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책상 정리를 했다. 옆 책상을 쓰던 친구가 나가서 내가 그리로 옮기게 되면서 묵혀왔던 짐들도 함께 정리를 했다. 한 시간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두 시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청소를 마치고 깔끔해진 책상이 마음에 들어 우두커니 서서 한참 쳐다봤다. 그러다 책상 옆에 세워놓은 애니메이션 영화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소중한 날의 꿈]이라는 애니메이션인데, 피디님이 아는 분이라 우리 작업실에 포스터를 주고 가셨다. 성장영화 답게 푸른 빛의 포스터. 거기에 적힌 카피가 '네가 고개를 끄덕인 바로 그 순간부터야'이다. 나는 이 카피가 참 좋다. 무슨 말인지 머리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무슨 느낌인지는 단번에 알 것 같다. 그 포스터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결국 고개를 한 번 끄덕이게 된다.
고개를 끄덕이는 행위는 흔하지만 참 귀중한 것 같다.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우리는 고개를 가볍게 두어번 끄덕인다. 잘 듣고 있으며 당신의 이야기에 공감한다는 표시다. 그 표시가 절로 나오는 경우, 그 대화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에게 유익하다. 물론 상대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고 있으면서도 대화를 빨리 끝내라는 제스쳐로 고개를 가볍게 끄덕일 수 있다. 그런 끄덕임이 있는 대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온다.
내가 좋아하는 끄덕임은 혼자 가만히 딱 한 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자신의 사고나 태도에 변화를 일으킬만한 사건을 경험하거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한참 곱씹은 뒤에 가만히 한 번 고개를 끄덕이는 것. 그 끄덕임은 곱씹음을 통해 얻은 통찰이 있다는 끄덕임이다. 그런 끄덕임은 대게 삶에 반영된다. 나에게 한 번의 끄덕임이란 그렇게 느껴진다. 이 영화의 포스터에 나오는 '끄덕이는 순간'도 그럴 것이다. 끄덕인 후에는 반드시 성장한다. 한 문장의 카피가 잊고 있었던 소중한 순간들을 즉각적으로 불러온다. 이런 문장에 나는 반드시 끌린다.
그리고 한 달 전쯤에야 본 유명한 일본영화 [러브레터]에서도 즉각적인 감정을 불러오는 그런 순간을 보았다. 주인공이 침대에 누워있다가 우체부가 부르는 소리에 몸을 일으켜 실내화를 신으려다가 실내화를 툭 쳐서 실내화가 카메라 앞으로 쑥 밀려오던 그 순간. 거리를 두고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영화 속 실내화가 "너 거기서 보고 있지?" 하면서 말을 걸어왔다. 그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 '극'영화를 본다는 자세로 화면을 보던 나는, 그 실내화의 말 때문에 뒤로 빠져서 볼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여기서 보고 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다지 않는가.
그런 순간이 있으면 영화는 관객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 다큐멘터리는 실제라는 믿음 때문에 그런 순간들이 더 많을 것이다. 어떤 '순간'을 담아내는 감성 풍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이번 작업도 나의 그런 '순간'에서 시작한 것이지만, 풍부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가장 아쉬운 점이다.
삶이 풍부해지려면 순간을 가슴에 잘 담아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졸업을 하던 그 순간, 그 곳에 갔던 그 순간, 변명임을 알게 된 그 순간,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던 그 순간, 체육시간을 마치고 운동장 수돗가에서 손을 씻던 그 순간, 빗방울이 떨어지던 그 순간, 수줍게 말하던 그 순간, 마음 아팠던 그 순간. 순간의 감정들을 잊는다면, 삶은 얼마나 건조할까? 하지만 삶이 정말 풍부해지려면, 지금 이 순간을 잘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걸 느끼는 지금 이 순간, 생라면을 부셔 먹고 이 닦기 귀찮다고 생각하는 지금 이 순간,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인 지금 이 순간.
고개를 끄덕이는 행위는 흔하지만 참 귀중한 것 같다.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우리는 고개를 가볍게 두어번 끄덕인다. 잘 듣고 있으며 당신의 이야기에 공감한다는 표시다. 그 표시가 절로 나오는 경우, 그 대화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에게 유익하다. 물론 상대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고 있으면서도 대화를 빨리 끝내라는 제스쳐로 고개를 가볍게 끄덕일 수 있다. 그런 끄덕임이 있는 대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온다.
내가 좋아하는 끄덕임은 혼자 가만히 딱 한 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자신의 사고나 태도에 변화를 일으킬만한 사건을 경험하거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한참 곱씹은 뒤에 가만히 한 번 고개를 끄덕이는 것. 그 끄덕임은 곱씹음을 통해 얻은 통찰이 있다는 끄덕임이다. 그런 끄덕임은 대게 삶에 반영된다. 나에게 한 번의 끄덕임이란 그렇게 느껴진다. 이 영화의 포스터에 나오는 '끄덕이는 순간'도 그럴 것이다. 끄덕인 후에는 반드시 성장한다. 한 문장의 카피가 잊고 있었던 소중한 순간들을 즉각적으로 불러온다. 이런 문장에 나는 반드시 끌린다.
그리고 한 달 전쯤에야 본 유명한 일본영화 [러브레터]에서도 즉각적인 감정을 불러오는 그런 순간을 보았다. 주인공이 침대에 누워있다가 우체부가 부르는 소리에 몸을 일으켜 실내화를 신으려다가 실내화를 툭 쳐서 실내화가 카메라 앞으로 쑥 밀려오던 그 순간. 거리를 두고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영화 속 실내화가 "너 거기서 보고 있지?" 하면서 말을 걸어왔다. 그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 '극'영화를 본다는 자세로 화면을 보던 나는, 그 실내화의 말 때문에 뒤로 빠져서 볼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여기서 보고 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다지 않는가.
그런 순간이 있으면 영화는 관객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 다큐멘터리는 실제라는 믿음 때문에 그런 순간들이 더 많을 것이다. 어떤 '순간'을 담아내는 감성 풍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이번 작업도 나의 그런 '순간'에서 시작한 것이지만, 풍부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가장 아쉬운 점이다.
삶이 풍부해지려면 순간을 가슴에 잘 담아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졸업을 하던 그 순간, 그 곳에 갔던 그 순간, 변명임을 알게 된 그 순간,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던 그 순간, 체육시간을 마치고 운동장 수돗가에서 손을 씻던 그 순간, 빗방울이 떨어지던 그 순간, 수줍게 말하던 그 순간, 마음 아팠던 그 순간. 순간의 감정들을 잊는다면, 삶은 얼마나 건조할까? 하지만 삶이 정말 풍부해지려면, 지금 이 순간을 잘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걸 느끼는 지금 이 순간, 생라면을 부셔 먹고 이 닦기 귀찮다고 생각하는 지금 이 순간,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인 지금 이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