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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원인

2012. 4. 19. 01:33 from 그래서 오늘

몇 주 만에 제대로 된 청소를 했다. 청소기로 밀고 걸레로 닦았다. 방바닥 생활을 접고 침대 위로 올라갔더니 방이 훨씬 넓어졌다. 매트를 베란다 구석에 넣다보니 큼직한 스피커가 덩그러니 있다. 룸메 한 명에게 물어보니 자기 건 아니라고 하고, 다른 룸메는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어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걸레로 슥슥 닦아서 방 한 구석에 놓고 아이폰과 연결하니 훌륭! 역시 새로 살 것이 아니라 처박아 둔 것들을 잘 살펴봐야 한다. 동전지갑 가득 들어있던 동전들도 맥주 저금통에 넣었다. 미뉘킴이 한 달 동안 같이 살다가 나갈 때 전기세라며 꽤 많은 돈과 함께 준 저금통이다. 그 돈 덕분에 그 주를 넉넉히 살았다. 갑자기 미뉘킴이 보고 싶다.


몇 해 동안 안 입던 코트 한 개, 목도리 세 개, 니트 몇 개를 버렸다. 버리기 아까워 가지고만 있던 가벼운 외투는 룸메에게 입어달라고 부탁하며 넘겼다. 여러가지 색이 섞여 마음에 들지 않는 소품 몇 개를 분산시켰다. 침대 이불을 하나 사야하는데 짬이 안나기도 하고 멀쩡히 쓰던 이불을 버리는 것이 마음에 걸려 계속 인터넷으로 구경만 하고 있다. 아직 버려야 할 책과 옷들이 많다. 세탁소에 맡길 겨울 옷도 많다. 이번 주말 지나 좀 짬이 생기면 인내심 많은 세탁소에 갖다 줘야겠다.


청소를 하다보니 반납할 책도 보이고 읽다만 책들도 보인다. 언제 샀나 싶어 깜짝 놀라게 하는 책도 있다. 역시 내 돈 주고 산 게 아니라 선물 받은 것이다. <어머니>제작팀에서 사 준 책을 마저 읽고 자야겠다.


청소를 다 하고 나니 며칠 답답했던 마음이 좀 깨끗해졌다. 가라앉을 것이 가라앉은 모양이다. 그냥 청소를 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럴리가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하지만 또 전혀 상관이 없는 것 같지는 않으니 그럭저럭 괜찮은 마음 먹기이다. 잘못은 인정하면 된다. 판단착오도 인정하면 된다. 돌이킬 수 없는 걸 돌이키려고 하는 순간, 만회하려는 순간 더 많은 것이 어그러진다.


내일은 오전부터 인천 촬영, 오후엔 작업실에 가서 맛있는 커피를 마셔야겠다.


Posted by cox4 :

4월 이야기

2012. 4. 16. 17:26 from 그래서 오늘

새로 이사한 명륜2가 작업실은 창문 밖으로 큰 나무가 보인다. 무슨 나무일까 궁금했었는데, 며칠 따뜻한 날씨에 잎이 소록소록 돋아나더니 작은 부채꼴의 은행잎 형태를 갖추었다. 이제부터 하루가 다르게 자라날 것 같다. 무성한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여름날, 또 그 잎들이 장맛비에 세차게 흔들리는 어떤 여름날을 상상해본다. 자라나는 조카들만큼 나무도 빠르게 자라지만, 한 번 자라고 나면 성장판이 멈추는 사람과는 달리 매년 시들고 사라지고 나이테 하나만 남기고 다시 시작하는 나무의 속성이 새삼 놀랍다.


어제는 오랜만에 울다 지쳤다. 몇 년 전 봉천동의 옥탑방에서 살 때, 햄톨언니에게 전화해서 펑펑 울던 그 때도 4월이었을까. 날이 너무 화창하면 놓치고 있던 중요한 것들이 생각난다. 자고 일어나니 다행히 약속한 일들이 있어 몸을 움직였다. 휴지와 린스가 떨어졌다. 휴지와 린스를 사놓고 룸메가 기침 콜록거리는 것에 아는 체도 못하고 서둘러 집을 나왔다.


요즘 조금 다른 감각을 가진 것 같은 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있다. 그 다른 감각 때문에 끌려서 함께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또 그 다른 감각 때문에 불편하기도 하고 움츠러들기도 한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차이에서 오는 긴장을 창조적으로 끌어안을 때에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말이 나온다. 차이에서 오는 긴장을 느끼는 건 잘하는데 창조적으로 끌어안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저 슬쩍 가방을 들고 나온다. 민주주의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도 깊이 와닿는 요즘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마음이 차분해지는 건 좋은 일이다. 한동안 들뜬 마음으로 지내왔으니 필요한 시간들이 알아서 찾아왔다고 생각해 볼 참이다.


농사 짓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았다. 마음 따뜻한 사람과 햇볕 따뜻한 곳에 가서 두런 두런,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말들을 나누고 싶다.


Posted by cox4 :

아니오

2012. 3. 4. 02:15 from 그래서 오늘

어깨를 구부정하게 하고 오랜만에 웹에 있는 친구들 블로그, 관심있는 공간을 돌아다녔다. 어깨는 아프지만 마음은 넉넉해졌다. 페북이나 트위터를 구경하고 난 뒤와는 전혀 다른 감성이다. 블로그를 돌아다녀서인지, 또 오늘 우연히 만난 한 언니가 지금 자신을 돌아보고 긴 미래를 구상하고 있다고 한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나도 이 공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졌다. 사람들은 변하고 떠나고 새롭게 만나고...작업실도 살고 있는 집도 사정에 따라 계속 이사를 다녀야하는 내게도 변하지 않는 주소 하나, 웹상에라도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모리에게 빌린 [공중그네]를 재밌게 읽었더니 또 재밌게 읽을 책이 없어졌다. [최후의 유혹]은 상권과 하권 중반까지는 쉬지 않고 읽었는데 얼마남지 않은 뒷부분을 못 읽어 몇 달째 잡고 있다. 어떻게 끝날 지 알고 싶은 마음과 알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공존. 재밌는 만화책을 읽고 싶은데 책방이 없는 우리 동네. 내일은 작업실 근처에 있는 알라딘중고서점에라도 가봐야겠다. 도서관에도 만화책이있을까?

그저께 [설국열차]라는 만화책을 빌려 읽었다. 자꾸 등장하는 여자들에 감정이입이 되어서 끔찍했다. 지구가 망하고 살아남은 인간들이 하나의 기차에 다 들어가서 끝없이 달리는 이야기인데, 그곳에서의 현실이 지금 기차밖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런 폐쇄된 공간, 극한의 상황에서 힘이 약한 여성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걸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나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극한의 상황은 폭력을 가져오기 쉽고, 가져올 수밖에 없고, 폭력의 공간에서 힘이 약한 여성은 성적인 존재로만 취급되기 쉽다. 전쟁시의 위안부가 그 대표적인 예. 극한의 상황에서도 비폭력,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할까? 무엇으로 가능할까?

물음은 문득 영화 제작환경으로 넘어가버린다. 결과물로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은 차치하고라도, 빚을 지며 모두가 허덕이면서 제작할 수밖에 없는 독립영화 제작환경에서 힘이 약한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는 것은 가능할까? 스탭들은 어떤 존재인가? 제작환경이 나아지지 않으면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한가?

일단,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