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늘'에 해당되는 글 115건

  1. 2013.07.02 비오는 아침 1
  2. 2013.07.01 1
  3. 2013.06.24 길고도 짧다

비오는 아침

2013. 7. 2. 11:00 from 그래서 오늘

오랜만에 빗소리를 들으면서 깼다. 요즘 비교적 일찍 자다보니 아침이면 일어난다. 그래봤자 7-8시이다. 푹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가볍다. 일하고 자고 다시 일하고 먹고 그런 생활의 반복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만족스럽기 때문에 한 두 가지에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룸메가 만들어놓은 꽁치 김치찌개에 밥을 먹고 나왔다. 작업실 옆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실까 라떼를 마실까 고민하다가 라떼를 샀다. 부드러운 것이 아직은 많이 필요한 상태이다.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며 비가 그쳐가고 있는 창밖을 보는데 올 한 해가 나에게 무척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어느 한 해 중요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이번 작업이나 올 해의 몇 가지 일들이 나를 큰 흐름의 시작에 서 있게 만들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부탁하고 싶은 것은 스스로 괴로움을 자처하지 말라는 것이다. 상상을 줄이고 눈 앞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의 괴로움은 눈 앞에 있는 것을 보지 않고 머리 뒤통수 혹은 눈두덩이 정도에 있는 것들에 골몰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차라리 가슴은 낫다. 그걸 알면서도 반복한다는 것은 그것이 나의 타고난 기질이기 때문일 것이다. 단어를 정확히 외우는 것, 외면일기를 적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 기타줄을 손으로 튕기는 것, 야구공의 단단함을 느끼는 것, 노래의 가사와 연주를 정확히 듣는 것, 친구들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는 것, 음식을 먹을 때 꼼꼼히 씹어 먹는 것이 그 타고난 기질을 보완해서 삶에 대한 만족감을 늘려줄 수 있는 소소한 방법들이다. 소설을 읽는 것, 예능을 보는 것, 걷는 것, 음악에 파묻히는 것은 도저히 컨트롤이 되지 않을 때 도망가는 방법들인데, 그렇게 도망가서라도 일단 버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일기를 쓰는 것은 한 호흡을 내쉬며 매듭을 짓는 것이다. 기도는 입이 떼어지지 않거나 외로울 때 하는 것이다. 오늘은 기도로 시작했지만, 잠들 때에는 외면일기로 마무리 하고 싶다.


Posted by cox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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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1. 21:23 from 그래서 오늘

7월이라니 벌써 한 해의 반이 갔다고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르냐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상반기가 가고 하반기가 도래한 것이다. 하루 사이에. 나는 근데 7이라는 숫자보다 다시 1이라는 숫자가 온 것이 좋다. 뭔가 다시 한 달의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생각, 시간이 어쩐지 넉넉한 듯한 느낌이 든다.


오늘 아침에 9월에 이사가게 될 지도 모를 집을 보러갔다. 그 집의 방을 보러갔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그동안 운이 따라줘서 늘 비교적 싼 값에 넓은 집과 넓은 방에 살았다. 9월에 이사를 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그 운이 따라줄 것 같아서 초조해하지는 않았다. 여차하면 조금 비싸더라도 깔끔한 원룸에서 한 일년 살아보자 마음을 먹고 있던 차였다.


그저께 12시에 잠들었다가, 너무 현실적이어서 악몽이었던 꿈에서 깨니 새벽 2시. 아픈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문자가 띠링 오면서 나도 몇 번 보았던 사람이 작업실 근처에 사는데 방이 하나 남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집을 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건너서 듣고 연락을 해온 것이다. 그저께 낮에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여기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 골목 근처라고 했다. 집세도 싸고 조건도 좋다. 오늘 방을 보러갔는데 걸어가는 길에 나무가 그득하다. 가까운 곳에 수영장이 있는 체육관도 있다. 도착해서 보니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집이 좁고 방도 작았다. 하지만 같이 살게 될 지도 모를 분이 마음에 들고, 그 분이 주는 안정감이 좋았다. 집세에 비해 방이 작다고 불평할만한 것도 아니었다. 시세를 따져보면. 그동안 머물렀던 방이 컸던 것일 뿐이었다. 그 정도 좁은 방에 살았던 건 혼자 살았던 봉천동 옥탑방이 유일했던 것 같다. 다시 작은 방이다. 조금 답답하게 여겨지면서도 반가웠다. 그동안 짐이 많이 늘었다. 이번 이사 때는 옷이며 책이며 별로 없는 짐들도 왕창 줄여서 당장이라도 여행을 떠날 수 있을만큼의 짐만 남기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디든 당장 떠날 수 있는 상태. 애써 머무르려고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먼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 상태. 그걸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주까지 고민하겠다고 했지만, 이 정도로 나의 상황에 최적화된 집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정도 맞춰진 집이 나를 찾아왔으니, 그러면 몇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도 살아주는 것이 인생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인생까지 언급할 정도는 아닌 일이지만.


새로운 집으로 이사가고 싶은 마음이 벌써 한가득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좋고 무엇보다 룸메들이 좋지만, 이제 새로운 느낌을 안고 일상을 이어가보고 싶다. 많이 버리고 마음에 쏙 드는 것들만 남기고 싶다. 마음에 쏙 들었는데 그동안 사지 못했던 것들을 이번 기회에 사 볼 생각이다. 공간을 꾸미는 것 뿐 아니라 하고 있는 일, 만나는 사람들, 보고 듣는 것들에 대해서 요즘 모두 이런 태도인 것 같다. 마음에 쏙 드는 것들만 하기에도 시간이 아깝다. 마음에 쏙 드는 일만 해도 살아지기도 하는 것 같다. 준비할 수 없는 불행이 찾아오기전까지는 이 시간들을 즐기고 싶다. 불행과 불운이 나에게도 찾아올 수 있다는 것만 잊지 않는다면, 괜찮지 않을까?



Posted by cox4 :

길고도 짧다

2013. 6. 24. 18:31 from 그래서 오늘

아침에 일정을 시작하다보니 하루가 길고도 짧다. 사과 하나를 먹고 시장의 수선집에 붐폴 가방을 만들어달라고 보여주고, 은행에 가서 고장난 체크카드 다시 발급받고, 침대에 앉아 소설책을 몇 장 넘기며 보일러 수리하는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몇 일동안 작동하지 않던 보일러를 고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을 나섰다. 작업실에서 빗질 몇 번 하고 쌓인 A4 종이들 분류하고 몇 통의 전화와 몇 통의 메일을 돌리고 나니 시간이 금방 간다. 밥을 먹고 트럭에서 파는 자두를 2천원어치 샀는데 빨갛고 신선하고 양도 많다. 원래는 살구를 사고 싶었는데 좀 더 익어야 할 것 같아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자두를 골랐다. 이제 홍대 쪽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 파일 발송하는 시간이 많이 남아서 블로그에 한 번 들렀다. 애타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조만간 끝이 나기를 바랄 뿐이다.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