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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0.07 기인
  2. 2012.09.12 더운 나라
  3. 2012.08.31 가만히 들여다보니

기인

2012. 10. 7. 16:17 from 그래서 오늘

연휴를 기점으로 기약없이 자는 날이 계속 되고 있다. 기약이 없다는 것은 알람소리에 몸이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알람을 듣기라도 했었는데 연휴동안 긴장을 다 빼내버린 몸은 나의 말을 듣기로 거부한 것 같다. 물론 오전 일정이 있을 때는 가까스로 일어난다.


지금 촬영과 제작으로 참여하고 있는 작업이 있다. 이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면 시작하려고 생각하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작년 여름 정도부터 마음을 먹었는데 여태 못 들어가고 있다. 하고 있는 작업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획과정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머뭇거리는 지점이 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한 작업을 시작하면 배급까지 적어도 3년이란 시간은 걸리는 것 같다. 그 시간을 쏟을 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 6개월 정도 있었던 것 같고, 확신이 들었을 때는 본격적으로 작업하긴엔 시간이 없었다. 아니 왜 자꾸 시간이 없었다고 핑계를 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두려움이 있었다. 작업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나의 생활에 대한 두려움. 작업으로 일상이 매몰될까봐...여기까지 적고 보니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은 나의 큰 즐거움이고 삶의 원동력이지만, 작업으로 인해 정신없이 살고 싶지는 않다. 헌데 아직은 일상을 챙기면서 작업할 수 있는 내공이 쌓인 것 같지 않고, 일상의 즐거움을 포기할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욕구가 강렬하진 않은 것 같다. 아니 어쩌면...준비가 되지 않아 자신이 없는 것일수도 있다.


과거로부터 배우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한다. 역사를 설명하던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이런 문장을 보고 나는 지혜롭진 못하구나 하고 실망을 했던 느낌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드라마도 역사물에는 관심이 없다. 뭔가 과거의 이야기라고 하면 그냥 흥미가 떨어지는 것이다. 미래는 과거의 반복, 과거가 곧 다가올 미래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무척 동의하지만 뒤를 돌아보고 방향을 수정하는 감각은 전혀 익히지 못한 것이다. 그저 순간적인 감정에만 이끌리는 동물인 것이다. 왜 그럴까? 모두가 해품달에 열광할 때 한 편도 보지 않는 나에게 자주 질문을 했었다. 목표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기어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없기 때문에 끌리는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가까운 미래만 살아내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아무리 중요한 일을 위해서라 해도 순간의 즉각적인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5분만 더를 외치며 이불을 끌어안고 평생 지각을 일삼았고, 먹는 양을 줄이는 다이어트는 늘 실패했었다. 지각이 줄어든 것은 지각하지 않는 만족감이 잠이 주는 달콤함 보다 컸기 때문이고, 살이 저절로 빠진 것은 먹는 것으로 인한 포만감보다는 먹는 것을 부차적으로 생각하게 만든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를 통해 배우지 못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삶이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슬프다.


역사를 생각하다보니 두 번째 문단을 쓸 때 알듯 모를 듯 했던 나의 고민 지점이 명확해졌다. 다큐멘터리 제작은 어쩔 수 없이 완성을 위해 달리는 것이다. 과정의 즐거움도 무척이나 크지만, 그것은 끝까지 달려야 비로소 제대로 획득되는 즐거움이기도 한 것이다. 그 과정을 몇 차례 경험하면서, 즐거울수만은 없었던 지난 작업의 과정들을 잊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과정의 괴로움을 덜기 위해 동료들과 여러가지 활동을 하는 것에도 집중하고 여기저기 두리번 거리기도 했지만, 영화를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하는 과정의 괴로움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능한 그 괴로움을 줄이기 위해 애써온 시간들이 지난 1년이었고, 이제 남은 것은 필연적인 괴로움을 받아들이거나 다른 괴로움이 있는 일을 찾는 것이다. 일을 하는 모두가 감수하는 정도의 괴로움인데 나는 어째서 그 괴로움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까. 멍청하고도 오만하다.


거친 생각들을 좀 더 섬세하게 다듬고 싶다. 그래도 조금은 더 마음 따뜻하게 작업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은 돈인데...돈으로 작업시간을 만들 수 없다면...(사람)




Posted by cox4 :

더운 나라

2012. 9. 12. 14:08 from 그래서 오늘

가을을 그리 안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 공기 때문이다. 선선해지는 환절기는 비염때문에 늘 미열을 동반하고, 멍해지고, 두통이 오고, 에너지가 돌지 않는다. 작업실로 오는 길에 커피를 사먹을까 하다가 참았다. 어젯밤 마신 맥주 두 캔으로 코가 실신상태. 요즘 코를 위해 운동도 하고 족욕도 하는데 고작 맥주 두 캔을 마시자마자 콧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러닝노우즈. 알딸딸한 와중에도 족욕을 하고 잤다. 일어나면 호흡이 좋지 않아서 얼굴을 팅팅 부어있고 기분은 상쾌하지 않고!


