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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22 빚 그리고 씁쓸한 밤 2
  2. 2011.06.02 그래요
  3. 2011.05.18 바쁘다면 바쁜 날들 1
그제는 일기장에 이런 이야기를 적었었다. '현실이 이렇게 어려운데, 죽음의 기운이 이렇게 난무한데, 나는 음악이 이렇게 달콤하게 들려도 되나, 이렇게 만족해도 되나, 이렇게 즐거운 일과 즐거운 만남이 많아도 되나, 아무런 빚진 마음 없이...' 물론 현실이 암울하다해도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다. 무한도전을 아껴보며 감탄해도 된다. 친구와 만나 수다를 떨어도 된다. 나도 안다. 하지만 빚진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선명하진 않지만 나의 어떤 기준이다.

오늘도 음악은 달콤하고, 여전히 편하고 만족스러운 날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씁쓸한 기운이 목 근처를 맴돌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뭔가를 하고 싶은데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시간이 필요한 일인지, 막무가내가 필요한 일인지 잘 판단이 되지 않는다. 하나는 아주 천천히 진행되고 있는 '신진다큐멘터리제작자' 네트워크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에 불거진 네오이마주 전 편집장 성폭력 사건이다. 전자는 반이다를 할 때부터 친구들과 고민했던 것인데, 인디다큐를 즈음해서 뭔가 해보자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면서 내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후자는 최근에 알게 된 사건인데, 그 후로 내 마음 한 곳에 아주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둘과 엮어서 요즘 나의 머릿속 화두는 여성주의이다. 정리가 되지 않아서 천천히 풀어볼 생각이다.

한 달 전쯤 나는 어떤 남자를 고소했다. 나는 내가 고소라는 걸 할 줄은 몰랐다. 고소라는 것이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사건의 전말은 간단하다.

밤 11시 반 정도에 작업실에서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내 어깨를 감싸안으며 팔을 두어번 문지르며 "집에 조심해서 들어가" 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아는 사람인가 싶어서 쳐다보았더니 생전 처음 보는 50대 정도의 아저씨였다. 양복을 입고 느끼하게 생긴 중년 회사원.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갈 길을 갔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쫓아가서 뭐하는 짓이냐고 따졌다. 그 남자는 그냥 잘 가라고 한 거라며 왜 호들갑이냐는 식으로 대꾸를 했다. 그 표정이나 태도에 확 열이 받아서 흥분해서 따지자, 자기가 성폭행이라도 했냐며, 니 팔이 성감대라도 되냐며 왜 그렇게 예민하게 그러냐고 했다. 사람들이 쳐다보자 더 당당하게 나를 이상한 아이로 취급했다. 그러면서도 자기 갈 길을 가길래 적당한 거리를 두며 따라가면서 계속 따졌다. 경찰에 신고를 해도 법에 걸리지도 않을 일이라며, 법도 모르냐고 그냥 가라고 했다. 점점 열 받아서 경찰에 신고를 했고, 바로 온다는 경찰의 답변을 듣고, 혹시나 도망갈지 몰라서 그 아저씨의 얼굴 사진을 찍고, 만졌다는 말을 녹음도 했다. 여유로운 척 하던 그 아저씨는 경찰차가 오는 소리가 들리자 무단횡단해서 택시를 탔고, 택시기님에게 부탁해서 차를 잡고 있다가 경찰과 함께 파출소를 갔다. 경찰서에 가서도 자기는 별 잘 못이 없다며  으스대고, 담배 피고, 커피 찾았다. 자기가 누구를 안다면서, 경찰들에게도 함부로 대했다. 결국 나는 고소장을 쓰고 세시간만에 경찰서를 나왔다. 경찰서를 나오면서 나는 고마움과 빚져있음을 느꼈다. 누구에게? 좁게는 반성폭력 운동을 했던 여성주의자들에게, 넓게는 수많은 언니들에게.

