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추운 날이다. 영하 15도를 오르내리고 체감기온은 25도나 된다고 했다. 집에 콕 박혀서 일하고 밖을 나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꼭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프리랜서라는 게 이럴 땐 좋다. 월급날이 없는 게 흠이긴 하지만. 친구의 부탁으로 대신 산 가방을 보내줘야 하는데 추워서 며칠 미뤘다. 새 가방을 기다릴 친구 얼굴이 아른아른. 이번 주 내내 춥다고 하길래 옷 입은 김에 나가자며 우체국으로 향했다. 밖은 과연 추웠다. 하지만 모두 나처럼 웅크리고 있는 게 아니라 요구르트 배달하는 분도 계셨고 경비하는 아저씨도 있고, 초등학교도 휴교 따윈 생각지도 않는 것 같았다. 조금 창피한 마음으로 마을버스를 탔다. 다음 정거장에서 20대 초반의 남자가 버스를 탔는데 잔액이 부족하다고 나왔다. 어 1800원이나 있었는데 왜 부족하지? 하더니 현금이 없는지 그냥 내려 걸어간다. 마을버스 아저씨가 조금 쫓아가 빵빵. 남자가 의아한 얼굴로 다시 타니 아저씨 다음에 두 번 찍으라고 한다. 남자는 기분 좋게 인사를 하고 뒤로 가서 앉는다. 오늘은 그 정도로 추운 날이다. 규칙을 어기더라도 이 정도의 배려는 해줄 수 있는 날씨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