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아침

2013. 7. 2. 11:00 from 그래서 오늘

오랜만에 빗소리를 들으면서 깼다. 요즘 비교적 일찍 자다보니 아침이면 일어난다. 그래봤자 7-8시이다. 푹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가볍다. 일하고 자고 다시 일하고 먹고 그런 생활의 반복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만족스럽기 때문에 한 두 가지에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룸메가 만들어놓은 꽁치 김치찌개에 밥을 먹고 나왔다. 작업실 옆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실까 라떼를 마실까 고민하다가 라떼를 샀다. 부드러운 것이 아직은 많이 필요한 상태이다.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며 비가 그쳐가고 있는 창밖을 보는데 올 한 해가 나에게 무척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어느 한 해 중요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이번 작업이나 올 해의 몇 가지 일들이 나를 큰 흐름의 시작에 서 있게 만들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부탁하고 싶은 것은 스스로 괴로움을 자처하지 말라는 것이다. 상상을 줄이고 눈 앞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의 괴로움은 눈 앞에 있는 것을 보지 않고 머리 뒤통수 혹은 눈두덩이 정도에 있는 것들에 골몰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차라리 가슴은 낫다. 그걸 알면서도 반복한다는 것은 그것이 나의 타고난 기질이기 때문일 것이다. 단어를 정확히 외우는 것, 외면일기를 적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 기타줄을 손으로 튕기는 것, 야구공의 단단함을 느끼는 것, 노래의 가사와 연주를 정확히 듣는 것, 친구들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는 것, 음식을 먹을 때 꼼꼼히 씹어 먹는 것이 그 타고난 기질을 보완해서 삶에 대한 만족감을 늘려줄 수 있는 소소한 방법들이다. 소설을 읽는 것, 예능을 보는 것, 걷는 것, 음악에 파묻히는 것은 도저히 컨트롤이 되지 않을 때 도망가는 방법들인데, 그렇게 도망가서라도 일단 버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일기를 쓰는 것은 한 호흡을 내쉬며 매듭을 짓는 것이다. 기도는 입이 떼어지지 않거나 외로울 때 하는 것이다. 오늘은 기도로 시작했지만, 잠들 때에는 외면일기로 마무리 하고 싶다.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