일동안 대구와 부산을 오가며 촬영을 했었다. 딱히 촬영을 많이 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을 놓치면 다시 못 찍는다는 생각에 꽤 긴장해있었던 것 같다. 집과 가족들이 주는 안정감 덕분에 편하긴 했지만 몸이 저절로 늘어져서 촬영모드로 바꾸기가 힘들었다. 일주일동안 기차를 많이 탔다. 기차에서 보는 풍경, 산과 강과 모내기가 한창인 논을 보는 것은 늘 마음 깊이 즐겁다. 나도 모르게 므흣한 웃음을 짓고 있는 내 얼굴을 창유리에서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므흣한 웃음을 지은 적이 최근엔 거의 없었다. 사람을 보고도 이렇게 웃어야 하는데 하며 스스로를 아쉬워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웃을 수 있는 게 어디야 하며 다시 므흣한 웃음을 짓긴 했지만.

음악을 자주 듣긴 하지만 잘 듣진 못하고, 다양한 음악을 듣지도 못한다. 들을 때 자꾸 딴 생각을 한다. 노래를 못 부르는 이유도 제대로 듣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음악을 집중해서 듣는 시간은 몸에서 쓰지 않던 세포들을 사용하는 느낌이 든다. 팔이 저릿저릿, 피부가 간질간질. 특히 마음이 서글픈 날에 듣는 음악은 몸의 반응이 엄청난 것 같다. 서글픈 날은 아니지만,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스피커로 듣는 오늘도 피부가 간질간질.

자존감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아예 생각하지 않고도 무난히 살아갈 만큼 자존감이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몹시 낮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당히 높을 때도 있고 낮을 때도 있는 것 같다. 높을 때는 대체로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스스로 하는 때이고, 낮을 때는 타인의 평가에 신경을 쓸 때이다. (당연한 소리) 그런데 나는 대다수의 사람의 평가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가까운,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신뢰할만한 소수의 사람의 평가에만 신경을 쓴다. (이것도 다 그런건가?) 차라리 다수의 평가에 신경을 쓰면 좋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고 나쁘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사람의 평가만 기다리고 있으면 그 사람이 좋다고 해주지 않을 때까지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해줘도 그 한 사람이 좋아해주지 않으면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면 일일이 설득하지는 못하겠지만 한 사람이면 그 사람에 맞게 뭔가를 바꿔서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거다. 그 한 사람이 늘 동일한 사람은 아니다. 사안에 따라서 많이 바뀐다. 나의 이런 태도가 스스로를 괴롭힌다. 뭐 어때? 하고 쏘쿨하게 넘어가고 싶지만 그게 잘 안된다. 팔짱을 끼고 다리를 떨거나 마음 속으로 숫자를 세게 된다.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자존감이 낮을 상태일 때는 역시 생각 자체를 안하는 게 좋은 듯.

아우, 모르겠다. 인생 되는대로.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