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2010. 6. 10. 01:55 from 그래서 오늘

0.
무릎팍 도사 볼 때는 잠이 왔었는데, 끝나고 나니 깼다. 쏟아질듯 잠이 오지 않으면 잘 자리에 눕지 않는다. 잠을 자려고 노력하는 게 정말 괴롭다. 잠은 스스륵 들어야 제 맛!

1. 
더워서 대나무 돗자리를 침대에 깔았다. 작년에 친구가 좋다고 선물해 준 것이다. 여름이 되었다는 게 실감났다. 작년 여름에 입던 셔츠를 입었더니, [샘터분식] 촬영하던 날도 생각이 나고 [개청춘] 편집하던 여름도 생각이 났다. 꽤 오래전 일인 것 같은데 불과 1,2년 전 일이라니. 지금은 1년이라는 시간이 참 길게 느껴진다. 3년전 제주도 바닷물에 둥둥 떠다닐 때 귓가에 부딪혔던 바닷물 소리, 다시 듣고 싶다. 여름엔 역시 물놀이.

2.
알바로 발암물질 관련 영상을 만들고 있다. 그 일로 공장을 몇 번 촬영했다. 주로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공장을 견학간 일은 있었지만, 지금껏 공장 구석구석을 면밀히 본 적은 없었다. 공장 안은 냄새가 심했고, 시끄러웠고, 더웠다. 무엇보다도 반복적이었다. 돈이 몹시 궁할 때, 어디라도 좋으니 월급 주는데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공장을 촬영하며 여기서 일할 수 있겠냐는 물음을 나 자신에게 계속 던졌다. 절래절래. 아무리 생각해도 반복적인 건 힘들 것 같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계속 서서하는 일은 못할 것 같다.  내 작업 일정을 내가 짜지 못하는 것이 힘들것 같다. 내가 할 일을 내가 선택하고 계획하고 책임지는 것. 거기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계속 드는 생각. 반복적으로 칼국수를 만드는 엄마아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서 생산직이 아니라 사무직에서 버티는 게 너무 힘들다는, 대학을 못간 것이 그렇게 후회가 된다는 아는 동생의 말.누나는 대학을 나와서 좋겠다는 말.

이런 생각이 며칠 째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런 생각이 괜찮은 걸까라는 판단도 함께 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무거운 카메라 들고 이곳 저곳 다니면서 사람들 만나는 일을 피곤하고 힘들어서 어떻게 하니? 돈도 못 벌면서.난 도저히 못하겠다. 야"라고 말하면 울컥할 것 같다. 물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이 힘들 때도 있고, 돈을 잘 못버는 것도 맞지만 나름의 재미와 쏠쏠한 기쁨과 보람 같은 것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누군가 내가 하는 일은 기피해야 할 고된 노동처럼 표현한다면 욱하거나 씁쓸해할 것 같다. 내가 공장에서의 일을 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것은, 몸으로 하는 노동에 대한 편견과 그 노동에서 맛보는 즐거움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거부감인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성향도. 그런데 사실 무엇보다 공장 노동이 객관적으로 힘들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내 안에 얽혀있는 생각들은 좀 더 들여다봐야겠으나, 일단 내린 결론은, 다큐멘터리 기획, 구성하느라 힘들 때 쉽게 '몸으로 하는 노동'을 하고 싶다고 말하지 말 것, 가끔 카메라 들고 촬영하면서 몸이 힘들다고 엄살피지 말 것, 경험해보지 못한 노동에 대해서 쉽게 판단하지 말 것. '노동' 그 자체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

3.
촬영을 하면서 아빠가 일하는 모습을 보면 [개청춘] 주인공인 인식이 생각난다. 인식씨 아버지는 인식이 앉아서 하는 일을 하기 원하셨다고 했다. 흔히 화이트칼라의 노동, 사무직이라고 하는 노동을 앉아서 하는 일이라고 표현하는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나도 아빠가 앉아서 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아빠는 요즘, 카메라를 들고 이곳 저곳 쏘다니는 나를 서글프게 바라본다. 내가 앉아서 하는 일을 하기 원하시는지도 모르겠다. '노동의 종류'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다. [감정노동] 읽어봐야겠다.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