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늘'에 해당되는 글 115건

  1. 2011.02.23 안전하고 비겁한 타이밍 5
  2. 2011.02.21 마음에 든다
  3. 2011.02.05 잠 온다 잠 온다 2
요즘 연일 강행군이다. 작업 마무리하면서 생소한 HD출력과 배급 관련한 업무들이 있고, 3월부터 시작할 공부방 미디어교육 준비, 작업한다고 그동안 미뤄뒀던 모임들을 꾸리느라 그렇다. 이렇게 적고 보니 별 일이 없는 것 같다. 그동안 듬성듬성 혼자서 작업만 하다가 뭔가 타인들과 연락을 주고 받고 문서를 주고 받으며 일을 하다보니 뭔가 빡빡한 느낌이 드나보다. 하나 둘 미뤄왔던 일들을 처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to do 리스트를 지워가는 느낌이랄까. 하루를 자유롭게 살자는 말을 되뇌이지 않으면 아마  to do 리스트를 지우는 재미도 잊고 질질 끌려갈 것이다. 그건 한 순간이다.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 것이 즐겁다. 오랜만에 듣는 친구들의 소식도 반갑다.

'돈 되는 작업을 해라' 는 말을 최근 자주 듣는다. 상대에 따라 그 말을 하는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안다. 엄마처럼 정말 돈 되는 작업을 해서 여유있게 살라는 의미에서 말하는 사람도 있고, 상업영화작업이 익숙하신 신감독님처럼 나의 좁은 폭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그 말이 나에게 그런 의미들로 읽힐 때는 사실 크게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 내가 돈이 필요하고 폭이 좁은 것은 사실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독립다큐 혹은 독립영화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면 이상할 정도로 혼란스럽다.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곱씹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독립'의 폭이 너무 좁은 것일까. 굳이 독립이 아니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다큐멘터리'의 폭이 너무 좁은 것일까. 돈 되는 작업을 하는 것과 내가 한 작업으로 돈을 버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느껴진다. 나도 당연히 내가 한 작업으로 돈을 벌고 싶다. 가능한 많이. 근데 이 일이 그럴 수 없는 조건이란 걸 알고 선택했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벌지 않게다는 것은 아니다...흔들리는 것은 내가 나를 어떤 바운더리 안에 위치시켜놓은 탓이다.

주저주저하다가 말 못할 때가 많았다. 내가 당사자가 아닌 격렬한 논쟁의 현장에 낀 적도 별로 없다. 예민한 신경전이 오가는 게시판에 글을 남긴 적도 없다. '나'의 일엔 누구보다 빠르게 판단을 내리지만, '남'의 일엔, 그게 설령 나와 거의 같은 처지의 '남'의 일일지라도, 빠르게 판단을 내린 적이 없다. 섣부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것이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넒은 것이라 믿었다. 스스로. 모든 사건과 논쟁과 첨예한 감정전이 지난 후에야 나는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모든 이들의 판단을 곱씹고 나서야 분명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신중하다고 말하기엔 너무 늦은 타이밍. 그런 일은 소수의 개인적인 관계에서보다 넓은 범위의 관계 사이에서 많이 있었다. 섣부른 판단일지 모른다고 주저하고 있을 때, 폭력적으로 자신의 판단을 내세우는 이가 대세가 되고 있을 때, 누군가는 아파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지 나에게 물어본다. 절레절레. 나는 섣부를지도 모른다고, 내가 틀릴지도 모른다고 의심해서가 아니라 괜히 말을 꺼냈다가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아질까봐, 다른 이들의 판단의 잣대 앞에 서는 것이 싫고 두려워서 모른 척 한 경우가 더 많았다. 안전하고 비겁한 타이밍. 확실히 모른 척하면 생활이 편하다. 그런데 자꾸 캥긴다.

올해는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늦지 않은 타이밍에 용기를 내어 말하는 방법, 제안하는 방법을 연습하기로 했다. 근데 벌써 두렵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 되뇌인다. 책임을 짐으로써 자유롭다. 책임을 짐으로써 자유롭다.

오늘 하루 성실하게 살았다. 자유롭게 잠들어야겠다. (남의 집이긴 하지만)


Posted by cox4 :

마음에 든다

2011. 2. 21. 00:48 from 그래서 오늘
오후에 일어나, 오후에 작업실에 갔다. 날이 좋아서 코트를 벗어 팔에 걸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걸음 속도는 추운 날에 비해 확연히 느려졌다. 버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따뜻함을 넘어 약간 답답한 느낌까지 준다. 오늘 일찍 일어났더라면, 창덕궁 근처를 산책할 수도 있었을텐데, 약간 아쉬워하며 작업실로 갔다. 가는 길은 짧았지만 그래도 웃음이 났다. 날이 좋으면 기분이 좋아질 수 있구나. 칙칙한 내 마음에 한가득 빛. 제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길.


물을 주지 않아서 풀 죽어 있는 화분이다. 물을 줬더니 금방 생생하게 살아났다.


