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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0.08.07 시원함 2

몰리고 있다

2010. 10. 19. 01:49 from 그래서 오늘
"한계가 왔나?"
공부를 해볼 생각이라는 내 말에 언니가 한 말이다. 더 배워야 만들 수 있겠냐고. 내가 어떻게 알았냐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시간을 벌고 싶냐거나 학력을 필요하냐거나 뭔가 새로운 것을 원하냐고 짐작했었는데, 그럼 나도 그 말을 어느 정도 긍정하곤 했었는데,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요즘 내 일상도 모르는 언니가 단번에 내 상태를 읽었다. 그 한계가 무엇인지, 공부를 한다고 나아질 수 있는지, 다른 방법이 필요한 건 아닌지, 다큐작업 때문인건지, 물을 수도 없을 만큼 조급한 느낌이다. 그 느낌 덕분에 더욱 무거운 일상이다. 그 조급함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우선 돈이 없고, 시간이 없다. 아니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다.

베프 두 사람과 수다를 한참 떨고 왔다. 그야말로 생계를 고민하는 이야기. 분위기가 점점 구려지는 것 같아서 뭔가 상큼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속으로 생각했다. 한 3년 뒤엔 뭐하고 싶냐는 질문이 적당할 것 같아 기회를 노렸지만, 이번 달 카드값이 걱정이라는 친구의 말에, 나도 다다음달 이사할 보증금 마련하는 것이 걱정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런 걱정을 이어이어이어하다보면 몇 년의 시간이 또 흐르겠구나 싶다. 조금만 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면서 이 일을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 10년이 아니라 3-4년 정도만이라도. 아니 당장 내년이라도 계획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뭐 없나. 뭐 없나. 이 한 마디가 계속 나왔다. 뭐가 없다는 것도 알고, 내년의 생계비를 준비해놓지 않더라도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이게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란 것도 안다. 그리고 돈을 잘 버는 것보다 내가 지금의 삶에 더 만족한다는 것도 안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선 지금의 고민들을 계속 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것도 안다.

하지만 돈이 없어 가족끼리 날카롭게 부딪혀야했던 그 순간들이 아직 내 몸에 남아있어서 두려움이 몰려온다. 지금이 위기라는 적신호가 저기 멀리서 오고 있다. 지금이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라는 메시지가 내 마음을 맴돌고 있다. 우리집은 카드값 20개를 돌려막아봤다, 부모님이 빚 남겨주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는 친구들의 말.

집으로 오는 길에 아는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고졸로 일하면서 무시당하는 게 너무 힘들다며 술 먹고 나에게 만날 징징대던 그 녀석이 매수과로 옮겼다며 자랑을 했다. 고졸이 매수과로 가는 게 자기 회사에서 처음이라며, 회사 다니는 친구들에게 매수과가 어떤 곳인지 물어보라고 한다. 그 자랑질에 한 것도 없이 마음이 흐뭇해졌다. 나한테는 늘 징징대더니 나름 인정받고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보험을 하다가 소방공무원 준비를 하던 다른 친구는 거제도의 조선소에서 일당 12만원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고 했다. 얼마전 촬영 때문에 조선소에 갔다가 그 열악한 작업환경을 보고 놀랐었는데, 그런 곳에서 일한다고 하니 마음이 짠. 그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곳에서 일하는 것 같은데. 고등학교때부터 세차장알바부터 안해본 알바 없이 쉬지 않고 일하던 동생들. 모두 집에 얼마씩 돈을 보내야 한다. 나에게 자주 연락하며 보험을 들어줬으면 하는 눈치였었는데, 나도 보험들 형편이 아니어서 못들어줬다. 그럴 때 내 직업이 참 아쉽다. 누구 하나 쉽게 돈 벌고 편히 사는 사람은 없겠지만 오늘은 징징거림을 토해내지 않으면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내 몸 하나 부지런히 움직이면, 하고 싶은 작업 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손 벌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마저도 약간 불안하다. 그래서 정말 심각하게 고민이 된다. 내년을 어떻게 할지가. 이런 생각들을 적지 않으면 안되는 걸 보니, 나 정말 몰리고 있나보다. 우리 모두 몰리고 있구나 싶다. 몰리고 있을 때는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일 아침,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몰리고 몰린,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촬영하러 가야 한다. 그럴려면 일찍 자야지.
Posted by cox4 :
8월 내내 전국을 떠돌았다. 휴가와 촬영과 교육으로 대구, 부산, 백령도, 진해 등. 그렇게 지내다 정신을 차리니 벌써 9월 7일이다. 그저께부터 코가 맹맹해지더니 재채기 연발. 어딜가도 휴지를 챙겨야 하는 환절기가 되었다. 고질적인 비염인데, 추석을 기점으로 가장 심해진다. 재채기를 심하게 하면 눈도 빨개지고 이물질이 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눈을 비비거나 자주 깜박이게 되는데, 버스에서 눈을 계속 깜박이면 맞은 편에 있는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 윙크하는 줄 알고... 코와 눈이 은근히 예민한 나이다.

