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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밖에

2010. 7. 29. 15:56 from 또는 외면일기
 어젯밤, 상영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위해 273번 버스를 탔다. 사람이 많아서 뒷쪽으로 가고 있는데, 뒷쪽 첫번째 자리, 그러니까 카드단말기 바로 뒤에 앉은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헤드폰을 쓰고 간지나는 차림이다. 고개를 뒤로 제쳤다 앞으로 제쳤다하며 졸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뒷쪽에 서 있다가 자리에 앉아 상영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갑자기 팍 소리가 났다. 놀라서 소리난 쪽을 보니 아까 그 간지나던 여자이다. 졸다가 단말기가 붙은 봉에 머리를 박은 것이다. 얼마나 아플까 생각하며 모두가 보고 있는데, 그 여자 고개를 들지 않는다. 설마 저렇게 세게 박고도 자는 것은 아니겠지 하면서 지켜봤는데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았다. 창피한 걸까?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드는 것이라면,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다들 버스에서 졸다가 몇 번씩은 유리창에 머리 박으니 너무 창피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들고 자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여자, 절대 고개를 들지 않는다.

다음 정류장이 되었고, 문이 열렸다. 고개를 박고 있던 그 여자분.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쏜살같이 내렸다. 박을 때 내려온 헤드폰을 덜렁이며, 버스 정류장 앞 가게의 셔터문 앞으로 뛰어가더니 거기에 쭈그리고 앉아 다시 고개를 박는다. 뒤를 절대 돌아보지 않는다. 그렇게 창피해하지 않아도 되는데, 하며 나도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나도 버스에서 내리려고 단말기를 찍던 순간 알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심정을. 그녀는 머리를 박으면서 동시에 토를 했던 것이다. 토한 흔적이 의자 밑과 바닥에 흥건. 그럴 수밖에...이해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나라도 버스에서 토했다면 그걸 치우고 내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중행랑을 쳤을 것이다. 달리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른채 즐겁게 운전하시는 버스기사아저씨를 슬쩍 보고 버스에서 내렸다.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