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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20 아니
  2. 2010.04.19 오늘 2
  3. 2010.04.18 전..양반

아니

2010. 4. 20. 14:57 from 또는 외면일기
우체국에 가려고 나갔다. 화창하진 않았지만 공기가 따뜻했다. 골목길에 할머니 한 분과 6-7살쯤 되어보이는 손자, 손녀가 걸어가고 있었다. 목에 손수건을 감은 아이들이 외투를 벗어서 할머니의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외투에서 팔 한쪽을 마저빼기 위해 반바퀴 정도 돌던 여자아이가 물었다.

"할머니, 지금 여름이야?"

옆에 있던 오빠가 재빨리 대답했다.

"아니, 여름 말고 봄!"

Posted by cox4 :

오늘

2010. 4. 19. 23:54 from 다이어리
11시 반쯤 사무실에 도착했다. 태감독님이 청소를 하자고 해서 바닥을 쓸었다. 감독님이 물기 많은 걸레로 바닥을 닦았는데 내 실내화 발자국이 계속 남았다. 대충 물로 씻었는데도 검은 물이 계속 나왔다. 유니클로에서 12000원 주고 산 마음에 쏙드는 실내화인데, 한 번도 안 빨아서 그러나. 이겨울 실내화를 빨 때가 된 걸 보니 과연 4월이구나 싶다.

점심을 먹으러 가자는 사무실 식구들 말에 밥을 먹고 나왔다고 하니 배신이라고 했다. 모두 태감독님이 넘흐 좋아하는 3500원짜리 김치찌개 집에 가셨다. 근처에 1500원짜리 국밥집도 있다고 하니 다음에 가봐야겠다.

사무실에서 한 주 일정도 정하고, 메일 확인하고, 즐겨찾기 한 곳들 방문하고, 제작비 명세서 하나 작성하고, 기획서 점검했다. 그리고 드디어 몽골영상을 마무리하였다. 몇 개월에 걸친 지난한 작업. 정확한 마감이 없어서 늘어지고 늘어졌던 편집인데, 오늘 완성. 외장하드를 전해주러 가서 수정을 좀 하고 집에 왔다.

전철을 기다리는데 어떤 아저씨가 동료로 보이는 사람에게 말했다. 전철을 타는 게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고. 폐쇄적인 공간에 있는 것이 은연중에 스트레스를 준다고. 시간이 10분 정도 덜 걸려서 전철을 탔는데 내일은 버스를 탈까보다. 전철에서 우연히 본 한 40대 여자분의 문자. '웃긴다. 왜그래?'

신이문 역에 내려서 떡볶이를 살까 말까 한참 고민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결국 가서 밥하기가 귀찮아서 1인분을 샀다. 신이문역에서 우리집까지 오는 직선 코스의 길에 떡볶이 파는 집이 세군데 있다. 그 중 역근처의 집이 제일 맛있는 것 같다. 다른 데서는 안 사봤다.

집에 와서 떡볶이를 먹고, 이때가 8시쯤. 룸메가 만들어준 딸기쥬스를 먹고 정말 오랜만에 청소를 했다. 난방매트를 넣고 침대를 쓰기로 했다. 방이 넓어졌다. 먼지가 많아서 비염알레르기가 생겨 걸레질도 구석구석 했다. 건조하니 가습기도 틀어야겠다. 부엌과 거실도 청소기를 한 번 돌리고, 재활용쓰레기도 버리고 헌 옷도 버렸다. 신발도 버릴까해서 신발장을 열어봤더니, 사놓고 한 번도 안 신은 신발이 세개나 있다. 하나는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세일해서 덜컥 산 것, 하나는 길에서 싸길래 산 것, 하나는 몇 주전 인터넷으로 맘 먹고 샀는데 뭔가 마음에 안 들어서 안 신고 있는 것. 쇼핑할 줄 모르는 나다.

그리고 지금 블로그에 일기를 쓰고 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적는 이유는 뭘까. 심난한 마음을 다잡기 위한 행위인듯. 공개 or 비공개? ...중2병에 걸린 사람 같은 포스팅이지만 별 이야긴 없는 듯하니 공개!
Posted by cox4 :

전..양반

2010. 4. 18. 02:29 from 또는 외면일기
이소선 할머니가 나오는 인물 다큐멘터리 [어머니] 작업에 촬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소선 할머니 손자분이 결혼을 하여서 촬영을 하였다. 결혼식 촬영을 해주던 습관이 나올까봐 조마조마하며 촬영했다. 분주한 결혼식장 분위기 때문에 촬영도 휘청휘청. 결혼식장에서는 사진을 찍는 분들이 누구보다도 발언권이 세다. 오늘도 반지를 끼워주는데 사진을 찍으시는 분이 사진찍어야 하니까 이쪽으로 돌아서 끼워주라고 하고, 웃으라고 하고 요구하는 게 많으셨다. 그것도 결혼식장 전체를 울리는 큰 목소리로. 하객들은 신랑신부의 모습 대신 사진찍으시는 분의 등을 봐야했다. 나도 촬영라인을 넘어가지 않기 위해 눈치보면서 촬영을 했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말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폐백도 사진을 찍는 것을 중심으로 진행이 되었다. 사진찍으시는 분이 멈추라면 멈추고, 하라면 하는 식. 사진기사분이 목소리도 크고 농담도 곧잘 하셨는데, 기억나는 건 성에 관한 농담이다. 전씨 집안의 결혼이다보니 전씨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사진기사분도 전씨였나보다.

"저도 전씬데. 근데 전 밭전자를 써요. 밭전자는 잘 안쓰긴 한데."

주위에 계시던 어른들과 한참 전씨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 받더니 이어지는 말.

"근데 전씨들이  다 양반이잖아요. 인사할 때 전..민수입니다. 전영식입니다. 이렇게 공손하니까 말이죠. 허허. 근데 나씨들은 양반이 아니죠. 나..민수입니다. 나영식입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버릇없어보이고...허허."

시시하게 족보이야기하는 줄 알았더니, 실없지만 기억에 남는 농담을 하셨다.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