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촬영 생각 없이 하루를 보냈다. 몇 달 동안 촬영을 어떻게 할 지, 누구를 섭외할 지, 어떻게 연결할 지를 생각하다가 지금은 거기서 살짝 빠져나온 것이다. 지난 화요일 구성 회의를 하고 난 다음에 피디님에게 마음을 들여다볼 것을 제안 받았다. 제안이라기보다는 권유, 혹은 부탁에 가까웠다. 촬영은 계속 하고 있는데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인지가 구성안에도 나의 이야기에도 담겨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안하실 것 같다. 나보다 더. 그리고 나도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인터뷰 중심으로 짜 맞춰 적은 구성안을 어떻게 수정할 지 막막하기보다는, 더 이상 머뭇거리거나 적당히 드러낼 수 있는 시점은 지났다는 것이 두려웠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드러내지 말아야 할 정도의 깊은 무엇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런 것은 전혀 없다. 평범한 생각 뿐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게 두려운 지도 모르겠다.


의자를 소재로 이야기를 한다고 했을 때, 그리고 기획을 이야기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어떤 것일 지 기대가 된다고 하였다. 그 기대에 부응하가 위해 영화를 만들 생각은 별로 없었으나, 그 기대를 잃는 것은 두려웠던 것 같다. 기획 단계에서 느껴지는 그 흥분, 촬영 단계에서 갖는 즐거움을 이어가고 싶었던 것 같다. 허나 편집 단계는 다가오고 있었고, 특별할 것 없음을 인정하고 가지고 있는 것들을 꺼내야 하는 것이다. 의자를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 의자가 되는 법이란 선언적인 제목까지 가기 위해서 나는 지금 나의 어떤 마음을 살펴보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결국 아픈 마음이다. 그리고 홀로 버티고 있음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 정도의 강인함이다. '의자'란 사물이 아니다.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