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초]는 맥이 풀어져서 힘을 못 쓰는 상태라고 한다. 청소년 교육에 참여하는 18명의 중고딩들과 샘들 다섯 분과 같이 정동진영화제에 다녀 온 내가 그 꼴이다. 흐물흐물. 찾아보니 녹초는 초가 녹은 것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장마기간 동안 습기 때문에 방에 곰팡이가 많이 피었다. 곰팡이 냄새를 제거하려고 커다란 초를 세 개 사서 방과 욕실에 두었었는데, 그 초들도 거의 다 녹아서 녹초가 되었다. 냄새를 제거하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나도 인터뷰 촬영한 것 녹취해야 하는데, 그럴 힘이 없다. 새벽 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도착해서 낮엔 물놀이 (남자애들에게 물 먹지 않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물싸움을 했더니 팔이 떨어질 것 같다) 밤엔 영화를 보았다. 낮엔 바다에 몸을 맡긴 채 둥둥 떠다녔고, 밤엔 하늘에 뜬 달과 별을 보았다. 영화를 보는 것보다 더 좋았다. 해야 하는 일을 미뤄두고 간 여행(일까 교육일까)인지라, 마음 먹고 놀았다. 그러고 보니 바다 사진도 없다. 아이들 때문에 맥주를 마시지 못했던 것이 좀 아쉽다. 아이들도 교사들 때문에 맥주를 참았을테니 삐까삐까.
[녹초]는 맥이 풀어져서 힘을 못 쓰는 상태라고 한다. 청소년 교육에 참여하는 18명의 중고딩들과 샘들 다섯 분과 같이 정동진영화제에 다녀 온 내가 그 꼴이다. 흐물흐물. 찾아보니 녹초는 초가 녹은 것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장마기간 동안 습기 때문에 방에 곰팡이가 많이 피었다. 곰팡이 냄새를 제거하려고 커다란 초를 세 개 사서 방과 욕실에 두었었는데, 그 초들도 거의 다 녹아서 녹초가 되었다. 냄새를 제거하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나도 인터뷰 촬영한 것 녹취해야 하는데, 그럴 힘이 없다. 새벽 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도착해서 낮엔 물놀이 (남자애들에게 물 먹지 않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물싸움을 했더니 팔이 떨어질 것 같다) 밤엔 영화를 보았다. 낮엔 바다에 몸을 맡긴 채 둥둥 떠다녔고, 밤엔 하늘에 뜬 달과 별을 보았다. 영화를 보는 것보다 더 좋았다. 해야 하는 일을 미뤄두고 간 여행(일까 교육일까)인지라, 마음 먹고 놀았다. 그러고 보니 바다 사진도 없다. 아이들 때문에 맥주를 마시지 못했던 것이 좀 아쉽다. 아이들도 교사들 때문에 맥주를 참았을테니 삐까삐까.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건 참 좋은 일이야' 친구에게서 온 메일을 버스 타고 작업실에 가는 길에 두 번, 작업실 의자에 앉자마자 또 한 번, 그리고 방금 전에 한 번 더 읽었다. 친구의 말처럼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작업을 마치고 나면 더욱 확고해지는 생각이다. 나도 아는 사실이지만, 신뢰하는 이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면 더욱 잘 알게 되는 기분이 든다. 그래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걸 직업으로 갖게 된 건 감사한 일이에요.
