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염이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결국 비염전문한의원을 찾아갔다. 재작년 편집기간에 집중력이 너무 떨어져 큰 맘(너무 비싸다) 먹고 갔다가 효력을 본 곳이다. 비염은 생활의 문제라는 말에 또 한 번 공감하며 기나긴 치료가 시작되었다. 매주 한 번씩 침을 맞아야 한다기에 금요일 저녁 한의원의 침대에 누웠다.
의사선생님이 나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면서 침을 놓았다. 따끔한 자극과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음식 조절은 잘하고 있어요?"
"네. 뭐...노력은 하고 있어요."
"노력만 해서는 안 되죠. 하고 싶은 일 계속 하려면."
"네. 근데 밀가루 안 먹기가 어려워서. 라면 먹고 싶을 때도 있고요."
"아, 라면은 기름기를 빼서 먹으면 되요. 물을 많이 넣어서 스프는 반 만 넣고 (자세한 설명)..."
"그러면 그게 라면이 아니죠. 차라리 안 먹지."
의사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을 마치고 다음에 또 보자며 커튼을 닿고 옆 침대의 환자에게 갔다. 나는 수십 개의 침을 꽂고 눈을 가린 채 들려오는 대화에 집중했다. 옆의 환자는 30대 중반의 여성이었고, 출산 후 비염이 심해진 것 같았다.
"약은 잘 먹고 있어요? 배변은 어때요?"
"잘은 먹는데 이거 계속 먹어야 돼요? 밥 세끼 먹고 하루 화장실 세 번 가면 하루가 다가요."
"그게 낫고 있는 거니까 해야죠. (몸을 치는)운동은요?"
"바빠서 못했어요."
"이걸 계속 해줘야 낫죠. 자기 몸을 챙겨줘야죠."
"챙기는데 바빴다니까요."
"아니 아무리 바빠도 자기 몸을 자기가 아껴줘야죠."
"제 몸인데 아끼죠. 당연히."
"근데 왜 안해요? 아이한테 사랑한다고 말만하는 것보다 한 번 안아주는 게 훨씬 더 좋죠?"
"그런가요?"
"거봐요. 못 느끼시잖아요."
"아니예요. 애한테 맨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데."
"아니 그러면서 안아주면 더 좋다니까요. 그걸 못 느끼시니까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지."
"맨날 안아줘요. 저도."
의사선생님은 투덜거림을 적절히 받아주고 환자도 노련하게 응석을 부리는 대화가 이어졌다.
"그런데 저 이제 수영하면 안 돼요?"
"이제 좀 해봐도 될 것 같아요."
"지난 번에 수영했을 때는 너무 추워서 못했는데 이제 하고 싶어서." (참고로 비염환자들은 체온조절능력이 떨어진다)
"한 번 해보고 괜찮으면 하셔도 될 것 같아요."
"네."
"암튼 약 잘 먹으시고 운동 빼먹지 마시고요."
의사선생님은 침을 다 놓고 커튼을 닿고 옆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갔다. 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 환자는 아이일 줄 알았는데 역시 30대 정도로 추정이 되는 여성이다. 환자는 선생님의 몇 가지 질문에 간단히 대답하고 바로 묻는다.
"저 운동하고 싶은데 수영해도 괜찮아요?"
"수영은 좀 그럴텐데..."
"운동하려고 하셔서 수영하고 싶어서 끊으려고 하거든요."
"아직은 수영하기엔 추울 거예요."
"왜요? 격렬한 운동하면 좋다고 하셨잖아요."
세 번째 환자 마저 수영이야기를 했을 때 솔직히 놀랐다. 나도 몸이 좀 좋아지면 수영을 하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조깅 말고 또 어떤 운동이 좋은 지 다음에 물어보려고 했었는데. 다른 언니들이 다 질문을 한 것이다.
침대에 누워서 들은 대화로 이 날 침을 맞은 세 명의 비염환자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셋 다 바쁜 사람들이다. 일을 하느라 몸을 돌볼 여유가 별로 없다. 의사 선생님의 진단과 치료 방법에 자꾸 왜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자기 건강에 좋지 않은 수영을 하고 싶어한다. 몸에 맞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는 사람들인걸까. 그게 비염을 부르는 생활습관인걸까. 그녀들의 대화패턴과 말투가 나와 너무 흡사했다. 어쩐지 비염환자들에겐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공통점이 더 있을 것 같다.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