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는 외면일기'에 해당되는 글 19건

  1. 2012.08.17 큰 그림을 그리는 할머니
  2. 2012.06.30 그 무렵부터 아빠는
  3. 2012.05.27 사직구장

요즘 종종 밤에 조깅을 한다. 집근처 공원에 있는 작은 트랙을 돈다. 집에 늦게 들어가기 때문에 밤보다는 새벽에 가깝다. 자정을 넘어서 하는 경우가 많다. 작은 트랙이라고 하기엔 둥근 공원길에 가깝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트랙처럼 사용한다.


새벽에 가면 사람이 별로 없다. 아저씨나 젊은 사람 몇 명 뿐이다. 그런데 유독 자주 보는 할머니가 계셨다. 할머니는 80대는 훌쩍 넘어보였다. 걷는 것도 편치 않아 보였다. 그 할머니는 나처럼 뛰지는 않고 빠른 걸음으로 20바퀴 이상은 도시는 것 같았다. 나는 할머니 뒤에서 뛰다가 추월하다가를 반복한다. 할머니가 있어서 왠지 안심이라는 느낌으로.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내가 도착하자마자 트랙을 나가는 길로 가시는 것이다. 벌써 가시나 싶었더니 그게 아니라 트랙 입구인 길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시는 것이었다. 트랙이 작기 때문에 어떻게든 크게 원을 그리시면서 가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는 그 트랙안에서 가능한 가장 큰 그림을 그리고 계셨다.


하지만 이제 막 조깅을 시작한 나는 목표인 10바퀴 12바퀴를 채우기 위해 트랙의 가장 안 쪽으로 돈다. 어떻게든 목표량만 채우려는 꼼수이다. 의식적인 것은 아니고 무의식이다. 


조깅을 하는 데에도 이렇게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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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엄마와 함께 가게 문을 닫고 차를 타러 주차장으로 갔다. 열 발짝 정도 앞서 가던 아빠가 갑자기 멈춰서 뒤를 돌아 엄마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식당예약시간에 늦었는데 왜 그렇게 느긋하게 오냐는 성격 급한 아빠의 재촉이라고 생각해 아빠 보라고 걸음을 서둘렀다. 아빠는 그래도 돌아서지 않고 기다리다가 엄마에게 팔을 뻗었다.


"그거 도."


말없이 들고 있던 가방을 내미는 엄마와 그걸 받아드는 아빠. 아빠의 오른손에 엄마가방, 왼손에 장본 것들이 있다. 엄마의 손엔 딱 보기에도 가벼워 보이는 종이가방이 남아있었다.


"그것도 도."

"이건 괜찮다."

"도."

"괜찮다. 가볍다."

"경화야 니가 엄마 종이가방 들어라."


그러고 아빠는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엄마의 종이가방엔 새로 산 원피스 하나 들어있었다. 아빠 말대로 엄마의 가방을 받아들어야 하는 걸까 망설이고 있는데, 뭔가 쑥스러운듯한 엄마가 그냥 괜찮다고 했다. 


아빠가 엄마를 제일 우선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한참 생각해보았다. 내가 TV보고 누워있어도 시키지 않고 당신이 직접 청소를 하기 시작하던 그 무렵부터였나 싶다.


Posted by cox4 :

사직구장

2012. 5. 27. 02:30 from 또는 외면일기

화요일 오후 1시 40분 경, 고양을 가는 전철 안 옆 자리에 앉은 모자의 대화.


아들: 부산 사직 구장은 왜 사직 구장이야?

엄마: 몰라. 난 사직이라고 해서 처음에 사직공원 있는데 거기 있는 줄 알았어. 왜 사직구장이야?


같은 것을 궁금해 한 모자가 원당역에서 내리려고 일어섰다. 엄마는 세로 줄무늬 자켓을 입었고 아들은 가로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있다. 어쩐지 싸울 일이 없을 것 같은 모자이다.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