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늘'에 해당되는 글 115건

  1. 2011.05.18 바쁘다면 바쁜 날들 1
  2. 2011.05.11 쉼호흡
  3. 2011.04.16 4
작업실 근처에서 점심으로 냉면을 먹었다. 면도 차가운데 에어컨까지 켜져 있어서, 다 먹고 일어설 때는 몸이 차가워져 있었다. 차가워진 몸 때문인지 오랜만에 내 마음도 차분하다.

4월 말부터 거의 매일 뭔가 일이 있었다. 출퇴근을 하는 이들에겐 매일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아니면 반나절 정도는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던 나에게는 좀 힘든 기간이었다.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공부방에서 여행을 다녀오면서 일이 많아진 게 있고, 영화제 상영 테이프 출력 하는 게 문제가 있어서 며칠 동안 정신없이 돌아다녔던 것도 여유 시간을 없애는 데 한 몫했다.

오늘도 작업실에 나와 교육 계획서와 평가서를 적고, 곧 건대에서 있는 상영회에 갔다가, 다시 공부방 교육을 하러 가야 한다. 내일은 다시 출력과 씨름해야 한다.

바쁘다면 바쁜 날들이다. 그 바쁜 것이 그리 싫지만은 않다. 몸이 단단히 조여지는 느낌이랄까. 대신 내 스스로가 그 일들과 경험들을 정리하고 소화해낼 수 있는 시간은 절실하다. 매일 출퇴근을 했던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일들은 아무렇지 않게 소화하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새로운 장소에 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보면 여러가지 자극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그럴수록 동시에 오랜 친구들이 보고 싶어진다. 나의 맥락을 알고, 나의 과거를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과 편한 수다를 떨고 싶다. 그리고 또 절실해지는 것 하나, 영화관 의자에 몸을 깊숙히 박고 가만히 어떤 삶의 이야기를 보고 싶다. <파수꾼> 이 후로 영화관에 못 가본 듯. 영화제 말고.

이제 이를 닦고 나가야 한다. 횡설수설하는 것이 아니라, 차분한 마음으로 대화다운 대화를 하다 올 수 있길. 그리고 내일은  출력에 성공할 수 있길. 마음에 공간이 생기길.
Posted by cox4 :

쉼호흡

2011. 5. 11. 12:06 from 그래서 오늘
비 온 뒤 축축한 대기. 정신없었던 아이들과의 3박4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내게도 축축한 일들이 가득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에서 교사들에게 또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아니 배울 거리를 볼 수 있었다. 배우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어떤 태도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도 자신을 끊임없이 돌봐야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에 비한다면 그 무게감은 훨씬 덜하다. 교사들은 갑자기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열린 질문을 던지려고 노력하면서 새벽까지 토론을 이어갔고, 외부 교사인 나는 살짝 빠져서 토론의 흐름을 지켜보다가 결국 잠들어버렸다. 다음날 교사뿐 아니라 아이들까지 모두 밥 먹으러 간 다음 마지막으로 일어났을 때, 아차 싶었다. 늦게 일어난 것 때문이 아니라, 내가 타인을 만나는 방식에 대한 아차싶음.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 없이 대화하는 것,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지 못하는 것, 그것은 교사로서든 친구로서든 다큐멘터리스트로든 큰 결점이다.

어제 하루 종일 파일출력과 씨름하다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하고 집에 갔다. 마감이 빠듯한 일이라 마음이 급하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해서 작업실에 나와 블질을 한다. 아침에 마테차를 내려서 컵에 담아서 왔다. 쉼호흡.


Posted by cox4 :

2011. 4. 16. 03:27 from 그래서 오늘
특별할 것 없는 단조로운 일상이 참 좋다. 적당한 시간에 일어나서 손을 먼저 씻고 쌀을 씻어 밥을 지었다. 전기밥솥이 밥을 하는 동안 머리를 말리고, 룸메언니 덕에 값싸게 마련한 기초 5종세트의 화장품을 발랐다. 5종을 바르는 것이 귀찮아서 중간에 한 두개씩 빼먹는다. 대충 옷을 입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냈다. 밤에 노느라 듣지 못했던 라천 한 개도 반찬 삼아 틀어놓았다. 밥 먹고 작업실로 갔다. 커피 한 잔 내려 먹고 메일도 확인하고 해야 할 일들도 하나씩 처리했다. 그런 것 만으로도 시간은 참 잘 간다.

그제 있었던 공부방 교육이 무사히 잘 끝났다. 아니 실은 만족스럽게 끝났다. 지난 시간 교사인 내 말에 전혀 집중하지 않고 붕붕 날라다니던 아이들 때문에 일주일 동안 마음의 짐이 무거웠었다. 아이들의 에너지를 누르지 않고도 교육을 잘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무리 고민해도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교육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쳐나는 중학생들. 나 혼자 끙끙대고 있을 때, 공부방 담당 샘이 도와주셨다. 내가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적당히. 그래서 찾은 답은 아이들과 같이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었다. 교육을 하기 전에 지난 시간 너무 힘들었다고 말하고, 어떻게 할지 같이 고민해보자고 했다. 아이들 스스로도 벌칙으로는 해결될 리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단 서로 조심하는 걸로 결론. 그런 이야기를 나눠서인지, 빠진 인원이 있어서인지, 교육이 무사히 진행되었다.

아이들의 생각은 참 예쁘다. 삐뚤삐뚤 제 멋대로인 것 같아도, 솔직하다. 진심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많이 배운다. 한계를 지어버리면 아이들은 그 한계 안에서 갇힌다. 믿음을 가질수록 자라난다. 공부방 샘들이 인내와 지혜로움으로 아이들과 대면한다. 그 모습에서 또 많이 배운다. 앞으로 힘들 일도 무지 많아 보이지만, 그래도 성을 쌓지 않은 사람들인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즐겁다. 이미 견고한 성인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그런 아이들과 샘들과 5월에 여행을 간다. 두근두근과 걱정걱정이 동시에.

요즘 안다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알게 되면 삶이 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알고도 삶이 변하지 않으면, 마음이 딱딱해지고, 점점 만족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안다는 것은 무섭다.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겠다 싶을 때도 있다. 허나 내 마음이 편하자고해서 모르는 채로 있길 고집한다면, 나의 무지로 인해 힘들어 할 이를 외면하는 것일수도 있다. 그게 가까운 이든, 멀리 이국에 있는 낯선 사람이든 간에. 나는 아직 잘 알지 못한다는 핑계로 피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특히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는 상황과 나이가 된다면 더욱 더 그렇다. 무엇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넓어지고 섬세해지는 것, 그만큼 고려하고 배려해야 할 것이 많아지게 되는 것, 그래서 스스로 피곤해질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피하고 싶은 종류의 앎들이 있었다. 어느 정도만 알아도 되지 않겠나 싶어서 공부를 피한 것들이 있다. 아니 대부분의 영역이 그렇다. 그래서 내 앎에는 깊이가 없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피할 곳이 없어졌다. 지금껏 경험했던 것,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던 것을 한 차례 모두 털었기 때문에, 나는 삶을 위해 더 알아야 하는 시점을 맞이한 것이다. 안다는 것이 피곤하게 느껴지는 것은 진정으로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알아야 할 것이 많다. 아니 알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알기 위해선 단조로운 삶.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