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를 보내는 몸

2015. 11. 12. 00:46 from 그래서 오늘

오후부터 왼쪽 골이 아프다. 두통. 내가 제일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고통이다. 지끈지끈하게 머리가 아파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아침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잠이 부족하여서 30분만 자고 일어나 일을 하고, 저녁엔 강의를 들으러 가려고 했다. 알람을 맞추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울먹이면서 일어난 일을 설명하는데, 나도 덜컹 가슴이 내려앉았다. 집으로 오라고 하고 일단 보일러를 틀었다. 마음이 추울테니 방이라도 따뜻해야 한다. 그리고 물을 끓였다. 따뜻한 물을 주어야겠다. 그리고 또 뭘해야 하지. 종종거리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출구가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 뇌가 숨을 쉬지 못한다. 나의 일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생각들이 복잡하게 들이닥쳤다. 과부하다. 두통시작.


엄마도 두통이 있었다. 평소엔 괜찮지만 뭔가 근심이 생기거나 힘들면 두통으로 바로 넘어간다. 그걸 닮았다. 출구가 없는 문제를 잡고 끙끙 앓던 20대 초반은 자주 두통이 왔고 정말 싫었다. 그렇다고 일상 생활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괴로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친구가 가고 나도 강의를 들으러 갔다. 강의를 듣는 중엔 괜찮았는데 마치고 집으로 오니 다시 콕콕 두통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내면을 읽는 것이나 마음을 다스리는 법에 관심이 많은 것은 이 두통 때문이었다. 주로 내면의 문제로 두통이 시작 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고, 두통이 한 번 시작되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에 마음의 평안을 위해 애써왔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내 책임을 넘어서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가급적이면 어떤 상황이 닥칠 지 미리 예상해 준비하려고 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20대 후반부터는 두통의 횟수가 많이 줄었다. 그래도 두통이 오면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거나, 머릿 속에서 문제를 일단 떠나보내려고 하거나, 잔다거나, 걷는다거나 하는 방법을 취했다.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글쓰기다. 그 문제의 상황에 대해서, 그리고 나의 복잡한 감정에 대해서 그대로 적어나가다보면 선택해야 할 것과 포기해야 할 것이 보인다. 그러면 선택지 중에 장단을 따져서 선택을 하거나, 뭔가 노력을 해야 할 것의 목차를 적어보거나 과감히 포기하기로 마음 먹거나 하면서 나름의 결론을 낸다. 그렇게 한바탕 적고나면 두통이 조금 누그러진다. 숨 쉴 구멍이 생긴 것이다. 


지금도 그래서 적고 있다. 무엇이 이렇게 나를 짓누르는지는 조금 더 살펴봐야겠다. 친구에게 닥친 상황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일단 잠을 자야겠다.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