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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012. 10. 28. 02:21 from 그래서 오늘

영화관 의자 깊숙히 엉덩이를 밀어넣고, 숨죽여 영화를 보고 싶은 지가 꽤 됐는데 좀처럼 가지지 않는다. 오늘도 여차저차하다보니 집에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환상의 빛]을 보았다. 보고나서 드는 생각은 하루라도 빨리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다는 것. 서늘한 바람이 영화 보는 내내 불어왔다. 이 감독이 참 좋다. 몇 개의 인터뷰를 다시 찾아보았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촬영이 엉망이란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부끄러움을 만회할 기회는 이번에도 주어지지 않는 것일까. 아무래도 다음부터는 촬영스탭은 하지 못할 것 같다. 

 

며칠 전, 자다가 일어났더니 눈이 욱씬 거렸다. 자기 전에는 멀쩡했었는데 갑자기 왜 이런가 싶어 살펴보니, 왼쪽 눈의 아랫살이 멍이 들었다. 누구에게 맞은 것처럼. 내 방에 룸메이트들이 들어와서 때렸을리는 없고, 내가 나를 스스로 때렸을리도 없어서 참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이틀동안 욱씬거릴 때마다 갸웃거려봐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3일째 되던 날 아침, 요란하게 울리는 핸드폰 알람을 끄려고 고개를 들다가 침대 머리맡에 잔뜩 쌓아둔 책 모서리에 왼쪽 눈을 처박는 순간 알게 되었다. '아... 이래서 멍들었구나.' 아픔보다는 원인을 알게 되었다는 기쁨과 어떻게 몸의 동작이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똑같을 수 있는지 신기함을 느끼기 바빴다. 멍은 금방 다 나았고 책은 여전히 쌓여있다.

 

일주일 전 쯤에는 아빠가 죽는 꿈을 꾸었다. 아빠가 왜 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영화로 치면 아빠는 프롤로그에서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죽었고, 영화는 내가 아빠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으로 구성되어있었다. 아빠의 죽음이 얼마나 실감이 났는지, 나는 아픈 마음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아빠가 죽은 뒤 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되었고, 커서는 한 번도 아빠에게 마음을 제대로 표현한 적이 없는 것이 무척 후회되었다. 아빠가 살아있다면 뒤에서 아빠를 힘껏 껴안으면서 아이처럼 좋아한다고 매달리고 싶다고 생각할 무렵 잠에서 깨어났다. 얼마나 안심이 되었는지 모른다. 아빠가 아직 살아있다. 꿈 덕분인지 다음에 아빠를 만나면 조금 더 딸스러운 애교를 부릴 수 있을 것 같다. 20살 무렵에 작성해놓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부모님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것이었는데, 적어놓고도 생각할 때마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었는데, 어쩐지 10년 안에 가능할 것도 같다. 사실 그 전까지는 표현을 못했다기보다는 부모님을 사랑한다는 감정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좋아하고 소중하고 신경쓰이고 무시할 수는 없지만, 보고 싶고 생각나는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보고싶은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늙어가고 있다.

 

[환상의 빛]도 남편의 죽음 이후, 살아가는 한 여자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작년 봄,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 때문에 한참 이런 기분을 느꼈던 것 같은데, 그제 한 언니의 부고를 듣고 또 혼란스러운 마음에 젖어든다. 만나면 가볍게 인사를 나누던 사이여서라기보다는 스치면서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단단했던 그녀의 삶이 10분 만에 진압된 화재로...

 

내가 처음으로 친구들 앞에서 울었던 날이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때였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평생 사시던 집이 불에 탔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동네의 친구들을 만났고, 작은 도로가 벤치에 앉아서 이렇게 허망할 수도 있냐며 울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하나의 물건도 건지지 못하셨다고 했다. 내가 쓴 일기, 다이어리, 흔적들을 비교적 아끼는 편인 나에게 그것은 굉장한 충격이었던 것 같다. 친구들 앞에서 고민 한 번 털어놓은 적이 없었기에 친구들은 적잖이 당황해했다. 울만큼 큰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우는 나를 어찌할 바 몰라 했다. 정작 몇 년 뒤, 나를 키워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기차를 타고 웃으며 장례식장에 갔다. 그 웃음이 당황스러웠지만, 계속 웃어졌던 것 같다. 물론 도착해서는 어른들이 웃을 때만 웃었고, 울어야 할 때는 울었다. 우리 할머니는 참 순하고 좋은 분이었는데, 어릴 때 나를 도맡아 키워줬는데, 철없는 손녀가 고맙다는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를 때 돌아가셨다. 가끔 할머니가 보고 싶다.

 

바다를 보고 있으면 바다가 자신을 부른다고 했다. [환상의 빛]에 나오는 할아버지가. 그리고 주인공의 죽은 남편은 환상의 빛을 따라 간 것이 아닐까라고 새로운 남편이 말한다. 일상에 깊이 스며든 죽음, 삶과 공존하는 죽음, 죽기 전엔 알 수 없는 세계. 세계.

Posted by cox4 :

기인

2012. 10. 7. 16:17 from 그래서 오늘

연휴를 기점으로 기약없이 자는 날이 계속 되고 있다. 기약이 없다는 것은 알람소리에 몸이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알람을 듣기라도 했었는데 연휴동안 긴장을 다 빼내버린 몸은 나의 말을 듣기로 거부한 것 같다. 물론 오전 일정이 있을 때는 가까스로 일어난다.


