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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0.07.24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럴 수 밖에

2010. 7. 29. 15:56 from 또는 외면일기
 어젯밤, 상영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위해 273번 버스를 탔다. 사람이 많아서 뒷쪽으로 가고 있는데, 뒷쪽 첫번째 자리, 그러니까 카드단말기 바로 뒤에 앉은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헤드폰을 쓰고 간지나는 차림이다. 고개를 뒤로 제쳤다 앞으로 제쳤다하며 졸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뒷쪽에 서 있다가 자리에 앉아 상영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갑자기 팍 소리가 났다. 놀라서 소리난 쪽을 보니 아까 그 간지나던 여자이다. 졸다가 단말기가 붙은 봉에 머리를 박은 것이다. 얼마나 아플까 생각하며 모두가 보고 있는데, 그 여자 고개를 들지 않는다. 설마 저렇게 세게 박고도 자는 것은 아니겠지 하면서 지켜봤는데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았다. 창피한 걸까?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드는 것이라면,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다들 버스에서 졸다가 몇 번씩은 유리창에 머리 박으니 너무 창피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들고 자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여자, 절대 고개를 들지 않는다.

다음 정류장이 되었고, 문이 열렸다. 고개를 박고 있던 그 여자분.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쏜살같이 내렸다. 박을 때 내려온 헤드폰을 덜렁이며, 버스 정류장 앞 가게의 셔터문 앞으로 뛰어가더니 거기에 쭈그리고 앉아 다시 고개를 박는다. 뒤를 절대 돌아보지 않는다. 그렇게 창피해하지 않아도 되는데, 하며 나도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나도 버스에서 내리려고 단말기를 찍던 순간 알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심정을. 그녀는 머리를 박으면서 동시에 토를 했던 것이다. 토한 흔적이 의자 밑과 바닥에 흥건. 그럴 수밖에...이해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나라도 버스에서 토했다면 그걸 치우고 내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중행랑을 쳤을 것이다. 달리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른채 즐겁게 운전하시는 버스기사아저씨를 슬쩍 보고 버스에서 내렸다.

Posted by cox4 :

문득 질문

2010. 7. 25. 03:37 from 그래서 오늘
오후에 광주에 갔다. 촬영이 있어서 친구와 동행을 했다. 광주에 도착해 밥 먹고 택시를 타고 약속장소로 갔다.  어떤 중학교 앞이었는데, 우리가 내릴 때가 되자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약속한 시간까지 기다리느라, 400년 된 버드 나무 두 그루 아래에 있는 정자에 카메라 가방과 삼각대를 놓고 기다렸다. 늘어진 버드나뭇잎을 때리는 비. 동네 할아버지도 자전거를 세워놓고 정자로 들어오셨다. 정자 앞에 있는 옥수수밭, 삽을 끼고 있는 자전거, 쏟아지는 비. 그 장면이 영화의 한장면처럼 예뻐서 카메라를 꺼내 촬영을 했다. 자전거에 포커스를 맞춰 1분, 배경에 포커스를 맞춰 30초.

서울로 돌아와 방안에 앉은 지금, 그 장면이 보고 싶은데 카메라가 없다. 아니, 그 장면의 구도만 생각나고, 그 푸르름과 시원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가만히 바라보고 마음에 담아와도 좋았을 것을...

갑자기 나 자신에게 질문이 던져진다. 애쓰고 있었던 걸까?

Posted by cox4 :
미디액트에서 편집 수업을 듣다 쉬는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를 보내지마]의 마지막 부분을 읽었다.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작가가 쓴 소설이다. 장기 기증을 위해 복제되어 온 클론의 시선에서 씌어진 이야기이다. 소설에 대한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다. 뒷면의 소개글도 보지 않는 편. 주인공 화자인 캐시가 클론인 것을 모르고, 나중에 장기 기증을 위해 죽어야 하는 운명인 줄도 모르고, 캐시의 시선에서 캐시의 친구들을 만나버렸다. 캐시만큼 명민하거나 주의 깊지는 않지만, 나도 캐시처럼 과거에 느낀 어떤 느낌, 누군가의 당혹스런 표정, 기묘한 분위기 같은 것을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당시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거나, 추측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나의 성향. 그래서 삶을 일관되게 이해, 유지, 예측하려고 하는 보수적인 성향이 있는 것 같다.

캐시를 화자로 내세운 작가의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친구의 말이나 행동의 늬앙스를 분석하고, 자신과 타인의 행동을 관찰, 성찰 하면서 성장해가는 캐시처럼 작가의 글도 그러하다.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나 사실을 묘사하기 위해 수사를 많이 쓰지 않는다. 그런 게 좋았다. 나는 수사가 많은 문장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

'침묵하는 동안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리 모양의 하늘과 삐져나온 삼베 올 모양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뚫어지게 보았다.' [차가운 벽] 트루먼 카포티, 단편소설집 중에서...