이 사건을 겪는 짧은 시간동안 나는 두 번 놀랐고 고마웠다. 첫 번째는 내 행동을 보고서이다. 예전에 성추행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이 멀리서 보이면 나는 바로 피하거나, 도망가거나 했다. 술 취한 사람이 시비를 걸면 멀리 돌아서 피했지, 결코 따지지 않았다. 술 취하지 않은 남자가 다가오는 것 같으면 더욱 경계를 하면서 피했다. 어떤 물리적 위협이 가해질 지 무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날은 그 남자에게 바로 다가가 따질 수 있었다. 전철역이 가까이에 있는 큰 대로변이라 사람도 많았고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순간적으로 나에게 어떤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르는 나에게 이런 놈들은 평소에도 그럴 것이다. 그냥 넘어가면 다른 사람에게 또 그럴 것이고, 직장 여성들에게는 더 그럴 것이고, 그러고도 잘못했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더럽다고 피하면 안된다' 라는 생각. 이 생각은 결코 나 자신이 만들어낸 생각이 아니다. (물론 다른 생각들도 내가 새롭게 만든 생각은 없다) 몇 년동안 보아온 성폭력 관련 다큐멘터리, 성폭력 관련 책들과 기사들, 그리고 주변 언니들의 이야기가 학습되어서 나온 생각이다. 그 생각에 이어 대처요령도 생각이 났다. 낯선 아저씨와 싸우면서 <버라이어티 생존 토크쇼>도 생각이 났고, <놈에게 복수하는 법>도 생각 났고, 각종 언니들의 글도 생각이 났다. 나는 정말 내가 달라졌다는 기분이 들었고, 고마웠다.

두번째 놀랍고 고마운 건 경찰서에 가서이다. 사실 나는 경찰에 신고해도 법에 안 걸린다는 아저씨의 말에 욱해서 신고를 했다. 열 받아서 신고를 하면서도, 성폭력도 제대로 처리 안 되는 세상인데, 팔 만진 걸 가지고 내 편을 들어줄까 싶었다. 경찰이 이 아저씨에게 훈계라도 해주면 다행이고, 최악의 경우 경찰과도 싸워야 된다는 각오를 하면서, 번호를 눌렀다. 너무 당당한 태도를 보이는 아저씨가 짜증이 나서 보여주기 위해서. 경찰은 내가 팔을 만졌다는 신고전화에 '만졌냐'며 되묻고는 그렇다고 하자 바로 오겠다고 하고 5분 안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그 아저씨와 나를 태웠고, 파출소에 도착하자 나를 왼쪽의자에 그 아저씨를 오른쪽 의자에 앉혔다. 내가 정황을 설명하려고 하자, 일단 신고서에 적으라고 해서 적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도 그 아저씨는 당당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우리나라 법이 이상하다며, 이런 걸로 뭐 여기까지 오냐며. 그러자 내가 신고서를 적는 걸 도와주던 50대 남자 경찰이 그 아저씨에게 성추행은 어떤 행위인지가 문제가 아니라, 상대가 성적수치심을 느끼면 그게 성추행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나에게 살며시 저런 놈들은 그냥 고소하라고 하며 고소장을 내밀었다. 옳다커니 하면서 고소장을 적으며, 나는 정말 고마움을 느꼈다. 비록 여전히 전국의 많은 경찰과 법조인들이 여전히 성폭력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내 앞에 있는 이 경찰 아저씨와 파출소의 사람들이 명확하게 성추행이 무엇인지 인지하게 된 것은 수많은 언니들의 싸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찰이 뭘 그런 걸로 신고까지했냐며, 대충 화해하고 집에 가라고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좋은데, 어리버리한 나에게 고소장도 주고...경찰서로 이동해 여자형사와 한참 남자들 욕을 하면서 조사서를 작성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룸메가 기분이 더럽겠다며 위로를 해주었지만, 나는 기분이 좋아 두 발 뻗고 맘 편히 잘 수 있었다.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더라면, 열 받아서 몇 날 며칠은 잠을 못 이뤘을 것이다. 다음 날과 지난 주까지도 그 아저씨는 형사를 통해 사과를 하고 싶고 나와 합의하고 싶다고 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합의를 거절한 데는, 반성의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형사의 귀뜸도 한 몫했다.

나는 그 후 얼마 동안 여성주의자들과 그녀들의 활동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을 했다. 진심으로 고마웠고, 이 빚을 앞으로 조금씩 갚아나가야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초부터 여성주의 공부+활동을 해야겠다고 많이 생각했었다. 그런 다짐만 하고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던 차에, 앞에서 언급한 사건을 알게 되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내가 속해있는 판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독립영화 제작지원을 받아서 다큐를 만들었기 때문에, 피할 수 없이 독립영화인이다) 그 사건의 경위가 너무 찌질하고, 짜증났다. 온갖 전형이 다 들어있었다. 반성할 줄 모르는 뻔뻔한 태도까지도.