공부방 아이들과 전쟁같은 편집 교육을 하고 있다. 두 개의 미디어센터를 오가며 월,수, 주말 내 편집을 한 지도 벌써 2주 째. 그러고도 아직 완성을 못해 오늘도 10시까지 편집을 했다. 편집 초반엔 나도 이걸 언제 끝내나 걱정이 앞섰는데, 막바지에 왔는지 하나 둘 작업을 끝내기 시작했다. 최종출력을 하면서 뿌듯해하고 으쓱해하는 표정들을 보는 것이 즐겁다. 주말, 찜통 같은 편집실에서도 투덜대면서도 자리 한 번 뜨지 않고 열심히 편집했던 아이들. 교사들도 그 모습을 신기해한다. 편집 교육을 하면 여기 저기서 '깅' '기기깅' 자기 먼저 봐달라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끝이 없다. 편집 교육 때만 인기 만점이다. 응, 응 갈게, 알았어 하고 대답해놓고도 한참 있다가 가서 대답을 해준다. 편집을 먼저 끝낸 아이들이 집에 가고 대여섯명이 남았는데, 전체를 처음 보는 친구들 작업도 있었다. 나를 그렇게 애타게 부르고, 찾아다녔는데 한 번도 못왔구나, 아차 싶은 마음, 서운하지 않았을까 아이 눈치를 보면서 애써 꼼꼼히 체크하는데, 이미 지칠대로 지친 아이들은 이것저것 수정하라는 것이 많은 내 말에 짜증이 나는 눈치다. 달래 가며 윽박질러 가며 장난치고 놀려가며 편집을 거의 끝냈다. 그러고도 못한 아이들이 남아서 한 번 더 편집교육을 해야 한다. 20명은 역시 많은 인원이다. 편집을 마친 아이들이 깅한테 '허락'을 맡아야 한다고 했던 말이 마음에 걸린다. 나의 어떤 태도가 그들에게 '허락'이라는 단어를 연상시켰을까? 자막길이가 짧지 않은지, 사운드 조절은 했는지, 제목을 잘 달았는지, 엔딩크레딧은 넣었는지 그런 걸 체크했는데 왜왜왜! 아무리 생각해도 '허락'이라는 단어를 가져올만한 태도를 보인 적이 없는데, 왜 '검사'도 아니고 '허락'일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단어선택이 이상한 거라고 우겨야지. 자기가 만든 작품을 출력해 플레이 해보면서 만족스럽냐고 물어보면 '응 만족스러워'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내거 봐봐. 완전 잘했어.'라고 나를 끌고 가던 팔. 그들의 노력의 과정과 결과물, 자기 평가에 내가 열심히 고개 끄덕이고 긍정해줬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럴려고 노력은 했는데, 너무 바빠서 놓친 게 많은 것 같다. 그들이 노력한 과정을 잘 기억하고 있어야겠다. 어쨌든 첫 번째 상영회는 정해졌다. 기대.
그래도 내가 교사로서 많이 성장했다고 스스로 느껴질 때가 있다. 교육을 하던 초반엔 참여자들이 안 오거나, 편집을 포기하면 엄청 부담이 되었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하고. 참여자들 기다리면서 애타기도 하고. 지금도 그런 건 비슷하지만, 그래도 정해진 내 몫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다. 교사로서 내 몫이 있고, 공부방 교사들의 몫, 아이들의 몫, 또 시간들에게 의지해야 하는 몫이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미디어교육을 통해 모든 것, 아니 많은 걸 할 수 없다는 것도 아는 것 같다. 아이들이 나를 칭찬해주지 않기 때문에 나는 내가 스스로 칭찬한다.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길게 보고 하자.
라디오에서 <그런 날에는>이 나온다. 재주소년 버전과는 또 다른 느낌의 들국화. 이 노래 참 좋아한다. 가사에 나오는 '거기'는 어디인 걸까? 나는 거기에 있는 걸 접기로 했다.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나는 나를 보호하기로 했다. 며칠 전부터 옥상달빛의 <그래야 할 때>라는 노래가 계속 맴돈다. 자주 듣고 있다. 가만히 대답하듯 '그래요'라고 말하는 옥달의 목소리가 참 좋다. 그래요. 앨범 발매하기 전에 라천에 나와서 불렀을 때부터 무척 좋았다. 문자를 어떻게 보낼까 쓰다 지우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그래요'라고 보냈다. 덕분에 달콤한 잠이 아니라 악몽에 시달리고 있지만, 괜찮다. 요즘 정신없이 바쁘니까. 괜찮다. 주말엔 편집 교육이 없어서 간만에 쉴 수 있을테니까. 그래요.
집에 오니 룸메 언니가 자기 회사 나온다면서 피디수첩을 보고 있었다. 최저임금에 관한 것이었다. 최저임금 투쟁이 곧 자기 임금투쟁이라던 허브 말도 떠오르고, 화면에 등장하는 언니 매장 막내들의 월급 명세서도 아찔했다. 아닌척 했지만,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있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내가 요즘 이렇게 바쁜 이유도 그것과 다르지 않는 것 같아서... 에잇, 오늘 온 전화부탁은 거절할 걸.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리고 잘 거절해야 한다. 라디오는 꼭 끄려고 하면 좋은 노래가 연속으로 나온다. 라디오도 잘 거절해야 한다.
시간을 비워두어야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기운도 나고 웃기도 한다. 시간이 가는 곳에 마음이 간다.
