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늘'에 해당되는 글 115건

  1. 2010.11.28 화들짝 2
  2. 2010.11.15 준비 6
  3. 2010.11.11 인생, 되는대로 1

화들짝

2010. 11. 28. 00:37 from 그래서 오늘
중고등학교 때 쓴 일기장을 서울에 가져왔나 싶어서 찾아보다가, 사진 뭉텅이와 편지들을 발견했다. 받은 편지는 잘 간직하고 있는 편인데, 가끔 이렇게 읽는 재미가 있다. 스물, 스물하나, 스물 둘 당시의 나는 정신없이 웃다가 이상하게 찍힌 사진이거나, 사진용포즈를 어색하고 취하고 있는 것 둘 중에 하나이다. (다이나)믹과 함께 찍은 사진. 카메라를 처음 잡았을 때의 사진.

그리고 볼 때마다 마음이 뭉클해지는 편지 하나를 발견했다. 늘 같은 부분에서 피식 웃고, 같은 부분에서 찡하게 된다. 나에게 피눈물을 흘릴거라고 했던 사람이 보냈던 편지. 그 말처럼 아픈 눈물을 쏟아내고 난 다음에야,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당시에 나는 참 이기적이었다. 늘 미안한 마음, 그리고 고마운 마음이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그러고 나서 화들짝. 나는 이제 정신을 차렸다. 미련이 많은 사람이 미련하다는 말을 듣는다. 미련은 없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절감하는 밤이다.

어제 만들고 있던 다큐멘터리 가편시사를 했고, 마음의 폭을 넓혀서 조금 더 분명히 내 목소리가 들리도록 구성을 손볼 생각이다.  내 목소리를 믿지 못해 감추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나는 내 목소리를 신뢰해주고 싶다. 나에게 주어진 산, 나는 그것을 뛰어넘고 싶다. 그 후에 주어진 결과를 놓고 다음을 생각하고 싶다. 먼 북소리는 좋지만, 먼 미래는 쓰잘데기없다. 중심을 잡기.



Posted by cox4 :

준비

2010. 11. 15. 00:06 from 그래서 오늘
아주 오랜만에 일기를 적는다. 종이 일기장도 내팽겨둔지 오래. 무엇때문인지 정신이 없었던 지난 한 달이었다. 참 무엇 때문인지 안다. 이사에 대한 걱정, 내년 일정에 대한 선택, 다큐멘터리 작업에 대한 고민 등 구체적인 것부터 삶의 태도에 대한 것들,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 등 갑자기 몰아치는 생각과 판단과 느낌에 당혹스러웠다. 그 모든 것이 먼 미래를 안정적으로 계획하려는 무모함에서 시작되었던 것. 불안함이 쓰나미처럼 몰려온 탓이었다. 그것은 내 마음이 빈곤해진 탓. 그렇게 저렇게 울고 인상쓰고 짜증내고 우울해하며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떤 것은 나 몰라라가 되고, 어떤 일은 몇 개월 후로 미뤄두게 되고, 어떤 관계는 정리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청소를 끝내고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아침에 늦잠을 자서 오늘 계획한 일정이 다 어그러져지는 꿈을 꾸다가 일어났더니 다행히 10시. 부랴부랴 일어나서 씻고 교회에 갔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교회지만, 늘 10분씩 지각을 하는 탓에 문 앞에 있는 분들은 나를 알아보지 않을까 민망하기도 하다. 예전처럼 꼬박꼬박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불편하지 않는 교회를 만난 것은 내 삶의 큰 기쁨이다.

사무실에 가서 어제 사용한 카메라를 반납하러 미디액트로 고고싱. 장비 반납하고 햄언니가 사온 커피를 마시면서 한참동안 이런 저런 계획, 다소 무리수인 것 같은 계획을 남발했다. 그런 시간들이 모여 구체적인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혼자 신나서 바쁜 언니의 시간을 잡아먹다가 버스타고 집으로 왔다. 5시.

집에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오징어와 고추와 바나나를 샀다. 생각해보니 하루종일 먹은 게 커피뿐. 요리하는 동안 배고픔을 참지 못할까봐 사온 바나나를 먹고, 그제 사둔 양파와 버섯을 볶아 반찬을 만들고, 오징어와 고추, 양파를 넣어 내가 세상에서 제일 많이 먹는 오징어 볶음을 만들었다. 아껴두었던 [성균관 스캔들] 종강편을 보면서 정말 오랜만에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종강편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나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 재밌게 봤다.

