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없다

2010. 5. 2. 02:09 from 그래서 오늘
오늘 하루종일 촬영을 했다. 밥도 못 먹고 쉴틈 없이 했다. 막차타고 집에 오는 길에 참치김밥 하나 사서 먹었더니, 더 배고프다.

여의도에서 노동자 대회 촬영을 했다. 간간이 아는 사람들도 만났다. 여의도 공원에 있는 나무들이 햇빛을 받아 그야말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카메라에 담긴 선명하고 맑은 잎들을 보고 눈을 정화시켰다. 만오천여명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간 공원. 뒷정리를 하는 사람들과 시멘트 바닥을 굴러다니는 쓰레기들. 서늘해진 바람을 느끼며 카메라를 정리하고 벤치에 앉았다. 휑한 공원을 보면서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담배를 폈더라면 이런 순간 반드시 꺼내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담배맛도 모르고 담배도 없다.

두리반 공연 촬영. 오늘 메이데이를 맞아 51+ 파티가 있었다. 오후부터 있었는데 나는 여의도 촬영 마치고 갔다. 지하에서 캐비넷이랑 연영석씨 공연까지 촬영했다. 오랜만에 보는 공연인데다 분위기도 너무 좋아서 촬영하면서도 좋았다. 노래가 위로가 되었다. 중간에 3층에 촬영을 하러 갔는데 더 넓고 사람도 많았다. 처음 촬영한 밴드가 '적적해서그런지'라는 밴드였다. 여자 네 명의 밴드. 섹시한 차림의 그녀들이 기타를 들고 있었다. 약간 말랑할거라는 기대와 달리 강한 사운드. 기타를 치는 모습이 너무 멋져서, 사운드가 너무 강렬하고 좋아서 같이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공연의 분위기를 많이 탄 것일수는 있지만 멋있었다. 사람들이 다 서있어서 밴드 풀샷을 잡기가 어려웠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그녀들과 정면으로 마주서고 카메라를 올렸다. 네명이 파인더에 꽉차게 다 잡혔고 그녀들의 에너지가 카메라를 뚫고 나올 기세였다. 그 순간의 강렬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순간적이긴하지만 굉장한 만족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특히 기타를 치던 분은 너무 멋있어서 멋있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 밴드 뿐만 아니라 공연에 온 사람들 모두가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장소에는 정말 오랜만에 간 것 같다. 더러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간 것도 좋지만, 그냥 놀았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 제대로 논다는 것이 무엇인지 좀 보고 왔다.

발은 퉁퉁 붓고 몸은 지칠대로 지쳤는데 정신은 또렷하다. 하루종일 촬영 외에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니 다른 생각하기 싫어서 촬영을 더 했던 것 같다. 버스를 타고 오는데 스물스물 생각이 기어나왔다. 요즘 하루에 한 번 정도 아빠의 말이 생각난다. 인생이란 원래 이런건줄 알고 살았다는 아빠의 말이 생각난다. 그 쓸쓸해하던 표정과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그 표정을 흉내내며 인생이란 원래 이런가보다, 하고 하루를 넘기려고 노력한다. 기대가 없다.
Posted by cox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