그렇다면 빚진 마음이 있던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할수록 나와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며 피하고만 싶어진다. 구질구질함과 싸워야하는 어떤 괴로움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가 있는 일이고, 나의 일이다. 너무 분명하게도. 지금 이 사건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다면, 내가 다음에 이런 일을 당했을 때 누가 나서줄까. 그래서 하는 포스팅이다. 앞으로 내가 도망가지 않도록, 스스로와의 약속에 책임지도록, 에잇 몰라하지 않도록, 빚진 마음이라도 무겁게 갖고 있도록 말이다.

잘 모른다는 핑계로 너무 오랫동안 외면했다. 일단.

Posted by cox4 :

그래요

2011. 6. 2. 02:22 from 그래서 오늘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건 참 좋은 일이야' 친구에게서 온 메일을 버스 타고 작업실에 가는 길에 두 번, 작업실 의자에 앉자마자 또 한 번, 그리고 방금 전에 한 번 더 읽었다. 친구의 말처럼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작업을 마치고 나면 더욱 확고해지는 생각이다. 나도 아는 사실이지만, 신뢰하는 이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면 더욱 잘 알게 되는 기분이 든다. 그래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걸 직업으로 갖게 된 건 감사한 일이에요.

공부방 아이들과 전쟁같은 편집 교육을 하고 있다. 두 개의 미디어센터를 오가며 월,수, 주말 내 편집을 한 지도 벌써 2주 째. 그러고도 아직 완성을 못해 오늘도 10시까지 편집을 했다. 편집 초반엔 나도 이걸 언제 끝내나 걱정이 앞섰는데, 막바지에 왔는지 하나 둘 작업을 끝내기 시작했다. 최종출력을 하면서 뿌듯해하고 으쓱해하는 표정들을 보는 것이 즐겁다.  주말, 찜통 같은 편집실에서도 투덜대면서도 자리 한 번 뜨지 않고 열심히 편집했던 아이들. 교사들도 그 모습을 신기해한다. 편집 교육을 하면 여기 저기서 '깅' '기기깅' 자기 먼저 봐달라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끝이 없다. 편집 교육 때만 인기 만점이다. 응, 응 갈게, 알았어 하고 대답해놓고도 한참 있다가 가서 대답을 해준다. 편집을 먼저 끝낸 아이들이 집에 가고 대여섯명이 남았는데, 전체를 처음 보는 친구들 작업도 있었다. 나를 그렇게 애타게 부르고, 찾아다녔는데 한 번도 못왔구나, 아차 싶은 마음, 서운하지 않았을까 아이 눈치를 보면서 애써 꼼꼼히 체크하는데, 이미 지칠대로 지친 아이들은 이것저것 수정하라는 것이 많은 내 말에 짜증이 나는 눈치다. 달래 가며 윽박질러 가며 장난치고 놀려가며 편집을 거의 끝냈다. 그러고도 못한 아이들이 남아서 한 번 더 편집교육을 해야 한다. 20명은 역시 많은 인원이다. 편집을 마친 아이들이 깅한테 '허락'을 맡아야 한다고 했던 말이 마음에 걸린다. 나의 어떤 태도가 그들에게 '허락'이라는 단어를 연상시켰을까? 자막길이가 짧지 않은지, 사운드 조절은 했는지, 제목을 잘 달았는지, 엔딩크레딧은 넣었는지 그런 걸 체크했는데 왜왜왜! 아무리 생각해도 '허락'이라는 단어를 가져올만한 태도를 보인 적이 없는데, 왜 '검사'도 아니고 '허락'일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단어선택이 이상한 거라고 우겨야지. 자기가 만든 작품을 출력해 플레이 해보면서 만족스럽냐고 물어보면 '응 만족스러워'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내거 봐봐. 완전 잘했어.'라고 나를 끌고 가던 팔. 그들의 노력의 과정과 결과물, 자기 평가에 내가 열심히 고개 끄덕이고 긍정해줬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럴려고 노력은 했는데, 너무 바빠서 놓친 게 많은 것 같다. 그들이 노력한 과정을 잘 기억하고 있어야겠다. 어쨌든 첫 번째 상영회는 정해졌다. 기대.