그리고 또 정말 오랜만에 방청소. 치우고 쓸고 닦다보니, 버릴 것이 눈에 띄었다. 읽지 않는 책들, 영수증들, 안 입는 옷 등. 이사가기 전에 조금씩 정리해서 버려야 한다. 매끈해진 방바닥을 보면 이상하게 책이 읽고 싶다. 학교 다닐 때 시험기간이 되면 내 방뿐 아니라 온집안 청소를 다하고서야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는데, 그 때의 느낌이 남아서인가. 깨끗한 공간에서 집중력이 높아진다. 그래서 오늘은 또 아껴두었던 [새로운 빈곤] 마지막 챕터를 읽을 생각이다. 올해 나의 베스트 책 중에 하나이다. 한 줄, 한 줄 읽으면서 생각이 멈추지 않아서 메모도 많이 했던 책. 다음 다큐작업을 한다면 이 책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될 것 같다. 집중해서 읽고 싶어서 결론스러운 마지막 챕터는 아껴두었다. 이상하게 읽으면서 무척 좋은 책의 마지막 챕터는 읽는 것을 계속 미루게 된다. 그러다 읽지 않는 경우도 있다. 끝나게 되는 것이 아쉬워서. 그러다가 나중에 결론 챕터만 읽으면 감흥이 전혀 오지 않음에도...소설은 재밌을수록 참지 못하고 빨리 읽는다. 올해 유난히 재밌는 책이 많았다. 많이 읽지 못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나에게 맞고 좋은 책을 읽고 싶어 신중히 고른 탓.

비염때문에 거금을 들여 한약을 먹고 있다. 잘 챙겨먹진 못하지만 이게 효과를 발휘한다. 휴지를 달고 살았는데 요즘은 하루에 한 두번이면 된다. 킁킁 거리는 것도 줄고 재채기도 하루에 수십번 했는데 한 번 정도도 잘 안한다. 콧구멍의 숨길도 아직 막혀있긴하지만 조금 넓어졌다. 그래서 잠이 더욱 달콤하다. 이러다 인생의 반을 자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 꿈만 좀 줄어들면 그야말로 숙면의 상태에 돌입할 수 있다. 완치를 위해선 두 달 정도 더 다녀야한다는데, 너무 비싸서 여기서 멈추는 것이 좋을지, 그래도 끝까지 다니는 것이 좋은지 모르겠다. 문득, 약을 먹어서 비염이 나은 게 아니라, 겨울이 깊어져서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20여년을 콧물 질질 흘리고 다녔던 걸 기억하면, 또 여전히 비염에 시달리고 있는 아빠를 생각해보면, 한약의 효과다. 열심히 먹어야겠다. 콧구멍으로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와서 뇌도 시원해지면 좋겠다. 두통도 사라지고, 집중력도 높아지고, 다크서클도 사라지면 좋겠다. 자고 일어나면 상쾌해지면 좋겠다. 약 한 번 먹고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인가. ㅎ (비염이 아주 심한 사람들에게 추천! '숨길'을 검색)

Posted by cox4 :

인생, 되는대로

2010. 11. 11. 02:15 from 그래서 오늘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아 블로그에 글이라도 적으면서 정리해보려고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커서가 수백번 깜박이는 동안 팔짱을 끼고 내 고민의 지점, 오늘의 받은 수많은 자극들을 문장으로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입안을 맴도는 것은 '모르겠다' 그것뿐.

사람이란 결코 한가지의 성격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삶의 여정이 길어지면 과거의 어떤 지점과 모순되는 면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 아니 하루 사이에도 모순되는 말을 마음의 거리낌없이 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이제는 사람 마음이 얼마나 정교하고 복잡한지 경험으로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누군가의 이면을 마주하게 되면, 외면하고 싶던 것을 알아차리게 되면, 괴롭다. 그것은 내가 아직도 직선적으로 사고하는 것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탓일까, 아니면 고민해야 할 지점이 있는데 감당하기 힘들고 귀찮으니까 그런 게 인생이라는 말로 뭉개버려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탓일까.

야구가 재밌는 것은 그 경기의 흐름이 때로 우리들의 인생과 닮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인생을 야구만큼 즐길수는 없다. 야구는 경기 중에 예측불가능했던 일이 벌어지면 '야구 참 모른다, 야구 참 재밌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삶에서 예측불가능한 일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나는 아직 내가 친 잘 맞은 직선 타구가 3루수의 글러브에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일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내야 안타를 내어주는 투수가 되고 싶지 않다. 물론 그 반대는 쉽게 즐길 수 있다. (직선타구를 멋지게 잡아내는 3루수가 되고, 행운의 내야 안타를 치는 선수가 되는 것쯤이야.)

언제쯤이면 예상하지 못했던 삶(사람)의 이면, 유쾌하지 않은 이면을 마주하고도, 이래서 산다는 건 참 알 수 없다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까. 불운을 받아안으며, 인생 참 재밌다고 말할 수 있기까지를 바라는 건 아니다.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