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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호흡

2011. 5. 11. 12:06 from 그래서 오늘
비 온 뒤 축축한 대기. 정신없었던 아이들과의 3박4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내게도 축축한 일들이 가득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에서 교사들에게 또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아니 배울 거리를 볼 수 있었다. 배우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어떤 태도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도 자신을 끊임없이 돌봐야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에 비한다면 그 무게감은 훨씬 덜하다. 교사들은 갑자기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열린 질문을 던지려고 노력하면서 새벽까지 토론을 이어갔고, 외부 교사인 나는 살짝 빠져서 토론의 흐름을 지켜보다가 결국 잠들어버렸다. 다음날 교사뿐 아니라 아이들까지 모두 밥 먹으러 간 다음 마지막으로 일어났을 때, 아차 싶었다. 늦게 일어난 것 때문이 아니라, 내가 타인을 만나는 방식에 대한 아차싶음.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 없이 대화하는 것,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지 못하는 것, 그것은 교사로서든 친구로서든 다큐멘터리스트로든 큰 결점이다.

어제 하루 종일 파일출력과 씨름하다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하고 집에 갔다. 마감이 빠듯한 일이라 마음이 급하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해서 작업실에 나와 블질을 한다. 아침에 마테차를 내려서 컵에 담아서 왔다. 쉼호흡.


Posted by cox4 :

20110430

2011. 5. 1. 00:22 from 다이어리
룸메 언니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이 생일인데, 월말이라 재고조사를 하느라 아직 못들어오고 있다. 생일이 큰 무게를 두지는 않는 언니이지만, 그래도 생일이 지날 때까지 일하고 돌아오는 길은 좀 씁쓸할 것 같다.

그런데 눈이 점점 감긴다. 어제 강화에 답사를 다녀온 탓이다. 아니 그 전날 새벽5시까지 강의계획서를 쓰고 오전부터 오후까지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빡센 일정을 소화하고 강화로 답사를 간 탓이다. 피곤해서 뻘개진 두 눈으로 강화에 도착했더니, 비가 쏟아졌다. 다른 교사들과 밥을 먹고, 회의를 했다. 숭어회를 먹었지만 별 감흥이 없었던 건, 민박집의 분위기가 어두웠던 건지, 몸이 잠을 간절히 원해서였는지 모르겠다. 회의를 대강 마치고 스케치북을 보았다. UV가 나오는 순간, 피곤함과 잠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생방으로 그들의 공중파 첫 출연을 볼 수 있어서 감격했다. 오랜만에 TV를 봐서 거의 넋을 놓고 있었다.

천둥 소리에 두어번 잠에서 깼다. 아침에 일어나니 엄청난 양의 눈꺼풀(?)이 눈 주위를 뒤덮고 있었다. 눈이 떠지지도 않아 한참 떼어냈다. 비로 강화를 걸어보지는 못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을 잤다. 신촌에 내려 남대문시장에 가서 교육에 필요한 장비를 사고, 생일 선물을 샀다. 아이폰 다이어리를 써보려고 노력했지만 더이상은 답답해서 안 될 것 같아 50% 세일하는 종이다이어리도 샀다. 집에 와서 된장찌개를 끓여먹고, 급한 메일을 하나 보내고, 무도 디너쇼편을 다운 받아 낄낄 거리며 보는 것까지 했는데도 언니가 안 들어온다.

선물을 마음에 들어했으면 좋겠다.


버스에서 동그라미 쳐진 문제도 열심히 풀던 여고생의 펜이 움직임을 멈췄다. 내가 내릴 때까지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쳐보이는 사람들이 자꾸 눈에 띄는 건, 나도 지쳤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내가 지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에게는 지치게 된 분명한 이유가 모두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나의 경우는 뭘까. 뭘까. 아니 지쳤다기보다는 에너지가 나오던 줄기가 막힌 것 같다. 나의 샘은 뭘까.
Posted by cox4 :

그녀들

2011. 4. 28. 17:30 from 작지만 확실한 행복
오두막 메모리를 빌리러 합정에 있는 장비렌탈업체에 갔다. 장비란 말이 주는 꺼칠함과는 다르게 깔끔한 사무실. 메모리하나 빌리는데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촬영 잘하세요 하며 조분히 말해준 그녀 덕에 친절함이 주는 따뜻함을 느꼈다. 9천원인데 천원 깎아줘서 하는 말이 아니다.

촬영을 마치고 이번엔 오두막을 반납하러 갔다. 아는 분의 아는 분에게 빌린 것. 며칠 동안 무료로 편하게 사용했다. 빈손이 부끄러워 전철에서 내려서 가는 길에 과일가게를 찾아보았지만 휑한 길에서 살만한 건 없었다. 고맙다고 가방을 건네는데 커피라도 한 잔 하자고 했다. 가봐야한다고, 오히려 내가 사줘야 한다고 하자 그럼 테이크아웃이라도 해서 가져가라고 막무가내로 카페에 들어갔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키겠다고 하자 열량이 있는 걸 시키라고 했다.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먹고 싶었지만 더 비싼 걸 사주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아이스라떼를 시켰다. 빌려주고도 생색내는 것 없이, 그저 사람을 반기는 그녀의 표정에 다시 한 번 친절을 생각했다.

며칠동안 몸과 마음의 부대낌이 있었다. 속이 부대낀다는 것 말고 다른 표현은 찾지 못하겠다. 답답함을 넘어선. 이해해줄만한 이들에게 목이 아프도록, 맡겨둔 돈이라도 있는 것처럼 징징거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목이 잔뜩 부어있었다. 부정적인 말만 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면서도 속에서 뻗쳐오는 불만과 답답함을 제어할 수 없었다. 남 욕도 많이 했다.

답답함은 여전하지만 오늘 처음 만난 그녀들 덕분에 부대낌이 확연히 줄었다. 요즘 크고 확실한 행복, 먼 미래만 고민했었는데, 오늘부터 다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볼 생각이다. 아니 만들어봐야겠다.

으랏차차아!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