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얼마나 들리는 지에 따라서 컨디션을 판단할 수 있다. 앨범 전체가 술술 들리면 상태 오케이, 한 음악만 주구장창 들으면 스트레스 중, 음악을 들으려고 이어폰을 꽂았으나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잡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하면 스트레스 상, 음악이고 뭐고 플레이 버튼 누를 생각조차 못하면 몸까지 경직된 상태. 오늘은 빗소리에 기분 좋게 눈을 떠서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스피커 라인을 잡아서 '어떤날2'를 들었다. 미세한 기타 사운드와 드럼의 박자까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절반 정도 듣고 있는데 룸메 친구가 일어나서 거실에서 테레비를 켜는 소리가 났다. 테레비 소리와 섞여서 정지버튼을 누르고 일어나 씻고 밥을 차렸다. 어제 썰어놓은 채소들을 후라이팬에 넣어서 볶았다. 가지, 양파, 청경채, 파프리카에 소금만 조금 넣고 볶았는데도 이렇게 맛있을 수가! 집에서 밥을 먹으면 내가 좋아하는 야채들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채소들을 물에 살짝 데쳐먹거나 생으로 먹는 편인데, 이렇게 심심(싱싱)한 맛을 좋아하는 것인지, 귀찮아서 이걸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친구도 맛있다고 했다. 밥의 양이 조금 부족하여서 밥 먹으면서 동시에 감자를 세 개 삶았다. 삶은 감자 먹으면서 '로맨스가 필요해'4회를 보고 집을 나왔다.
작업실 창문이 크고 밖에 초록빛 은행나무로 가득 차 있어서 비가 오면 장관일 거라 기대하고 있었는데, 올 여름 가뭄이라 작업실 이사한 후 비가 오는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오늘은 볼 수 있겠다 싶어 어제부터 기대했는데, 오후에 출근하니 비가 그쳐있다. 시원한 바람만 들어온다. 비가 오면 옆의 카페에서 따뜻한 라떼를 사먹으려고 했는데 그냥 포기.
잠깐 일을 하고 청소도 하고 일기 쓰는 중이다. 한 가지 일만 더 하고 홍대쪽으로 가야겠다. 서점에 잠깐 들러서 트위터에서 보고 찜해둔 책도 사야지. 교육 관련 책이라 공부방 교육비 카드로 살 수 있다. 이렇게 여유있는 주말이 너무 오랜만이라 낯설지만 반갑다. 더 필요하다. 여유도 로맨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