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깍으려고 쓰레기 봉투 앞에 주저앉았는데, 가슴 한켠도 같이 내려앉았다.
5년간 써왔던 종이 일기장의 마지막을 썼다. 매일 적던 게 아니어서 공책 한권인데 5년동안이나 썼다. 첫 장이 2005년 6월 박민규의 소설 [핑퐁]을 읽고 적은 일기였다. 서울에 올라와서 마지막 학년 수업을 듣던 때였고, 미래에 대한 기대로 부풀다가도 불안으로 떨던 때였다. 일기는 몇 장 지나지 않아, 독립다큐멘터리 수업을 듣던 때로 뛰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믿음을 스스로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일기는 또 6개월을 뛰어넘어 RTV에서 방송하던 시기. 일이 재밌어서 정신없이 하다가, 쉬는 날이 되면 불안한 마음이 들어 일기장을 찾은 것 같다. 또 훌쩍 뛰어넘어 반이다를 하면서 개청춘을 편집하던 때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개청춘 편집이 끝난 2009년 8월부터 일기가 잦아졌다. 주로 불안할 때마다 종이 일기장을 찾았다. 블로그에도 비공개로 일기를 쓰긴 하지만, 내 손을 바라보며 일기를 쓰는 게 불안감을 줄이는데 좋았다. 불안한 마음에 대한 내용 다음으로 많은 것이 다짐이다. 내가 너무 옹졸하다, 시선이 갇혀 나 자신밖에 보지 못한다, 욕심이 많다는 자책과 부끄러운 고백들 뒤에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 적혀있다. 하지만 그 다짐들은 5년동안 반복되고 있다. 일기를 보아서는 나아지고 있기보다는 자꾸만 마음이 협소해지고 옹졸해지고 있다. 오늘의 마지막 일기는 그런 나를 너무 부정하지 말고, 조금 인정하자는 것. 그래야 도망가지 않는 다는 것. 나의 샘이 너무 좁아 작은 감정에도 흔들흔들. 넓어져야 품을 수 있지.
[푸른강은 흘러라]를 보고 쓴 일기도 있었다. 주인공인 숙희가 옹졸해서야 바다로 갈 수 있겠냐고 소리치는데 나를 혼내는 것 같았다는 이야기. 오늘 강의를 들으러 오재미동에 갔다가 [푸른 강...] DVD를 빌려서 보았다. 꼭 보고 싶은 장면이 있었다. 남자가 천을 펴기 위해 천을 자근자근 밟던 장면. 길게 보여주던 그 행위를 보며 많이 울었었다. 얼마 전부터 그 장면이 보고 싶어서 오늘 찾아보았지만, 스킵하면서 봐서 어느 부분인지 찾지 못했다. 다음에 처음부터 다시 보아야겠다. 하지만 숙희의 얼굴과 백두산의 숲은 보았다.
[푸른강은 흘러라]를 보고 쓴 일기도 있었다. 주인공인 숙희가 옹졸해서야 바다로 갈 수 있겠냐고 소리치는데 나를 혼내는 것 같았다는 이야기. 오늘 강의를 들으러 오재미동에 갔다가 [푸른 강...] DVD를 빌려서 보았다. 꼭 보고 싶은 장면이 있었다. 남자가 천을 펴기 위해 천을 자근자근 밟던 장면. 길게 보여주던 그 행위를 보며 많이 울었었다. 얼마 전부터 그 장면이 보고 싶어서 오늘 찾아보았지만, 스킵하면서 봐서 어느 부분인지 찾지 못했다. 다음에 처음부터 다시 보아야겠다. 하지만 숙희의 얼굴과 백두산의 숲은 보았다.
새로운 일기장과 마음을 잡기 위한 색칠 놀이
비어있어야 채울 수도 있는데, 비우지는 않고 채우려고만 하는 나날들. 숲속의 빈터 같아지고 싶다. 마음이 시원해지고 싶다. 새로운 일기장엔 반복되는 불안과 다짐의 구절은 좀 줄고 내일에 대한 계획과 만족의 내용도 좀 들어가길.
그래도 지난 5년의 시간들 참 소중하다. 말할 수 없이...
비어있어야 채울 수도 있는데, 비우지는 않고 채우려고만 하는 나날들. 숲속의 빈터 같아지고 싶다. 마음이 시원해지고 싶다. 새로운 일기장엔 반복되는 불안과 다짐의 구절은 좀 줄고 내일에 대한 계획과 만족의 내용도 좀 들어가길.
그래도 지난 5년의 시간들 참 소중하다. 말할 수 없이...
밥 먹으로 들어간 식당. 내 옆 테이블에 양복을 입은 남자 둘이 오불정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남자는 50대 후반, 젠틀해보이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남자는 20대 후반의 반듯해보이는 청년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둘은 회사동료도 부자 관계도 아닌 것 같았다. 적당히 예의를 차리지만 부담은 없어보이고, 젊은 남자의 인생을 궁금해하는 걸로 봐서, 삼촌-조카 관계가 아닐까 싶었다. 친척관계.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늙은 남자가 말했다.
"도와준다는 립서비스도 성의가 없으면 못한다아이가. 도와달라면 도와줘야 할 거 아이가."
만화책을 읽고 있던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퍼뜩 들었다. 그 이야기가 일정정도 맞다고 생각하면서, 립서비스도 안하는 무성의한 사람이 내가 아닌가 싶었다. 젊은 남자는 독일유학을 위해 독일문화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는 것 같았다. 나이 많은 남자는 여자들도 많냐며, 자연스럽게 어울리다가 언니 소개시켜달라 그러라고 했다. 어른의 말을 주의깊게 듣는 젊은 남자에게 계속 말을 했다.
"남자는 중요한 게 두 가진데 하나는 직업이고 하나는 결혼이다. 근데 직업은 유학이다 뭐다 알아보면서 결혼은 우연에 맡기는데..."
만화책에는 부인을 짐승 때리듯이 때린다는 남자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내 옆에 앉은 남자들은 하얀 와이셔츠에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적당한 수준의 배려를 주고 받으면서. 의심의 눈초리로 그 얼굴들을 빤히 바라보면서 밥을 먹고 식당을 나왔다. 관찰결과 나이많은 남자의 머리는 가발이었다.
"도와준다는 립서비스도 성의가 없으면 못한다아이가. 도와달라면 도와줘야 할 거 아이가."
만화책을 읽고 있던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퍼뜩 들었다. 그 이야기가 일정정도 맞다고 생각하면서, 립서비스도 안하는 무성의한 사람이 내가 아닌가 싶었다. 젊은 남자는 독일유학을 위해 독일문화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는 것 같았다. 나이 많은 남자는 여자들도 많냐며, 자연스럽게 어울리다가 언니 소개시켜달라 그러라고 했다. 어른의 말을 주의깊게 듣는 젊은 남자에게 계속 말을 했다.
"남자는 중요한 게 두 가진데 하나는 직업이고 하나는 결혼이다. 근데 직업은 유학이다 뭐다 알아보면서 결혼은 우연에 맡기는데..."
만화책에는 부인을 짐승 때리듯이 때린다는 남자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내 옆에 앉은 남자들은 하얀 와이셔츠에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적당한 수준의 배려를 주고 받으면서. 의심의 눈초리로 그 얼굴들을 빤히 바라보면서 밥을 먹고 식당을 나왔다. 관찰결과 나이많은 남자의 머리는 가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