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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7.26 자학의 일기
  2. 2012.07.05 곰곰히
  3. 2012.06.30 그 무렵부터 아빠는

자학의 일기

2012. 7. 26. 02:20 from 그래서 오늘

요즘도 취침 시간이 무척 늦다. 지난 주 바쁜 일을 마감하고 이번 주는 여유롭다고 생각했지만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평균 11시를 넘기는 걸 봐서는 그리 여유가 있는 건 아닌가 보다. 오늘도 상반기 상영회를 앞두고 공부방에서 12시간 폭풍 노동을 하고 왔더니 멍 때리며 드라마 볼 기운만 남았더라. 그래서 3일 연속 자정에 하던 조깅은 패쓰했다. 지금은 넷북이 버벅거려서 읽지 못하는 파일을 기다리는 중이다. 기다리는 사이 잠시 블질.


10년 만에 조깅을 하는 터라 섣부른 짐작일 수 있겠지만, 앞으로 달리기를 즐겨할 것 같다.  성실하고도 침착하게 달려보고 싶다. 달리는 것이 아직은 즐겁다. 그리고 달리기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은 더 즐겁다.


장마철이라 집이 눅눅하다. 제습기가 없었다면 작년처럼 곰팡이로 얼룩진 방에서 재채기를 연신 해댔을 것이다. 제습기 돌아가는 소리가 조금 시끄럽지만 거슬리지는 않는 이유이다. 비가 오는 날에 제습기를 틀어놓고 나갔다가 밤에 돌아오면 2리터는 되어보이는 물통에 물이 가득 차있다. 찰랑찰랑 거리는 제습기 물통을 비울 때마다 물이 부족한 나라나 사막에 제습기가 있으면 진짜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멍청이 습기가 없으니까 물도 부족하겠지 하는 생각을 반복하다. 찰랑이는 물이 너무 신기하고 아까워서 멍청한 생각을 고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소비뿐인 나의 일상에서 유일하게 뭔가를 생산해내는 이가 제습기이다. 엄밀히 말하면 완전히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내 눈에 보이지 않던 습기가 눈에 보이는 물로 나타나니까 나는 변형이라기보다는 생산과 창조에 가깝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단순하고도 멍청한 것이 나이다.


메일이 도착했다. 진심이라고 하기엔 조금 과장된 자학으로 오늘의 일기 마무리. 굿나잇!


Posted by cox4 :

곰곰히

2012. 7. 5. 14:21 from 그래서 오늘

간만에 잡힌 약속이 취소되어서 작업실에 있다. 보고 싶던 이를 못 보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빗소리 들으면서 작업실에 있는 기분도 므흣하다. 다행히 작업실 들어올 때 따뜻한 커피도 한 잔 사왔다. 텀블러를 가져갔더니 무려 2500원. 커피의 맛을 생각하면 3000원도 싸다고 생각했는데 500원 할인이라 더 좋다. 작업실에 머물게 되어서 해야 할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 일들 다 미뤄두고 놀려고 했던 나는 뭐지?


두어달 전부터 노인미디어교육을 하고 있다. 평소 컴퓨터와 영상에 관심이 많으신 어르신들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교육이다. 어르신들은 몇 년동안 컴퓨터의 기술 배우는 것을 주로 하셨기 때문에 이번 수업도 동영상제작프로그램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왔다고 했다. 그런데 교사들이 계속 하고 싶은 이야기, 주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고 하는 게 스트레스 받는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초반 몇 주동안 반복하셨다. 어느 날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한 남자 어르신께서 손을 들고 말씀하셨다. "내가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우리는 이런 걸 배우려고 온 게 아니라..." 하면서 지금하고 있는 창작, 표현의 과정들이 버겁다고 말씀하셨다. 해보지 않았던 활동들에 대한 두려움 반, 잘하고 싶은 마음 반 때문에 이런 교육을 할 때마다 어르신들이 반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라서, 결국 이 과정이 끝나면 무척 좋아하시기 때문에, 그냥 흘려들으려고 했는데 말문을 연 '곰곰히 생각해봤는데'라는 말에 압도되어 그저 듣고만 있었다. 나는 그 문제에 대해서 한 번도 '곰곰히'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곰곰히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느낌이 전해진다. 그것은 깊이 생각해본다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인 것 같다. 여러 방향으로 열어놓고 진중하게 모색해보는 느낌,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논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객관적으로 살펴보려고 애쓰는 느낌. 필사적으로 생각해봤다는 사람에겐 설득할 마음이 생기기도 하는데 곰곰히 생각해봤다는 사람은 '그럴수밖에' 하면서 인정하게 된다. 그런 류의 말에 약하다.





Posted by cox4 :

아빠와 엄마와 함께 가게 문을 닫고 차를 타러 주차장으로 갔다. 열 발짝 정도 앞서 가던 아빠가 갑자기 멈춰서 뒤를 돌아 엄마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식당예약시간에 늦었는데 왜 그렇게 느긋하게 오냐는 성격 급한 아빠의 재촉이라고 생각해 아빠 보라고 걸음을 서둘렀다. 아빠는 그래도 돌아서지 않고 기다리다가 엄마에게 팔을 뻗었다.


"그거 도."


말없이 들고 있던 가방을 내미는 엄마와 그걸 받아드는 아빠. 아빠의 오른손에 엄마가방, 왼손에 장본 것들이 있다. 엄마의 손엔 딱 보기에도 가벼워 보이는 종이가방이 남아있었다.


"그것도 도."

"이건 괜찮다."

"도."

"괜찮다. 가볍다."

"경화야 니가 엄마 종이가방 들어라."


그러고 아빠는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엄마의 종이가방엔 새로 산 원피스 하나 들어있었다. 아빠 말대로 엄마의 가방을 받아들어야 하는 걸까 망설이고 있는데, 뭔가 쑥스러운듯한 엄마가 그냥 괜찮다고 했다. 


아빠가 엄마를 제일 우선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한참 생각해보았다. 내가 TV보고 누워있어도 시키지 않고 당신이 직접 청소를 하기 시작하던 그 무렵부터였나 싶다.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