오늘 새벽, 추워서 일어나보니 린넨 소재인 여름이불을 버리고, 깔고 자는 이불을 덮고 있더라. 개어놓은 겨울 이불을 꺼내 덮고 다시 자는데, '그래 이 맛이야' 하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약간 쌀쌀한 공기, 포근한 이불. 달콤한 잠을 자는데 최고다. 대신 건조해졌으니까 오늘부터 가습기 가동해야겠다.

비염이 심하면 코감기 걸린 것과 비슷한 증세를 보인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몸 안에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는지 몸이 뜨겁다. 그래서 답답하다. 또 좀 몽롱하다. 이럴 땐 고구마 먹으면서 만화책 보는 게 좋은데, 고구마만 먹었다. 비염에 좋은 게 뭐가 있을까. 완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코로 숨 쉴 수 있게만 해준다면 열심히 할텐데.

환절기와 비염 덕분에 뜨거워진 몸과 몽롱해진 기분이 생겼으니 이참에 좀 실없이 웃어봐야겠다. 째려보던 눈은 버리고 윙크하는 눈으로...!








Posted by cox4 :

시원함

2010. 8. 7. 22:51 from 그래서 오늘
시원하다는 말이 좋다. 이 무더운 여름 몸이 시원해지는 느낌도 좋지만, 마음이 시원하다는 말이 더 좋다. 그 말이 좋아 지금 내 마음이 시원한가를 자주 물어보았다. 그 때마다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겸손은 자아를 여윈 마음이라는 문장도자주 생각해보았다. 또 나에게 물어봤다. 여전히 나는 자아를 내려놓지 못했다. 그래도 마음이 시원해진다는 말과 자아를 여윈 마음이라는 문장이 좋다. 좋아하면 닮는 다니까.

마음이 시원해지기위해 노력하며 살아온 것 같은데, 아직도 마음에 부대낌이 많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것, 누구의 표현을 빌리면, 쪼개진 지구는 스카치테이프로 아무리 칭칭 감아도 붙여지지는 않는 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것을 인정하고 알리는 과정에서 내가 자아를 여윈 태도이길 간절히 원한다. 그래도 내가  옳다는 그 생각들을 이제 좀 접을 수 있으면 좋겠다. 오랜 시간 나를 흔들던 부대낌이니, 또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기도하게 된다면, 그 결과가 어떻든 간에 시원함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언제 봐도 마음이 시원해지는 사진, 야구장 가고 싶다.

룸메들은 모두 여행을 갔다. 조용한 토요일. 늦게 일어나 밥을 해먹고, TV도 보고, 책도 읽고, 구성안 작업도 하고, 일기도 쓰고, 가만히 누워 생각도 많이 했다. 마음은 평온해졌으나 조금 외로워졌을 무렵, 별것아닌 일에 고맙다며 문자를 보낸 사람의 마음 씀씀이에 외로움도 채워졌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가(누군가의 필요)를 외면한 채 얻게 되는 시간이라면 그게 또 무슨 소용일까. 이 시간들이 나에게 채움을 주는 것 같지만, 나 자신도 속이는 가식적인 채움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 걸까? 읽는 책마다 저자의 슬픔이 가득하고,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아픔을 견디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책을 읽으며 안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자주 그런 생각이 든다. 신중함을 핑계로 목소리 내야 할 문제들에 내가 너무 침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 아무리 생각해봐도 쉽게 판단할 수가 없다는 핑계로 외면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문제가 심각해지면 빠질 수 있게 경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 최근에 걸러짐 없이 내뱉었던 나의 말과 행동이 부끄러워 절로 고개가 떨궈지지만, 그것이 나라는 것을 직면하고, 다시 한 걸음.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