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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1. 21:23 from 그래서 오늘

7월이라니 벌써 한 해의 반이 갔다고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르냐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상반기가 가고 하반기가 도래한 것이다. 하루 사이에. 나는 근데 7이라는 숫자보다 다시 1이라는 숫자가 온 것이 좋다. 뭔가 다시 한 달의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생각, 시간이 어쩐지 넉넉한 듯한 느낌이 든다.


오늘 아침에 9월에 이사가게 될 지도 모를 집을 보러갔다. 그 집의 방을 보러갔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그동안 운이 따라줘서 늘 비교적 싼 값에 넓은 집과 넓은 방에 살았다. 9월에 이사를 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그 운이 따라줄 것 같아서 초조해하지는 않았다. 여차하면 조금 비싸더라도 깔끔한 원룸에서 한 일년 살아보자 마음을 먹고 있던 차였다.


그저께 12시에 잠들었다가, 너무 현실적이어서 악몽이었던 꿈에서 깨니 새벽 2시. 아픈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문자가 띠링 오면서 나도 몇 번 보았던 사람이 작업실 근처에 사는데 방이 하나 남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집을 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건너서 듣고 연락을 해온 것이다. 그저께 낮에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여기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 골목 근처라고 했다. 집세도 싸고 조건도 좋다. 오늘 방을 보러갔는데 걸어가는 길에 나무가 그득하다. 가까운 곳에 수영장이 있는 체육관도 있다. 도착해서 보니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집이 좁고 방도 작았다. 하지만 같이 살게 될 지도 모를 분이 마음에 들고, 그 분이 주는 안정감이 좋았다. 집세에 비해 방이 작다고 불평할만한 것도 아니었다. 시세를 따져보면. 그동안 머물렀던 방이 컸던 것일 뿐이었다. 그 정도 좁은 방에 살았던 건 혼자 살았던 봉천동 옥탑방이 유일했던 것 같다. 다시 작은 방이다. 조금 답답하게 여겨지면서도 반가웠다. 그동안 짐이 많이 늘었다. 이번 이사 때는 옷이며 책이며 별로 없는 짐들도 왕창 줄여서 당장이라도 여행을 떠날 수 있을만큼의 짐만 남기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디든 당장 떠날 수 있는 상태. 애써 머무르려고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먼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 상태. 그걸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주까지 고민하겠다고 했지만, 이 정도로 나의 상황에 최적화된 집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정도 맞춰진 집이 나를 찾아왔으니, 그러면 몇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도 살아주는 것이 인생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인생까지 언급할 정도는 아닌 일이지만.


새로운 집으로 이사가고 싶은 마음이 벌써 한가득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좋고 무엇보다 룸메들이 좋지만, 이제 새로운 느낌을 안고 일상을 이어가보고 싶다. 많이 버리고 마음에 쏙 드는 것들만 남기고 싶다. 마음에 쏙 들었는데 그동안 사지 못했던 것들을 이번 기회에 사 볼 생각이다. 공간을 꾸미는 것 뿐 아니라 하고 있는 일, 만나는 사람들, 보고 듣는 것들에 대해서 요즘 모두 이런 태도인 것 같다. 마음에 쏙 드는 것들만 하기에도 시간이 아깝다. 마음에 쏙 드는 일만 해도 살아지기도 하는 것 같다. 준비할 수 없는 불행이 찾아오기전까지는 이 시간들을 즐기고 싶다. 불행과 불운이 나에게도 찾아올 수 있다는 것만 잊지 않는다면, 괜찮지 않을까?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