버스에서 [나를 보내지마]를 마저 보려고 펼쳤다. 그러다 캐시의 친구인 토미가 비복제인간에게 " 우리한테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있었나요?" 라고 묻는다. 이 소설의 핵심 문장. 흔한 문장인 것 같지만, 캐시와 토미와 루스가 어떻게 자라오고, 비복제인간인 나와 다름없이 친구들과 미묘한 밀당을 했던 걸 350페이지 넘게 읽은 독자에게는, 참으로 슬픈 문장이다. 게다가 나는 필요에 의해서 그들을 만든 인간이라는 자각때문에 더욱. 물론 그들은 아직은 없지만. 줄기세포 논쟁이 한참이던 때가 생각나면서, 병에 대한 우리들의 두려움이 이기심으로 바뀌는 날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다보니, 참 무섭고 슬픈 문장으로 다가왔다. 체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더이상 읽지 못하고 집에 와서 마저 읽었다.

다시 문장 취향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문장 취향은 다른 취향과도 일맥 상통하는 것 같다. 문장 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도 그렇다. 꾸밈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지 못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솔직한 사람이 좋다. 곧장 본론을 이야기하는 게 좋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다시 [차가운 벽]을 인용하자면

 "...그래서 내가 기차를 좋아한다니까. 버스에 타면 사람들이 얼간이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지. 하지만 기차는 사람들이 자기 패를 다 보여주는 곳이니까."

기차가 실제로 자기 패를 다 보여주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패를 다 보여준다는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몇 주동안 맴돌았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라면 내가 가진 패를 다 보여줄 수 있을까? 그런 물음들을 던져보았다. 동시에 이 사람은 나에게 자기 패를 다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그런 물음도. 패를 든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때로는 아니 꽤 자주 나도 패라는 것을 들고 있더라. 보여줄까 말까 고민도 하면서. 그래서 더 이 문장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고민을 하는 것이 귀찮으니, 재는 것이 싫으니 그냥 내 패를 다 보여줘버리자고 생각하다가, 배신 비슷한 감정을 물컹 경험한 기억도 있어서 망설여지기도 하고. 다큐멘터리도 패를 다 보여줄 것처럼 하다가 조금 숨기고 그래야 재밌는데, 자기 패를 다 보여주는 것은 재미없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 때 생각난 문장이 또 있었다.

두 달 전쯤에 책 디자인이 너무 예뻐서 산 책, 디자인 만큼이나 내용도 알찼던, 일본 그래픽 디자이너 하라켄야가 지은 디자인 책 [디자인의 디자인]에 나오는 문장이다. 디자인의 역사를 통해 일본사회를 관통하는 통찰력도 멋지고, 그의 디자인만큼이나 군더더기 없는 문장도 좋았다.

그러나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테크놀로지란 좀 더 천천히, 서서히 진화되어었어야 했다.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이 문장 또한 두달 동안 맴돌았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 순간, 상대가 오해하면 어떡하지 고민될 때, 이 문장이 생각날 때가 있었고 그러면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생각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때도 있다. 이 문장이 좋은 것은,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꼭 전해야 할만큼 중요한 자신의 생각이 있고, 그 생각은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며, 그 결론이 옳다고 확신한다는 듯한 늬앙스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오해 따윈 신경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해를 받는 것은  두렵지만 두려워하지 않을만큼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론이라는 자신감.

내가 내 패를 다 보여줘도 되는 것일까 아닌 걸까 고민했던 것은, 오해를 사거나 이용을 당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가 가진 패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배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낙하산과 같은 마음으로 내 패를 보여주며 과감하게 살고 싶다. 아니 그렇게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 그러기위해선 우선 내 패에 대한 나의 신뢰가 먼저 쌓여야 하겠다.

[나를 보내지마]의 캐시는 기차를 탄다고 해서 무조건 자기 패를 다 보여주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자기 패를 보여줘야 할 때는 놓치지 않는 사람이다. 혹 놓쳤다면, 그 놓친 이유를 성찰하는 것은 놓치지 않는 사람이다.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그녀에게는 영혼이 있다. 훗날 정말 그녀 같은 클론이 나타난다면 나는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장기기증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도?...자신이 없다. 지금부터 심사숙고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어렵다.

덧1) [디자인의 디자인],[나를 보내지마] 추천, [차가운 벽]은 글쎄...허나 취향이 다르다면.
덧2) 나도 다시 읽기 싫을 정도로 글이 길구만...오타 작렬일듯.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