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의자 깊숙히 엉덩이를 밀어넣고, 숨죽여 영화를 보고 싶은 지가 꽤 됐는데 좀처럼 가지지 않는다. 오늘도 여차저차하다보니 집에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환상의 빛]을 보았다. 보고나서 드는 생각은 하루라도 빨리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다는 것. 서늘한 바람이 영화 보는 내내 불어왔다. 이 감독이 참 좋다. 몇 개의 인터뷰를 다시 찾아보았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촬영이 엉망이란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부끄러움을 만회할 기회는 이번에도 주어지지 않는 것일까. 아무래도 다음부터는 촬영스탭은 하지 못할 것 같다.
며칠 전, 자다가 일어났더니 눈이 욱씬 거렸다. 자기 전에는 멀쩡했었는데 갑자기 왜 이런가 싶어 살펴보니, 왼쪽 눈의 아랫살이 멍이 들었다. 누구에게 맞은 것처럼. 내 방에 룸메이트들이 들어와서 때렸을리는 없고, 내가 나를 스스로 때렸을리도 없어서 참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이틀동안 욱씬거릴 때마다 갸웃거려봐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3일째 되던 날 아침, 요란하게 울리는 핸드폰 알람을 끄려고 고개를 들다가 침대 머리맡에 잔뜩 쌓아둔 책 모서리에 왼쪽 눈을 처박는 순간 알게 되었다. '아... 이래서 멍들었구나.' 아픔보다는 원인을 알게 되었다는 기쁨과 어떻게 몸의 동작이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똑같을 수 있는지 신기함을 느끼기 바빴다. 멍은 금방 다 나았고 책은 여전히 쌓여있다.
일주일 전 쯤에는 아빠가 죽는 꿈을 꾸었다. 아빠가 왜 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영화로 치면 아빠는 프롤로그에서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죽었고, 영화는 내가 아빠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으로 구성되어있었다. 아빠의 죽음이 얼마나 실감이 났는지, 나는 아픈 마음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아빠가 죽은 뒤 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되었고, 커서는 한 번도 아빠에게 마음을 제대로 표현한 적이 없는 것이 무척 후회되었다. 아빠가 살아있다면 뒤에서 아빠를 힘껏 껴안으면서 아이처럼 좋아한다고 매달리고 싶다고 생각할 무렵 잠에서 깨어났다. 얼마나 안심이 되었는지 모른다. 아빠가 아직 살아있다. 꿈 덕분인지 다음에 아빠를 만나면 조금 더 딸스러운 애교를 부릴 수 있을 것 같다. 20살 무렵에 작성해놓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부모님에게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것이었는데, 적어놓고도 생각할 때마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었는데, 어쩐지 10년 안에 가능할 것도 같다. 사실 그 전까지는 표현을 못했다기보다는 부모님을 사랑한다는 감정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좋아하고 소중하고 신경쓰이고 무시할 수는 없지만, 보고 싶고 생각나는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보고싶은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늙어가고 있다.
[환상의 빛]도 남편의 죽음 이후, 살아가는 한 여자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작년 봄,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 때문에 한참 이런 기분을 느꼈던 것 같은데, 그제 한 언니의 부고를 듣고 또 혼란스러운 마음에 젖어든다. 만나면 가볍게 인사를 나누던 사이여서라기보다는 스치면서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단단했던 그녀의 삶이 10분 만에 진압된 화재로...
내가 처음으로 친구들 앞에서 울었던 날이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때였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평생 사시던 집이 불에 탔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동네의 친구들을 만났고, 작은 도로가 벤치에 앉아서 이렇게 허망할 수도 있냐며 울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하나의 물건도 건지지 못하셨다고 했다. 내가 쓴 일기, 다이어리, 흔적들을 비교적 아끼는 편인 나에게 그것은 굉장한 충격이었던 것 같다. 친구들 앞에서 고민 한 번 털어놓은 적이 없었기에 친구들은 적잖이 당황해했다. 울만큼 큰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우는 나를 어찌할 바 몰라 했다. 정작 몇 년 뒤, 나를 키워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기차를 타고 웃으며 장례식장에 갔다. 그 웃음이 당황스러웠지만, 계속 웃어졌던 것 같다. 물론 도착해서는 어른들이 웃을 때만 웃었고, 울어야 할 때는 울었다. 우리 할머니는 참 순하고 좋은 분이었는데, 어릴 때 나를 도맡아 키워줬는데, 철없는 손녀가 고맙다는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를 때 돌아가셨다. 가끔 할머니가 보고 싶다.
바다를 보고 있으면 바다가 자신을 부른다고 했다. [환상의 빛]에 나오는 할아버지가. 그리고 주인공의 죽은 남편은 환상의 빛을 따라 간 것이 아닐까라고 새로운 남편이 말한다. 일상에 깊이 스며든 죽음, 삶과 공존하는 죽음, 죽기 전엔 알 수 없는 세계.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