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되었을 때, 나는 차를 마신다. 커피보다는 따뜻하고 맑은 물에 우려낸 차.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과자를 먹는다. 자갈치, 오징어집, 짱구 같은 오래된 이름의 과자들을 선택한다. 어릴 때부터 먹었던 과자가 은연중에 안정감을 주나보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와는 좀 다르지만, 마음이 허전할 때는 생라면을 부셔 먹는다. 면이 얇고 고소한 안성탕면이나 진라면이 괜찮다. 절반으로 나눠서 스프를 뿌려 먹고 절반 또 다시 절반, 그러다보면 부스러기와 스프만 은색 비닐 위에 남는다. 지금 내 오른쪽 옆에 빈 라면 봉지가 그런 형태로 놓여있다. 청도와 밀양에 살던 국민학교 시절, 비가 와서 밖에 놀러나가지 못하는 날이면 이미 수차례 읽어 뒷 장의 이야기가 짐작되는 책들을 꺼내들고, 기억나는 뒷 이야기를 눌러가며 읽곤 했다.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책에 가장 어울리는 조합이 생라면이었다.
기분이 몹시 좋을 때와 몹시 우울할 때는 사과를 먹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먹거리이다. 기분이 좋을 때는 좋아서, 우울할 때는 우울함을 달래려고 먹는다. 사과는 몸에도 좋고 먹고 난 뒤에 느낌도 상쾌해서 결코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다. 요즘 사과가 많이 나오고 가격도 비교적 싸진 편이라 집으로 들어가는 시장길을 따라 사과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말 맛있는 사과를 먹고 싶은데, 요즘은 예전만큼 맛있는 사과를 맛보기가 힘들다. 사과는 역시 밀양 얼음골 사과이다. 사과 한 박스를 주문할까.
기분이 그저 그렇거나, 조금 지친 날에는 오징어 덮밥을 먹는다. 분식점 같은 식당에서 주문하려고 메뉴판을 한참 보다가도 결국 시키는 것은 오징어 덮밥이다. 오징어를 무척 좋아한다. 오징어의 쫄깃한 맛. 어떤 식당은 오징어는 빈약하고 양상추만 잔뜩이지만 뭐 그래도 늘 선택하게 된다. 친구들은 또 오징어 덮밥이냐고 하지만, 더이상 기분이 다운되면 안 되기 때문에 안전한 선택을 해야 되는 날은 어쩔 수 없다. 대신 기분이 좋은 날에는 오징어 덮밥을 잘 시키지 않는 것 같다. 아마 기분이 좋은 날은 나온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조금 기분이 나빠진다해도 괜찮기 때문에 새로운 메뉴를 선택하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다.
같은 맥락에서 밤과 고구마도 기분이 좋은 날 사게 된다. 고구마는 사과와 함께 내가 가장 자주 사는 품목이다. 특별히 요리를 해먹지는 않고 그냥 삶아 먹는다. 원재료에 뭔가를 넣는 것보다는 재료가 주는 맛을 느끼며 먹는 걸 좋아한다. 왜 그럴까? 아마 밤과 고구마는 삶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기분이 꿀꿀한데 밤이나 고구마가 익었나 안 익었나를 세심하게 살펴볼 성격은 못 되는 것 같다. 그럴 땐 그냥 와구와구 먹을 수 있는 것을 선택하고 기분이 좋은 날 싱크대 앞을 살랑이며 냄비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이다. 또 밤과 고구마는 앗 뜨거 하고 귀도 잡고 호호 불어도 보고 호들갑 떨며 먹어야 제 맛이기 때문에 기분 좋은 날의 간식이 되는 것이다.
오늘은 사과나 오징어집 같은 걸 먹을 기분이었다. 어제 충분히 잤는데도 오후부터 졸음이 쏟아졌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져 내리 네시간 낮잠을 잤다. 무엇을 잊기 위함인지는 모르겠다. 일어나 룸메가 삶아놓은 고구마를 두 개 먹었더니 배도 부르고 기분도 좀 나아졌다. 룸메와 수다를 좀 떨고 난 다음, 2주 정도만에 청소기를 돌리고 방도 닦는 청소를 했다. 여름 옷은 넣고 겨울 옷을 꺼냈다. 며칠 미뤄뒀던 일을 할까 하다, 까만 목도리를 매고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바깥 공기는 약간 차가웠지만 시원했다. 비가 온 직후라 그런 지 밤인데도 불구하고 맑은 하늘이 보였다. 낮게 깔린 구름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갔고, 별이 많이 보였다. 내일 하늘은 참 높고 맑겠구나, 이런 날 산에 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처럼 하늘을 자주 보겠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하늘의 기색을 살피며 사는 것은 회색 콘크리트 벽의 전광판을 마주치며 사는 것보다 훨씬 풍요롭겠다. 집 근처에 있는 공원을 걸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 지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혼자 공원을 걷는 사람들만 간간이 마주쳤다. 걸어도 복닥거리는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벤치에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고, 그 자리에서 움직일 줄 모르는 나무들을 보았다. 몸은 가만히 있는데 마음은 한 없이 출렁거렸다. 실장님이 주신 외로울 때 전화할 수 있는 쿠폰이 생각났다. 이럴 때 써야 하는 걸까? 그러다 에잇, 이 정도로 그 쿠폰을 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견딜만했다. 그제야 알았다. 쿠폰은 진짜 전화할 수 있어서 유용한 게 아니라, 내 상태를 체크해 볼 수 있게 해서, 그리고 누군가 있다는 든담함을 줘서 유용한 거였다. 새삼 실장님이 고마워졌다. 생각하면 마음이 채워지는 이름들을 하나, 둘 떠올렸다.
서대문 형무소를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슈스케의 신지수가 부른 노래가 맴돌았다. 윤미래 언니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신지수에게 또 다시 욕심을 줄이라는 평가를 할 때는 가혹하다 싶었다.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이 열정을 보이는 것은 높이 사주지만 그게 욕심이 되면 냉정해진다.스무살도 안 된 학생을 슈스케라는 경쟁의 시스템에 넣어놓고는 욕심을 줄이라고 이야기 하는 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하다 싶다. 욕심을 줄이는 게 그게 그리 쉬운 일인가. 두어주 만에 가능한 일이던가. 욕심을 줄이는 게 한 순간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른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미 그런 평가로 인해 자신감을 잃은 그녀에게 다시 한 번 욕심을 줄이라니. 그보다는 열정과 욕심의 차이가 무엇인지, 욕심과 욕망을 줄이고 바라볼 것은 무엇인지를 알려줘야 하는 게 아닌가.
나를 채우고 있던 것을 비워내려 하고 있다. 때로는 모든 것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아 불안하고 다시 채워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아직은 빈 공간이 생기는 것이 반갑다. 허나 시간이 지나 다 비워졌을 때, 무엇으로 채워야 할 지 알지 못한다면 그 땐 어떡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게 무서워 식어버린 것들을 꼭 붙들고 따뜻하다 말할 수는 없겠지. 언제쯤 나를 잊을 수 있을까. 내일은 맛있는 사과를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