김치찌개를 끓여먹으려고 김치를 꺼내 썰어 넣고, 가위로 파를 썰어넣었다. 그리고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는데 물이 샌다. 룸메언니가 며칠 전에 산 건데 하면서 살펴봤더니, 고무장갑이 잘려있다. 파를 썰다가 고무장갑까지 자른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장갑을 끼고 파를 잡진 않았을텐데?) 잘려나간 고무장갑이 보이지 않아 김치찌개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을 수 없어 포기. 김치찌개 안에 고무장갑이 들어있다해도 모르고 먹으면 약이겠지. 고무장갑을 새로 사놓아야 하는데 아직 못 샀다.


낙산공원에서 본 서울. 올 한해는 이 동네에 자주 가게 될 것 같다. 이 동네 청소년들과 미디어교육을 하게 될 것 같다.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갈 수 있길.

이 이야기는 별로 특별한 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이야기라면 요즈음 어느 신문에나 수없이 실려있다. 내 마음에 든 것은 바로 그의 말투였다. 그의 말 속에는 완전히 새로운 사상이 담겨 있었다. 예를 들면, 그 병사가 마을로 돌아왔을 때, 그가 농민들과 갈등을 겪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마까르 이바노비치는 이렇게 표현했다. <사람들은 병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누구나 다 알았지. 병사란 바로 '못 쓰게 된 농부' 거든>
            -미성년(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키, 열린책들 p.668

현재 하고 있는 작업을 마치고, 뭔가 새롭게 아니 여유있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 말고, 남는 시간에 유유자적하며 비어있는 샘을 채우고 싶다는 생각. 지인들은 그냥 쉬고 여행 다니거나 배우고 싶은 것 배우라고 하는데, 나는 자꾸만 신중해진다. 위의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못 쓰게 된 농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병사의 일을 하다가 다시 돌아와 농사를 지을 수도 있지만, 소설에 나오는 노인과 동네 사람들은 병사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한다. 농사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농사를 자기의 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된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어떤 종류의 일은 분명히 사람을 바꾼다. 하지만 어떤 책에서는 청춘이란 문을 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나는 두 가지의 태도가 다 마음에 든다.



Posted by cox4 :

잠 온다 잠 온다

2011. 2. 5. 03:01 from 그래서 오늘

잠이 오지 않는다. 오늘 늦게 일어나서이고, 며칠전부터 늦게 잤기 때문이다. 설 연휴 동안 집중해서 만들고 있던 작품 편집을 마무리 할 생각이었는데, 2주 정도 손을 놓고 있었더니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새로운 장면을 넣었더니, 모든 것이 흐트러지는 느낌이었다. 정말 결을 망친 건지 아니면 오랜만에 봐서 낯선 건지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새벽까지 작업할 생각이었는데, 덜컥 겁이나서 막차 타고 집에 왔다. 집에 올 땐 걸어올 생각이었는데 또 버스타고 왔다. 몸이 피곤하지 않으니 잠도 더 안 온다.

영화를 하나 보고 2시가 넘었는데도 말똥말똥. 아이폰으로 고스톱을 치다가는 또 어제처럼 쩔어서 자게 될까봐 일어나 앉았다. 배가 고프면 잠이 더 안 올까 싶어 냉장고를 뒤져, 유통기한이 일주일 지난 플레인 요구르트와 룸메가 좋아하는 과실주, 치즈를 꺼내왔다. 자기 전에 스탠드를 켜고 책을 읽는 것이 수면제였는데, 이사 온 후로 수빈이가 사준 스탠드가 고장이 나서 수면제를 못 먹었다. 작업실에서 지민이 아버지가 합정에 반이다 사무실 마련했을 때 선물해 주신 빨간 스탠드를 가져왔다. 수면제를 먹기 전에 마음의 불안을 덜기 위해 블로그에 일기도 써 본다. 자기 위한 노력. 내일은 반드시 일찍 일어나고, 몸을 많이 움직여서, 무너졌던 잠의 패턴을 바로 잡을 것이다.

며칠 동안 안개가 자욱하다. 비가 내리지도 않았는데 바닥이 젖어 있을 정도. 그래서 공기가 촉촉하다. 좋다. 걷고 싶은데, 잠 자느라 작업하는 시간을 까먹어서 마음이 초조하다. 걷는 데 시간을 못 내겠다. 다음주 믹싱이 끝나면 많이 걸을 수 있겠다. 그 전까지는 집중해야 한다. 며칠 남지 않았는데, 왜 이리 작업 속도는 더딘지. 작업을 마치면 선물로 나에게 자전거를 사줄 생각이다. 잔고가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으나, 할부로라도! 이번엔 누가 훔쳐가지 못하게 잘 보관하고, 크고 튼튼한 걸로 살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먼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요즘이 좋다. 생각이 없어진 것은 좋은데, 작업이 끝나기도 전에 흐물흐물함이 밀려와서 큰 일이다. 플레인도 다 먹고 치즈도 다 먹고 과실주도 다 먹어 가는데 아직 잠은 밀려오지 않는다. 어흐. 먹어서 이 닦고 자야하는데, 이 닦으면 잠이 다 달아날 것 같다.

생각해보니 억지로 일찍 잘 필요가 없는 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잠 온다. 잠 온다. 잠 온다. 잠 온다. 재미없는 책 읽어야겠다.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