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서비스

2010. 6. 18. 13:42 from 또는 외면일기
밥 먹으로 들어간 식당. 내 옆 테이블에 양복을 입은 남자 둘이 오불정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남자는 50대 후반, 젠틀해보이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남자는 20대 후반의 반듯해보이는 청년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둘은 회사동료도 부자 관계도 아닌 것 같았다. 적당히 예의를 차리지만 부담은 없어보이고, 젊은 남자의 인생을 궁금해하는 걸로 봐서, 삼촌-조카 관계가 아닐까 싶었다. 친척관계.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늙은 남자가 말했다.

"도와준다는 립서비스도 성의가 없으면 못한다아이가. 도와달라면 도와줘야 할 거 아이가."

만화책을 읽고 있던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퍼뜩 들었다. 그 이야기가 일정정도 맞다고 생각하면서, 립서비스도 안하는 무성의한 사람이 내가 아닌가 싶었다. 젊은 남자는 독일유학을 위해 독일문화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는 것 같았다. 나이 많은 남자는 여자들도 많냐며, 자연스럽게 어울리다가 언니 소개시켜달라 그러라고 했다. 어른의 말을 주의깊게 듣는 젊은 남자에게 계속 말을 했다.

"남자는 중요한 게 두 가진데 하나는 직업이고 하나는 결혼이다. 근데 직업은 유학이다 뭐다 알아보면서 결혼은 우연에 맡기는데..."

만화책에는 부인을 짐승 때리듯이 때린다는 남자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내 옆에 앉은 남자들은 하얀 와이셔츠에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적당한 수준의 배려를 주고 받으면서. 의심의 눈초리로 그 얼굴들을 빤히 바라보면서 밥을 먹고 식당을 나왔다. 관찰결과 나이많은 남자의 머리는 가발이었다.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