지금 촬영과 제작으로 참여하고 있는 작업이 있다. 이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면 시작하려고 생각하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작년 여름 정도부터 마음을 먹었는데 여태 못 들어가고 있다. 하고 있는 작업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획과정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머뭇거리는 지점이 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한 작업을 시작하면 배급까지 적어도 3년이란 시간은 걸리는 것 같다. 그 시간을 쏟을 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 6개월 정도 있었던 것 같고, 확신이 들었을 때는 본격적으로 작업하긴엔 시간이 없었다. 아니 왜 자꾸 시간이 없었다고 핑계를 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두려움이 있었다. 작업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나의 생활에 대한 두려움. 작업으로 일상이 매몰될까봐...여기까지 적고 보니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은 나의 큰 즐거움이고 삶의 원동력이지만, 작업으로 인해 정신없이 살고 싶지는 않다. 헌데 아직은 일상을 챙기면서 작업할 수 있는 내공이 쌓인 것 같지 않고, 일상의 즐거움을 포기할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욕구가 강렬하진 않은 것 같다. 아니 어쩌면...준비가 되지 않아 자신이 없는 것일수도 있다.


과거로부터 배우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한다. 역사를 설명하던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이런 문장을 보고 나는 지혜롭진 못하구나 하고 실망을 했던 느낌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드라마도 역사물에는 관심이 없다. 뭔가 과거의 이야기라고 하면 그냥 흥미가 떨어지는 것이다. 미래는 과거의 반복, 과거가 곧 다가올 미래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무척 동의하지만 뒤를 돌아보고 방향을 수정하는 감각은 전혀 익히지 못한 것이다. 그저 순간적인 감정에만 이끌리는 동물인 것이다. 왜 그럴까? 모두가 해품달에 열광할 때 한 편도 보지 않는 나에게 자주 질문을 했었다. 목표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기어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없기 때문에 끌리는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가까운 미래만 살아내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아무리 중요한 일을 위해서라 해도 순간의 즉각적인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5분만 더를 외치며 이불을 끌어안고 평생 지각을 일삼았고, 먹는 양을 줄이는 다이어트는 늘 실패했었다. 지각이 줄어든 것은 지각하지 않는 만족감이 잠이 주는 달콤함 보다 컸기 때문이고, 살이 저절로 빠진 것은 먹는 것으로 인한 포만감보다는 먹는 것을 부차적으로 생각하게 만든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를 통해 배우지 못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삶이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슬프다.


역사를 생각하다보니 두 번째 문단을 쓸 때 알듯 모를 듯 했던 나의 고민 지점이 명확해졌다. 다큐멘터리 제작은 어쩔 수 없이 완성을 위해 달리는 것이다. 과정의 즐거움도 무척이나 크지만, 그것은 끝까지 달려야 비로소 제대로 획득되는 즐거움이기도 한 것이다. 그 과정을 몇 차례 경험하면서, 즐거울수만은 없었던 지난 작업의 과정들을 잊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과정의 괴로움을 덜기 위해 동료들과 여러가지 활동을 하는 것에도 집중하고 여기저기 두리번 거리기도 했지만, 영화를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하는 과정의 괴로움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능한 그 괴로움을 줄이기 위해 애써온 시간들이 지난 1년이었고, 이제 남은 것은 필연적인 괴로움을 받아들이거나 다른 괴로움이 있는 일을 찾는 것이다. 일을 하는 모두가 감수하는 정도의 괴로움인데 나는 어째서 그 괴로움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까. 멍청하고도 오만하다.


거친 생각들을 좀 더 섬세하게 다듬고 싶다. 그래도 조금은 더 마음 따뜻하게 작업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은 돈인데...돈으로 작업시간을 만들 수 없다면...(사람)




Posted by cox4 :

더운 나라

2012. 9. 12. 14:08 from 그래서 오늘

가을을 그리 안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 공기 때문이다. 선선해지는 환절기는 비염때문에 늘 미열을 동반하고, 멍해지고, 두통이 오고, 에너지가 돌지 않는다. 작업실로 오는 길에 커피를 사먹을까 하다가 참았다. 어젯밤 마신 맥주 두 캔으로 코가 실신상태. 요즘 코를 위해 운동도 하고 족욕도 하는데 고작 맥주 두 캔을 마시자마자 콧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러닝노우즈. 알딸딸한 와중에도 족욕을 하고 잤다. 일어나면 호흡이 좋지 않아서 얼굴을 팅팅 부어있고 기분은 상쾌하지 않고!


2년 전 편집하던 시기도 가을이었는데 집중력이 너무 떨어져서 큰 맘 먹고 비염 전문 한의원을 찾아 약을 먹었다. 즉시 호전 되었지만 한 달 약값이 너무 비싸서 한 달만 먹고 멈췄었다. 어젯밤 그 약을 다시 먹기로 결심하였다. 일단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고 목련꽃 세 개를 넣었다. 목련이 담긴 통을 열자 마자 풍기는 향기가 좋아서 블질도 하고 있다. 말린 사람의 정성이 고스란히 보인다. 고맙다고 충분히 말했는지 모르겠다. 버스타고 오는 길에도 트위터로 비염을 검색해서 나와 같은 비염환자들이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겪고 있는지 확인해보았다. 다들 죽을 맛인 것 같았다. 단연 압도적인 것이 비염을 욕하는 말들이었다. 그 심정 이해가 간다.


차를 마셔서 그런 지 바로 코가 뚫렸다. 더운 나라로 여행을 가고 싶다. 더러운 비염 이야기 끝.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