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늘'에 해당되는 글 115건

  1. 2013.09.15 반복
  2. 2013.08.31 마르는 가을
  3. 2013.07.10 휩쓸려 1

반복

2013. 9. 15. 10:31 from 그래서 오늘

지금이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어보지만, 지금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음악을 끄고 가만히 있으니 내 숨소리가 제일 먼저 들렸고, 아침인데도 우는 귀뚜라미 소리, 새소리, 작업실 앞 원룸에서 나는 물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있어야 들리고 물끄러미 보아야 보이는데, 가만히 있기엔 내가 채워진 것이 없고 물끄러미 보다보면 파고들고 싶어진다. 그러다보니 얕은 일상에 허덕이고, 시선이 가야한다고 믿는 곳을 외면한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가만히, 물끄러미...



Posted by cox4 :

마르는 가을

2013. 8. 31. 14:49 from 그래서 오늘

아침에 일어나면 '아 가을이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불 속에서 좀 더 꼼지락 거리면서 꿈을 이어간다. 더 이상 전개할 꿈 속 이야기가 없으면 눈을 뜨고 한참 이런 꿈을 꾸게 된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한다. 일어나 거실로 나오면 햇살이 살짝 들어오는데, 역시 가을이구나 싶다. 계절은 이렇게 정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시간은 성실하게 자기 갈 길을 가는데, 나는 제대로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 가을로 가는 시기는 어렵다.


가을을 무서워하는 건 단순히 가을타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환절기가 되면서 코가 맹맹해지는 걸 수십년 겪다보니, 가을이랑은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깊숙히 새겨진 것 같다. 코가 맹맹하면 머리가 멍해지고 머리가 멍해지면 의욕이 사라진다. 잠을 자는 것만이 유일한 비상구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 비상구에 숨어들어 며칠의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은데, 가을이 정말 찾아오기 전에 마무리 해야 할 일들이 많다. 며칠동안 가까운 친구들에게서 안타까운 소식을 몇 개 들었다. 기운 내라고 하고 싶은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범위에 있는 일들이 아니라 이상한 방식의 위로들을 하게 되었다.


날이 선선해지면 바로 핸드크림을 찾게 된다. 한 밤 중에 목이 막혀 깨서 급하게 물을 마시는 일이 잦아진다. 그럴 때 예전에 한 연예인이 썼던 시가 생각이 난다. 바삭한 걸음을 인정하고 싶다.


하얀 쌀밥에 가재미얹어 한술뜨고 보니 낮부터 잠이 온다.

이 잠을 몇번 더 자야지만 나는 노인이 되는걸까.

나는 잠이들며 생각한다.

 
다시 눈을뜨면 다 키워논 새끼들이랑 손주들도 있었으면 좋겠다.

수고스러운 젊음일랑 끝이나고 정갈하게 늙는일만 남았으면 좋겠다.

 

그날의 계절은 겨울이였으면 좋겠다.

하얀눈이 펑펑 내려 온통을 가리우면 나는 그리움도 없는 노인의 걸음으로 새벽 미사에 갈 것이다.

 

젊은날 뛰어다니던 그 성당 문턱을 지나 여느날과 같은 용서를 빌고

늙은 아침을 향해 걸어 나올 때 그날의 계절은 마침 여름이였으면 좋겠다.

 

청명한 푸르름에 서러운 세월을 숨기우고 나는 그리움도 없는 노인의 걸음으로 바삭한 발걸음을 뗄 것이다.






Posted by cox4 :

휩쓸려

2013. 7. 10. 00:54 from 그래서 오늘

휩쓸려 다닌 적이 있었던가. 창신동에서 중고등학생들과 다큐멘터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그 사업비 카드로 기네스 맥주 한 잔 마시고 작업실에 들렀다. 내일 촬영을 위해 메모리 카드를 챙기고 나니, 내가 휩쓸려 다닌 적이 있었던가. 그런 생각이 든다. 오늘 구성안 회의를 하면서 지금 구성안이 처해있는 위험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내가 보기에도 위험했고, 나는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생각했던 그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으나 모르고도 싶기도 하다. 나도 휩쓸려 그렇게 되어버렸다고 말하는 기억 하나 정도 있어도 되지 않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기네스 한 잔 마시고도 블로그에 생각을 정리하는 나이니, 그건 그른 일인 것 같다. 허나 나도 휩쓸려 다니는 기억이 하나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나 싶다. 하지만 그게 이번 작업은 아니다. 그저 작고 소소한 일상의 범주에서 일어나면 좋겠다. 아니 어쩌면 이미 휩쓸리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잠이 부족하니 몽롱하다. 맥주 때문인가.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