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한 동네에 짱 박혀서 이틀을 보냈다. 오늘은 나돌아 다니고 싶어서 버스를 타러 갔다. 정류장에 붙은 버스시간표를 보니 10분 정도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땡볕이다. 길 건너 초등학교 돌비석이 만든 작은 유일했다. 그늘 속에 몸을 다 구겨넣기 위해 철퍼덕 도로가에 앉았다. 그늘은 소중하다. 그 때 한 할아버지가 길 건너 버스 정류장으로 왔다. 이렇게 한적한 곳에서 사는 삶은 어떨까? 그것도 노인으로서 산다면. 심심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할아버지 나를 보고 길을 건넌다. 나를 보지 않는 척 했지만 분명히 내가 타깃인 걸 알 수 있었다. 그늘에 앉아있었더니 이번엔 할아버지가 오는 건가. 할망은 좋지만 할아버지는 싫다는 생각에 일어서려는데, 할아버지 이미 도착해 웃으며 말을 건네신다. 그늘이 여기 밖에 없네.
오늘도 어디서 왔는지, 어디에서 묵었는지, 지금은 어디로 가는 지 묻는 말에 차례로 대답했다. 서울에서 살다가 지금 잠시 여기 사신다는 할아버지는 차를 근처에 세워놓고 쇠소깍에 놀러가신다고 했다. 용문이 오름에 간다고 하니 거긴 볼 게 없다고 쇠소깍에 같이 가자고 하신다. 나는 오름을 가보고 싶었다며 거절하는데, 할아버지 심심하다며 자기 차를 타고 다니자고 하신다. 곤란해하던 차에 버스가 와서 얼른 탔다. 할아버지도 탔다. 할아버지는 누가 자리를 양보해줘서 바로 앉았고, 나는 멀찍이 떨어져 서 있었다. 할아버지가 말을 걸까봐 조마조마 하면서 창밖만 보고 갔다. 그렇게 한 30분쯤 지나 뒤돌아보니 할아버지는 이미 내리셨다. 쇠소깍이 되기도 전인데! 나도 내릴 때가 된 것 같은데 하면서 찾아보니 나는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 이런. 버스에서 내려 다시 반대편 버스를 타고 돌아왔더니, 숙소에서 나온 지 2시간만에 거의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래도 괜찮았다. 여행이니까. 가고 싶었던 오름은 그래도 기다려주니까.
오름에 올랐다. 숲에도 갔다. 눈도 마음도 시웠했다. 얼굴과 팔다리가 시커멓게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