2년 전 편집하던 시기도 가을이었는데 집중력이 너무 떨어져서 큰 맘 먹고 비염 전문 한의원을 찾아 약을 먹었다. 즉시 호전 되었지만 한 달 약값이 너무 비싸서 한 달만 먹고 멈췄었다. 어젯밤 그 약을 다시 먹기로 결심하였다. 일단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고 목련꽃 세 개를 넣었다. 목련이 담긴 통을 열자 마자 풍기는 향기가 좋아서 블질도 하고 있다. 말린 사람의 정성이 고스란히 보인다. 고맙다고 충분히 말했는지 모르겠다. 버스타고 오는 길에도 트위터로 비염을 검색해서 나와 같은 비염환자들이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겪고 있는지 확인해보았다. 다들 죽을 맛인 것 같았다. 단연 압도적인 것이 비염을 욕하는 말들이었다. 그 심정 이해가 간다.


차를 마셔서 그런 지 바로 코가 뚫렸다. 더운 나라로 여행을 가고 싶다. 더러운 비염 이야기 끝.


Posted by cox4 :

이 시간, 가만히 들여다보니 정리해야 할 마음들이 내 안에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잘 꿰면 되는 것이었는데 용기가 없어서 부끄러워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제 새벽은 다큐멘터리 제작강의 뒷풀이를 하고 이 시간에 집에 들어와 잠 들었는데 오늘은이 시간에 일어났다. 어젯밤 11시 전에 잤더니 5시를 넘어 눈을 뜬 것이다. 잠을 깊이 못 이루는 탓이겠지 했는데 점점 말똥해지면서 이게 바로 다 잔 것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일어나서 양치를 하고 커피 내려마시고 숏버스 ost를 틀었다. 잠을 무척 좋아하는데 또 깨어있는 밤시간도 좋아해서 늘 늦게 자는 편이었다. 한 20여년동안. 그러다보니 늘 일찍 일어나는 것에 동경만 있고 오늘처럼ㅈ ㅓㅓ절로 일어나 새벽시간을 활용해본 적은 거의 없다. 눈을 떠도 약속 시간이 안되었으면 당연히 다시 눈을 감았다. 조깅을 동경만 하다가 실제로 하기 시작하니 동경한 데는 이유가 있었구나 깨달은 것처럼 일찍 일어나는 것도 자주 반복되는 습관이 될 수 있을까? 그러기엔 밤 늦게 들어올 때가 너무 많고 밤에 하고 싶은 일이 많다.


모니터가 깨져 1/3쯤은 보이지 않는 넷북을 켜면서 책상을 정리했다. 가득 쌓인 것들을 하나씩 보면서 분류를 하였다. 영화제작, 교육에 관련된 자료들과 영수증, 명함들이 많았다. 오며가며 받았둔 자료들을 읽다보니 마음 깊은 곳에서 일렁임이 있었다. 한 시간 정도 가만히 턱을 괴고 그 일렁임을 받아들였다. 결정하기를 미뤄두고만 있었던 몇 년 후의 시간들, 그리고 지향들이 명징하게 자리잡았다. 낮이 되어  해가 나면 다시 두려워져 그것들을 외면할 수도 있고 밤이 되면 즐거운 것이 많아서 다른 것으로 바꿀 수도 있겠지만 지금만큼은 명징하다.


그리고 몇 가지 마음들이 보였다. 강의 마지막 날 마음이 상해 돌아간 한 분과 오랜만에 먼저 전화가 왔는데 그 순간 바빠서 나중에 전화하겠노라고 말하곤 곧바로 다시 전화하지 못한 친구, 결혼하고 한 번 보지도 못하고 어제 전화왔는데도 보지 못한 아는 동생 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 있었다. 그 미안함은 평소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의 한계와 직면하고 있었기에 자꾸 마음이 쓰였다. 알게 된지 십 년도 넘은 친구들인데도 낯가림과 긴장이 있다. 아니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친해질수록 내가 좋아할수록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 관계에 대한 긴장이 있는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최소한의 적당한 긴장(혹은 거리)은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그 긴장이 배려라는 이름이 되어 때로는 관계에 한계를 긋게 되기도 한다. 그 긴장 혹은 거리 혹은 배려가 없었던 관계는 가족을 제외하고는 딱 두 번 있었다. 앞으로 거리를 만들어야 했기에 어떤 배려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한 흔적을 남겼다. 남아있다. 한 번은 친구, 한 번은 친구보다 가까운. 돌이키고 싶은 생각도 돌이킬 방법도 없으나 흔적이 옅어질 때까지는 좀 더 기다려야 하나보다.


모니터가 1/3쯤 안 보여서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 커피 다 식었다.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