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첫 차를 타고 나가 촬영을 했다. 11시쯤 집에 와서 잠시 쉬고 다시 오후 인터뷰 촬영. 한 사람의 깊은 이야기를 값도 치르지 않고 들었다. 등 언저리에 떨어져 있던 기억이 꿈틀댔다. 들은 말을 소화하기 위한 움직임. 매번 비슷한 이야기를 하지만 할 때마다 다시 마음이 움직이는 친구와 저녁을 먹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확장된 마음이 다 접히지 않는다. 잠은 쏟아지는데 눕지 못하고 메모를 하고있다. 요즘 김소연 시인의 <수학자의 아침>이라는 시집을 한 권 들고 다닌다. 전에는 읽어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요즘에는 아주 조금 읽힌다. 몇 문장에 이렇게 많은 감정을 싣다니. 시인의 삶은 나와는 다를 것이다. 나의 속도와는 다를 것이다. 이렇게 새벽에 시작해 눈을 껌벅껌벅하면서도 잠들고 싶지 않은 나의 욕망과는 다를 것이다. 그래서 읽는다. 그래서 삼킨다. 더 많이 삼키고 더 가만히. 비로소 착지. 전원 o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