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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3.08.31 마르는 가을
  3. 2013.07.12 03. 마음 들여다보기

반복

2013. 9. 15. 10:31 from 그래서 오늘

지금이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어보지만, 지금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음악을 끄고 가만히 있으니 내 숨소리가 제일 먼저 들렸고, 아침인데도 우는 귀뚜라미 소리, 새소리, 작업실 앞 원룸에서 나는 물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있어야 들리고 물끄러미 보아야 보이는데, 가만히 있기엔 내가 채워진 것이 없고 물끄러미 보다보면 파고들고 싶어진다. 그러다보니 얕은 일상에 허덕이고, 시선이 가야한다고 믿는 곳을 외면한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가만히, 물끄러미...



Posted by cox4 :

마르는 가을

2013. 8. 31. 14:49 from 그래서 오늘

아침에 일어나면 '아 가을이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불 속에서 좀 더 꼼지락 거리면서 꿈을 이어간다. 더 이상 전개할 꿈 속 이야기가 없으면 눈을 뜨고 한참 이런 꿈을 꾸게 된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한다. 일어나 거실로 나오면 햇살이 살짝 들어오는데, 역시 가을이구나 싶다. 계절은 이렇게 정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시간은 성실하게 자기 갈 길을 가는데, 나는 제대로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 가을로 가는 시기는 어렵다.


가을을 무서워하는 건 단순히 가을타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환절기가 되면서 코가 맹맹해지는 걸 수십년 겪다보니, 가을이랑은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깊숙히 새겨진 것 같다. 코가 맹맹하면 머리가 멍해지고 머리가 멍해지면 의욕이 사라진다. 잠을 자는 것만이 유일한 비상구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 비상구에 숨어들어 며칠의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은데, 가을이 정말 찾아오기 전에 마무리 해야 할 일들이 많다. 며칠동안 가까운 친구들에게서 안타까운 소식을 몇 개 들었다. 기운 내라고 하고 싶은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범위에 있는 일들이 아니라 이상한 방식의 위로들을 하게 되었다.


날이 선선해지면 바로 핸드크림을 찾게 된다. 한 밤 중에 목이 막혀 깨서 급하게 물을 마시는 일이 잦아진다. 그럴 때 예전에 한 연예인이 썼던 시가 생각이 난다. 바삭한 걸음을 인정하고 싶다.


하얀 쌀밥에 가재미얹어 한술뜨고 보니 낮부터 잠이 온다.

이 잠을 몇번 더 자야지만 나는 노인이 되는걸까.

나는 잠이들며 생각한다.

 
다시 눈을뜨면 다 키워논 새끼들이랑 손주들도 있었으면 좋겠다.

수고스러운 젊음일랑 끝이나고 정갈하게 늙는일만 남았으면 좋겠다.

 

그날의 계절은 겨울이였으면 좋겠다.

하얀눈이 펑펑 내려 온통을 가리우면 나는 그리움도 없는 노인의 걸음으로 새벽 미사에 갈 것이다.

 

젊은날 뛰어다니던 그 성당 문턱을 지나 여느날과 같은 용서를 빌고

늙은 아침을 향해 걸어 나올 때 그날의 계절은 마침 여름이였으면 좋겠다.

 

청명한 푸르름에 서러운 세월을 숨기우고 나는 그리움도 없는 노인의 걸음으로 바삭한 발걸음을 뗄 것이다.






Posted by cox4 :

정말 오랜만에 촬영 생각 없이 하루를 보냈다. 몇 달 동안 촬영을 어떻게 할 지, 누구를 섭외할 지, 어떻게 연결할 지를 생각하다가 지금은 거기서 살짝 빠져나온 것이다. 지난 화요일 구성 회의를 하고 난 다음에 피디님에게 마음을 들여다볼 것을 제안 받았다. 제안이라기보다는 권유, 혹은 부탁에 가까웠다. 촬영은 계속 하고 있는데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인지가 구성안에도 나의 이야기에도 담겨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안하실 것 같다. 나보다 더. 그리고 나도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인터뷰 중심으로 짜 맞춰 적은 구성안을 어떻게 수정할 지 막막하기보다는, 더 이상 머뭇거리거나 적당히 드러낼 수 있는 시점은 지났다는 것이 두려웠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드러내지 말아야 할 정도의 깊은 무엇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런 것은 전혀 없다. 평범한 생각 뿐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게 두려운 지도 모르겠다.


의자를 소재로 이야기를 한다고 했을 때, 그리고 기획을 이야기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어떤 것일 지 기대가 된다고 하였다. 그 기대에 부응하가 위해 영화를 만들 생각은 별로 없었으나, 그 기대를 잃는 것은 두려웠던 것 같다. 기획 단계에서 느껴지는 그 흥분, 촬영 단계에서 갖는 즐거움을 이어가고 싶었던 것 같다. 허나 편집 단계는 다가오고 있었고, 특별할 것 없음을 인정하고 가지고 있는 것들을 꺼내야 하는 것이다. 의자를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 의자가 되는 법이란 선언적인 제목까지 가기 위해서 나는 지금 나의 어떤 마음을 살펴보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결국 아픈 마음이다. 그리고 홀로 버티고 있음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 정도의 강인함이다. '의자'란 사물이 아니다.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