그래도 내가 교사로서 많이 성장했다고 스스로 느껴질 때가 있다. 교육을 하던 초반엔 참여자들이 안 오거나, 편집을 포기하면 엄청 부담이 되었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하고. 참여자들 기다리면서 애타기도 하고. 지금도 그런 건 비슷하지만, 그래도 정해진 내 몫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다. 교사로서 내 몫이 있고, 공부방 교사들의 몫, 아이들의 몫, 또 시간들에게 의지해야 하는 몫이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미디어교육을 통해 모든 것, 아니 많은 걸 할 수 없다는 것도 아는 것 같다. 아이들이 나를 칭찬해주지 않기 때문에 나는 내가 스스로 칭찬한다.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길게 보고 하자.

라디오에서 <그런 날에는>이 나온다. 재주소년 버전과는 또 다른 느낌의 들국화. 이 노래 참 좋아한다. 가사에 나오는 '거기'는 어디인 걸까? 나는 거기에 있는 걸 접기로 했다.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나는 나를 보호하기로 했다. 며칠 전부터 옥상달빛의 <그래야 할 때>라는 노래가 계속 맴돈다. 자주 듣고 있다. 가만히 대답하듯 '그래요'라고 말하는 옥달의 목소리가 참 좋다. 그래요. 앨범 발매하기 전에 라천에 나와서 불렀을 때부터 무척 좋았다. 문자를 어떻게 보낼까 쓰다 지우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그래요'라고 보냈다. 덕분에 달콤한 잠이 아니라 악몽에 시달리고 있지만, 괜찮다. 요즘 정신없이 바쁘니까. 괜찮다. 주말엔 편집 교육이 없어서 간만에 쉴 수 있을테니까. 그래요.

집에 오니 룸메 언니가 자기 회사 나온다면서 피디수첩을 보고 있었다. 최저임금에 관한 것이었다. 최저임금 투쟁이 곧 자기 임금투쟁이라던 허브 말도 떠오르고, 화면에 등장하는 언니 매장 막내들의 월급 명세서도 아찔했다. 아닌척 했지만,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있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내가 요즘 이렇게 바쁜 이유도 그것과 다르지 않는 것 같아서... 에잇, 오늘 온 전화부탁은 거절할 걸.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리고 잘 거절해야 한다. 라디오는 꼭 끄려고 하면 좋은 노래가 연속으로 나온다. 라디오도 잘 거절해야 한다.

시간을 비워두어야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기운도 나고 웃기도 한다. 시간이 가는 곳에 마음이 간다.
Posted by cox4 :
작업실 근처에서 점심으로 냉면을 먹었다. 면도 차가운데 에어컨까지 켜져 있어서, 다 먹고 일어설 때는 몸이 차가워져 있었다. 차가워진 몸 때문인지 오랜만에 내 마음도 차분하다.

4월 말부터 거의 매일 뭔가 일이 있었다. 출퇴근을 하는 이들에겐 매일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아니면 반나절 정도는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던 나에게는 좀 힘든 기간이었다.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공부방에서 여행을 다녀오면서 일이 많아진 게 있고, 영화제 상영 테이프 출력 하는 게 문제가 있어서 며칠 동안 정신없이 돌아다녔던 것도 여유 시간을 없애는 데 한 몫했다.

오늘도 작업실에 나와 교육 계획서와 평가서를 적고, 곧 건대에서 있는 상영회에 갔다가, 다시 공부방 교육을 하러 가야 한다. 내일은 다시 출력과 씨름해야 한다.

바쁘다면 바쁜 날들이다. 그 바쁜 것이 그리 싫지만은 않다. 몸이 단단히 조여지는 느낌이랄까. 대신 내 스스로가 그 일들과 경험들을 정리하고 소화해낼 수 있는 시간은 절실하다. 매일 출퇴근을 했던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일들은 아무렇지 않게 소화하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새로운 장소에 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보면 여러가지 자극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그럴수록 동시에 오랜 친구들이 보고 싶어진다. 나의 맥락을 알고, 나의 과거를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과 편한 수다를 떨고 싶다. 그리고 또 절실해지는 것 하나, 영화관 의자에 몸을 깊숙히 박고 가만히 어떤 삶의 이야기를 보고 싶다. <파수꾼> 이 후로 영화관에 못 가본 듯. 영화제 말고.

이제 이를 닦고 나가야 한다. 횡설수설하는 것이 아니라, 차분한 마음으로 대화다운 대화를 하다 올 수 있길. 그리고 내일은  출력에 성공할 수 있길. 마음에 공간이 생기길.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