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만에 제대로 된 청소를 했다. 청소기로 밀고 걸레로 닦았다. 방바닥 생활을 접고 침대 위로 올라갔더니 방이 훨씬 넓어졌다. 매트를 베란다 구석에 넣다보니 큼직한 스피커가 덩그러니 있다. 룸메 한 명에게 물어보니 자기 건 아니라고 하고, 다른 룸메는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어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걸레로 슥슥 닦아서 방 한 구석에 놓고 아이폰과 연결하니 훌륭! 역시 새로 살 것이 아니라 처박아 둔 것들을 잘 살펴봐야 한다. 동전지갑 가득 들어있던 동전들도 맥주 저금통에 넣었다. 미뉘킴이 한 달 동안 같이 살다가 나갈 때 전기세라며 꽤 많은 돈과 함께 준 저금통이다. 그 돈 덕분에 그 주를 넉넉히 살았다. 갑자기 미뉘킴이 보고 싶다.
몇 해 동안 안 입던 코트 한 개, 목도리 세 개, 니트 몇 개를 버렸다. 버리기 아까워 가지고만 있던 가벼운 외투는 룸메에게 입어달라고 부탁하며 넘겼다. 여러가지 색이 섞여 마음에 들지 않는 소품 몇 개를 분산시켰다. 침대 이불을 하나 사야하는데 짬이 안나기도 하고 멀쩡히 쓰던 이불을 버리는 것이 마음에 걸려 계속 인터넷으로 구경만 하고 있다. 아직 버려야 할 책과 옷들이 많다. 세탁소에 맡길 겨울 옷도 많다. 이번 주말 지나 좀 짬이 생기면 인내심 많은 세탁소에 갖다 줘야겠다.
청소를 하다보니 반납할 책도 보이고 읽다만 책들도 보인다. 언제 샀나 싶어 깜짝 놀라게 하는 책도 있다. 역시 내 돈 주고 산 게 아니라 선물 받은 것이다. <어머니>제작팀에서 사 준 책을 마저 읽고 자야겠다.
청소를 다 하고 나니 며칠 답답했던 마음이 좀 깨끗해졌다. 가라앉을 것이 가라앉은 모양이다. 그냥 청소를 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럴리가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하지만 또 전혀 상관이 없는 것 같지는 않으니 그럭저럭 괜찮은 마음 먹기이다. 잘못은 인정하면 된다. 판단착오도 인정하면 된다. 돌이킬 수 없는 걸 돌이키려고 하는 순간, 만회하려는 순간 더 많은 것이 어그러진다.
내일은 오전부터 인천 촬영, 오후엔 작업실에 가서 맛있는 커피를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