공부방 아이들과 전쟁같은 편집 교육을 하고 있다. 두 개의 미디어센터를 오가며 월,수, 주말 내 편집을 한 지도 벌써 2주 째. 그러고도 아직 완성을 못해 오늘도 10시까지 편집을 했다. 편집 초반엔 나도 이걸 언제 끝내나 걱정이 앞섰는데, 막바지에 왔는지 하나 둘 작업을 끝내기 시작했다. 최종출력을 하면서 뿌듯해하고 으쓱해하는 표정들을 보는 것이 즐겁다. 주말, 찜통 같은 편집실에서도 투덜대면서도 자리 한 번 뜨지 않고 열심히 편집했던 아이들. 교사들도 그 모습을 신기해한다. 편집 교육을 하면 여기 저기서 '깅' '기기깅' 자기 먼저 봐달라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끝이 없다. 편집 교육 때만 인기 만점이다. 응, 응 갈게, 알았어 하고 대답해놓고도 한참 있다가 가서 대답을 해준다. 편집을 먼저 끝낸 아이들이 집에 가고 대여섯명이 남았는데, 전체를 처음 보는 친구들 작업도 있었다. 나를 그렇게 애타게 부르고, 찾아다녔는데 한 번도 못왔구나, 아차 싶은 마음, 서운하지 않았을까 아이 눈치를 보면서 애써 꼼꼼히 체크하는데, 이미 지칠대로 지친 아이들은 이것저것 수정하라는 것이 많은 내 말에 짜증이 나는 눈치다. 달래 가며 윽박질러 가며 장난치고 놀려가며 편집을 거의 끝냈다. 그러고도 못한 아이들이 남아서 한 번 더 편집교육을 해야 한다. 20명은 역시 많은 인원이다. 편집을 마친 아이들이 깅한테 '허락'을 맡아야 한다고 했던 말이 마음에 걸린다. 나의 어떤 태도가 그들에게 '허락'이라는 단어를 연상시켰을까? 자막길이가 짧지 않은지, 사운드 조절은 했는지, 제목을 잘 달았는지, 엔딩크레딧은 넣었는지 그런 걸 체크했는데 왜왜왜! 아무리 생각해도 '허락'이라는 단어를 가져올만한 태도를 보인 적이 없는데, 왜 '검사'도 아니고 '허락'일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단어선택이 이상한 거라고 우겨야지. 자기가 만든 작품을 출력해 플레이 해보면서 만족스럽냐고 물어보면 '응 만족스러워'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내거 봐봐. 완전 잘했어.'라고 나를 끌고 가던 팔. 그들의 노력의 과정과 결과물, 자기 평가에 내가 열심히 고개 끄덕이고 긍정해줬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럴려고 노력은 했는데, 너무 바빠서 놓친 게 많은 것 같다. 그들이 노력한 과정을 잘 기억하고 있어야겠다. 어쨌든 첫 번째 상영회는 정해졌다. 기대.
그래도 내가 교사로서 많이 성장했다고 스스로 느껴질 때가 있다. 교육을 하던 초반엔 참여자들이 안 오거나, 편집을 포기하면 엄청 부담이 되었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하고. 참여자들 기다리면서 애타기도 하고. 지금도 그런 건 비슷하지만, 그래도 정해진 내 몫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다. 교사로서 내 몫이 있고, 공부방 교사들의 몫, 아이들의 몫, 또 시간들에게 의지해야 하는 몫이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미디어교육을 통해 모든 것, 아니 많은 걸 할 수 없다는 것도 아는 것 같다. 아이들이 나를 칭찬해주지 않기 때문에 나는 내가 스스로 칭찬한다.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길게 보고 하자.
라디오에서 <그런 날에는>이 나온다. 재주소년 버전과는 또 다른 느낌의 들국화. 이 노래 참 좋아한다. 가사에 나오는 '거기'는 어디인 걸까? 나는 거기에 있는 걸 접기로 했다.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나는 나를 보호하기로 했다. 며칠 전부터 옥상달빛의 <그래야 할 때>라는 노래가 계속 맴돈다. 자주 듣고 있다. 가만히 대답하듯 '그래요'라고 말하는 옥달의 목소리가 참 좋다. 그래요. 앨범 발매하기 전에 라천에 나와서 불렀을 때부터 무척 좋았다. 문자를 어떻게 보낼까 쓰다 지우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그래요'라고 보냈다. 덕분에 달콤한 잠이 아니라 악몽에 시달리고 있지만, 괜찮다. 요즘 정신없이 바쁘니까. 괜찮다. 주말엔 편집 교육이 없어서 간만에 쉴 수 있을테니까. 그래요.
집에 오니 룸메 언니가 자기 회사 나온다면서 피디수첩을 보고 있었다. 최저임금에 관한 것이었다. 최저임금 투쟁이 곧 자기 임금투쟁이라던 허브 말도 떠오르고, 화면에 등장하는 언니 매장 막내들의 월급 명세서도 아찔했다. 아닌척 했지만,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있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내가 요즘 이렇게 바쁜 이유도 그것과 다르지 않는 것 같아서... 에잇, 오늘 온 전화부탁은 거절할 걸.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리고 잘 거절해야 한다. 라디오는 꼭 끄려고 하면 좋은 노래가 연속으로 나온다. 라디오도 잘 거절해야 한다.
시간을 비워두어야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기운도 나고 웃기도 한다. 시간이 가는 곳에 마음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