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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2.01.06 그게 아마 오늘인가 3

4월 이야기

2012. 4. 16. 17:26 from 그래서 오늘

새로 이사한 명륜2가 작업실은 창문 밖으로 큰 나무가 보인다. 무슨 나무일까 궁금했었는데, 며칠 따뜻한 날씨에 잎이 소록소록 돋아나더니 작은 부채꼴의 은행잎 형태를 갖추었다. 이제부터 하루가 다르게 자라날 것 같다. 무성한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여름날, 또 그 잎들이 장맛비에 세차게 흔들리는 어떤 여름날을 상상해본다. 자라나는 조카들만큼 나무도 빠르게 자라지만, 한 번 자라고 나면 성장판이 멈추는 사람과는 달리 매년 시들고 사라지고 나이테 하나만 남기고 다시 시작하는 나무의 속성이 새삼 놀랍다.


어제는 오랜만에 울다 지쳤다. 몇 년 전 봉천동의 옥탑방에서 살 때, 햄톨언니에게 전화해서 펑펑 울던 그 때도 4월이었을까. 날이 너무 화창하면 놓치고 있던 중요한 것들이 생각난다. 자고 일어나니 다행히 약속한 일들이 있어 몸을 움직였다. 휴지와 린스가 떨어졌다. 휴지와 린스를 사놓고 룸메가 기침 콜록거리는 것에 아는 체도 못하고 서둘러 집을 나왔다.


요즘 조금 다른 감각을 가진 것 같은 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있다. 그 다른 감각 때문에 끌려서 함께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또 그 다른 감각 때문에 불편하기도 하고 움츠러들기도 한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차이에서 오는 긴장을 창조적으로 끌어안을 때에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말이 나온다. 차이에서 오는 긴장을 느끼는 건 잘하는데 창조적으로 끌어안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저 슬쩍 가방을 들고 나온다. 민주주의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도 깊이 와닿는 요즘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마음이 차분해지는 건 좋은 일이다. 한동안 들뜬 마음으로 지내왔으니 필요한 시간들이 알아서 찾아왔다고 생각해 볼 참이다.


농사 짓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았다. 마음 따뜻한 사람과 햇볕 따뜻한 곳에 가서 두런 두런,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말들을 나누고 싶다.


Posted by cox4 :

아니오

2012. 3. 4. 02:15 from 그래서 오늘

어깨를 구부정하게 하고 오랜만에 웹에 있는 친구들 블로그, 관심있는 공간을 돌아다녔다. 어깨는 아프지만 마음은 넉넉해졌다. 페북이나 트위터를 구경하고 난 뒤와는 전혀 다른 감성이다. 블로그를 돌아다녀서인지, 또 오늘 우연히 만난 한 언니가 지금 자신을 돌아보고 긴 미래를 구상하고 있다고 한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나도 이 공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졌다. 사람들은 변하고 떠나고 새롭게 만나고...작업실도 살고 있는 집도 사정에 따라 계속 이사를 다녀야하는 내게도 변하지 않는 주소 하나, 웹상에라도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모리에게 빌린 [공중그네]를 재밌게 읽었더니 또 재밌게 읽을 책이 없어졌다. [최후의 유혹]은 상권과 하권 중반까지는 쉬지 않고 읽었는데 얼마남지 않은 뒷부분을 못 읽어 몇 달째 잡고 있다. 어떻게 끝날 지 알고 싶은 마음과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공존. 재밌는 만화책을 읽고 싶은데 책방이 없는 우리 동네. 내일은 작업실 근처에 있는 알라딘중고서점에라도 가봐야겠다. 도서관에도 만화책이있을까?

그저께 [설국열차]라는 만화책을 빌려 읽었다. 자꾸 등장하는 여자들에 감정이입이 되어서 끔찍했다. 지구가 망하고 살아남은 인간들이 하나의 기차에 다 들어가서 끝없이 달리는 이야기인데, 그곳에서의 현실이 지금 기차밖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런 폐쇄된 공간, 극한의 상황에서 힘이 약한 여성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걸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나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극한의 상황은 폭력을 가져오기 쉽고, 가져올 수밖에 없고, 폭력의 공간에서 힘이 약한 여성은 성적인 존재로만 취급되기 쉽다. 전쟁시의 위안부가 그 대표적인 예. 극한의 상황에서도 비폭력,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할까? 무엇으로 가능할까?

물음은 문득 영화 제작환경으로 넘어가버린다. 결과물로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은 차치하고라도, 빚을 지며 모두가 허덕이면서 제작할 수밖에 없는 독립영화 제작환경에서 힘이 약한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는 것은 가능할까? 스탭들은 어떤 존재인가? 제작환경이 나아지지 않으면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한가?

일단,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Posted by cox4 :
어제 올 겨울 들어서 처음으로 방바닥에서 잤다. 침대에서 하강하여 따뜻한 방바닥에 한 번 등을 대니 다시 올라가기가 어려워서 오늘도 바닥잠이다. 봄이 오면 올라가겠다. 얼른 봄이 와서 창문 열어놓고 싱그런 바람 맞았으면 좋겠다. 푸른 싹 돋는 나무 넋놓고 쳐다봤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직 겨울도 제대로 못 즐겨놓고 무슨 소리. 군고구마 열 번 사먹고, 눈 내리면 시작하려고 했던 촬영도 하고, 따뜻한 카페에서 수다도 실컷 떨어야지, 봄은 아직 이르다.

오랜만에 오전부터 일이 있었다. 한 달 동안 청소년들 다큐제작교육에 참여한다. 오전에 일어나 전철을 타고 바라본 바깥 풍경이 낯설었다. 좋았다. 아직 올해 목표를 제대로 못 세웠는데 유일하게 하나 세운 게 있따면 약속시간 5분 전에 도착하는 것. 오늘 교육엔 다행히 약속시간 5분 전에 도착하여서 여유 있었다. 교육 마치고 다음 회의에는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해서 카페에서 시간을 흘려보냈지만.

다시 작업실에 가서 이것저것 하다보니 어느 새 11시, 서둘러 집에 와서 밥 먹었다. 맛있는 김치가 있어서. 그리고 새벽. 라디오 천국이 없는 이 새벽시간을 유난히 견디기 힘든 날이 있다. 그게 아마 오늘인가. 그래서 졸린 눈으로 일기를 쓰고 있나.

연말, 연초 대구 집에 가서 5일 정도 아무 것도 안하고 푹 쉬다 왔더니, 물론 둘째 조카 열심히 봤지만, 계속 그렇게 지내고 싶다. 일 안하고가 아니라 아주 편한 가족들 옆에서, 익숙한 친구들 가까이서, 조용한 골목이 많은 동네에서,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공기 속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는 더 만족스러워야할 것 같은데,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