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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

2010. 6. 25. 02:19 from 그래서 오늘
5년간 써왔던 종이 일기장의 마지막을 썼다. 매일 적던 게 아니어서 공책 한권인데 5년동안이나 썼다. 첫 장이 2005년 6월 박민규의 소설 [핑퐁]을 읽고 적은 일기였다. 서울에 올라와서 마지막 학년 수업을 듣던 때였고, 미래에 대한 기대로 부풀다가도 불안으로 떨던 때였다. 일기는 몇 장 지나지 않아, 독립다큐멘터리 수업을 듣던 때로 뛰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믿음을 스스로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일기는 또 6개월을 뛰어넘어 RTV에서 방송하던 시기. 일이 재밌어서 정신없이 하다가, 쉬는 날이 되면 불안한 마음이 들어 일기장을 찾은 것 같다. 또 훌쩍 뛰어넘어 반이다를 하면서 개청춘을 편집하던 때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개청춘 편집이 끝난 2009년 8월부터 일기가 잦아졌다. 주로 불안할 때마다 종이 일기장을 찾았다. 블로그에도 비공개로 일기를 쓰긴 하지만, 내 손을 바라보며 일기를 쓰는 게 불안감을 줄이는데 좋았다. 불안한 마음에 대한 내용 다음으로 많은 것이 다짐이다. 내가 너무 옹졸하다, 시선이 갇혀 나 자신밖에 보지 못한다, 욕심이 많다는 자책과 부끄러운 고백들 뒤에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 적혀있다. 하지만 그 다짐들은 5년동안 반복되고 있다. 일기를 보아서는 나아지고 있기보다는 자꾸만 마음이 협소해지고 옹졸해지고 있다. 오늘의 마지막 일기는 그런 나를 너무 부정하지 말고, 조금 인정하자는 것. 그래야 도망가지 않는 다는 것. 나의 샘이 너무 좁아 작은 감정에도 흔들흔들. 넓어져야 품을 수 있지.

[푸른강은 흘러라]를 보고 쓴 일기도 있었다. 주인공인 숙희가 옹졸해서야 바다로 갈 수 있겠냐고 소리치는데 나를 혼내는 것 같았다는 이야기. 오늘 강의를 들으러 오재미동에 갔다가 [푸른 강...] DVD를 빌려서 보았다. 꼭 보고 싶은 장면이 있었다. 남자가 천을 펴기 위해 천을 자근자근 밟던 장면. 길게 보여주던 그 행위를 보며 많이 울었었다. 얼마 전부터 그 장면이 보고 싶어서 오늘 찾아보았지만, 스킵하면서 봐서 어느 부분인지 찾지 못했다. 다음에 처음부터 다시 보아야겠다. 하지만 숙희의 얼굴과 백두산의 숲은 보았다.


           새로운 일기장과 마음을 잡기 위한 색칠 놀이

비어있어야 채울 수도 있는데, 비우지는 않고 채우려고만 하는 나날들. 숲속의 빈터 같아지고 싶다. 마음이 시원해지고 싶다. 새로운 일기장엔 반복되는 불안과 다짐의 구절은 좀 줄고 내일에 대한 계획과 만족의 내용도 좀 들어가길. 

그래도 지난 5년의 시간들 참 소중하다. 말할 수 없이...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