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

2014. 9. 9. 02:18 from 그래서 오늘

추석 연휴라 오랜만에 대구집에 다녀왔다. 기차를 타기 직전까지 작업을 했고, 2년 여의 작업을 일단 끝났다. 이번 연휴는 며칠, 아니 실은 2년 여의 긴장이 빠져나가는 시간이었다. 좁아졌던 어깨가 더 좁아진 아빠. 엄마는 이제 할머니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은 얼굴이 되어있었다. 뱃살 좀 빼야겠다며 놀리자, 배가 나와서 벨트하지 않아도 엄청 좋다며 웃는 엄마. 엄마 옷을 사고 따라 간 언니 옷도 사고. 같이 밥도 먹고. 쇼파에 드러누우워 테레비도 보고. 잠이 밀려왔다. 그냥 잠이 아니라 아주 깊은 곳에서 빠른 속도로 밀려오는 잠이다. 자도 괜찮은 상황을 알고 오는 잠이다. 대구에 오면 종종 만나는 종류의 잠이기에 기다렸다는 듯이 잤다. 몸이 바닥에 흡수될 것처럼 깊이 내려갔다. 그렇게 낮잠과 밤잠을 몇차례. 몸이 흐물흐물해졌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났다.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지는 못하지만 깊은 편안함을 주는 친구들이다. 1-2년에 한 번씩 만나서 사는 이야기 가볍게 나누었다. 이번엔 오랜 공백 탓인지, 제각기 사는 것이 힘들었는지 밥 먹다가 목소리가 커졌다. 그럴듯한 이야기, 편하게 할 수 있는 정도의 이야기들만 나누다가 어느 순간 그 경계가 뚫어져버린 것이다. 자격지심과 허세란 단어가 오갔던가. 눈물도 터졌다.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좋다고 고맙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라도 이야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이런 이야기 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혹은 너네들에게만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하는 친구들. 한 차례 엉킨 감정이 풀리고나자 눈물 폭발하지 않은 나에게도 구질구질한 이야기 해보라며 농담을 하는 친구들. 근데 나는 격한 감정은 많이 정리가 되었고. 친구는 화장실 가려고 자리를 비우면서 고등학교 1학년 쉬는 시간에 했던 말을 그대로 한다. 자기 없을 때 자기 욕하지 말라고. 어쩜 하나도 안 변하냐며 웃음. 싸우고 삐치고 다시 헤헤 거리는 것을 반복했던 고등학교 때처럼 서러운 눈물을 쏟고도 다시 시시껄렁한 이야기들. 


다시 집. 혼자 사는 집. 이사 오면서 가구는 책상과 침대만 샀다. 잠이 하루의 컨디션을 좌우하기에 침대는 가급적 심플하고 편안한 걸로 사려고 했다. 책상은 햇볕 좋은 날, 혹은 잠이 오지 않는 새벽 글을 쓰기 좋은 것을 사려고 했다.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사이즈의 책상을 샀지만 앉아서 편안하게 글을 쓴 적은 없다. 하고 있던 작업 때문에 작업실의 책상에 앉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오늘에서야 여유있는 마음으로 앉아보았다. 집에 와서도 한차례 깊은 낮잠을 자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소식을 보고 한참 멍하니 있다가 노래도 한참 듣다가. 책을 읽기 전 책상에 앉아보았다. 오랜만이다.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