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게스트하우스에서 주는 조식, 오니기리와 된장국을 먹고 나왔다. 동네 카페에 가서 가자마자 있을 촬영을 위해 몇 가지 일을 하였다. 눈을 들어 창밖을 보는데 낮은 산과 나무들이 가득 보였다. 그 사이로 버스가 한 대 지나갔다. 속으로 나즈막히 말해보았다. 버스가 한 대 지나갔다. 한 대가 지나가다니, 줄줄이 신호대기에 걸려있는 것도 아니고, 줄줄이 버스전용차선을 달리는 것도 아니고 한 대가 지나가다니! 그리고 얼마 뒤 자동차가 한 대 지나갔다. 여기까지 여행을 온 것은 이런 속도를 느끼기 위한 게 아닐까. 내가 따라가고 있던 속도만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기 위해서 이 돈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얼른 일을 마무리하고 놀아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노트북으로 다다다다. 


동네에 짱 박혀 있었지만 돈을 꽤 쓴 것 같다. 하루 두 번 카페에 가면 크림치즈베이글까지 해서 15,000원. 밥값은 기본이 10,000원이고 조금 맛있는 걸 먹으려면 16,000원은 내야 한다. 하루 두끼. 그리고 동네에 서점이 있다는 이유로 읽을 책을 안 가지고 온데다 집중해서 읽다보니 금방 읽어버려서 두 권이나 샀다. 그리고 어제 오름과 숲을 다녀오는 길에 힘들어서 택시로 이동. 그리고 간간이 기념품과 소품 득템. 그래도 합쳐보면 얼마 되진 않지만 내가 한 소소한 행동에 대한 값치고는 꽤 비싼 편이다. 


그래도 마지막 날이나 맛있는 걸 먹어야지 하면서 이 동네의 맛집을 향해 오랫동안 걸었다. 도착하니 주인장들께서 휴가. 불편하게 해서 죄송하다는 메모를 보고 조금 더 직진했더니 사람들이 우글우글한 집 도착. 제주에서 먹고 싶었던 보말국을 파는 집을 발견했다. 대평리에서 먹은 국만큼 맛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좋았다. 다시 동네로 가려니 햇볕이 너무 강해 해변 정자에 누웠다. 해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길 기다리면서 한참. 파도소리, 차 한 대 지나가는 소리, 동네 사람이 타는 게 분명할 자전거 삐걱대는 소리, 다시 파도소리, 파도소리. 솨아악. 생각해보니 여행 와서 한 번도 음악을 플레이 하지 않았다. 김포공항으로 가는 길에도, 여기 도착해서도 한 번도 내 이어폰으로 음악은 듣지 않았다. 카페의 음악이나 분식집의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만 들었다. 이어폰으로 야구 중계는 좀 들었다만. 여튼. 나 스스로도 신기했다. 그걸 인지하고도 듣고 싶은 음악이 없었다. 어제 간 카페 주인장의 말대로 편안한 여행을 하고 있나보다. 그런 게 얼굴에 드러난다고 말했었다. 


책은 두 권 사서 읽었다. 여기 오면 동네 책방에서 사서 읽어야지 했던 [모든 요일의 기록]은 그날 밤 다 읽었다. 어떡하지. 또 책을 사서 하루만에 다 읽어버리면 서울로 돌아가는 날에 가방이 너무 무거울 것 같았다. 두 번째 책은 하루 안에 읽기 어려울 것 같은 두꺼운 소설책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샀다. 이전부터 여러 번 봤지만 뭔가 안 끌려서 읽지 않았는데, 여행와서 읽기는 좋을 것 같았다. 두꺼워서 샀는데 재미있어서 하루만에 다 읽을 뻔 했다. 조금 참으면서 나눠 읽고 조금 전에 카페에서 마저 다 읽는 행복을 누렸다. 마침 지금 카페에는 정원영 5집이 나온다. 


이번 여행이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정말 좋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좋았는지 아니었는지도 지금은 잘 판단하기 어렵다. 딱히 뭔가 한 것도 없다. 게스트하우스라 긴장했는지 밤마다 잠도 깊이 들지 못했다. 어젯밤엔 괴기스런 꿈 하나와 고양이들을 죽여서 음모를 꾸미는 조직, 그리고 그 조직의 편을 들어주는 박서울시장이 나오는 꿈을 꿨다. 낮에 길에서 죽은 고양이를 봐서 꾸게 된 꿈인 것 같다. 화장실도 편하지 않아서 제대로 못갔다. 길가다 방구를 꼈는데 동네가 너무 조용해서 뒤따라 오던 여자가 들어버리는 사고(일상이 아닌)도 있었다. 그럼 이번 여행이 어땠다고 말할 수 있을가. 아직 완벽하게 여행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음, 내일이면 돌아가니까, 생각해보면...


그래. 편안한 얼굴을 한 여행이었다. 그 정도이다. 더는 없다.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