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는 외면일기

그 무렵부터 아빠는

cox4 2012. 6. 30. 17:15

아빠와 엄마와 함께 가게 문을 닫고 차를 타러 주차장으로 갔다. 열 발짝 정도 앞서 가던 아빠가 갑자기 멈춰서 뒤를 돌아 엄마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식당예약시간에 늦었는데 왜 그렇게 느긋하게 오냐는 성격 급한 아빠의 재촉이라고 생각해 아빠 보라고 걸음을 서둘렀다. 아빠는 그래도 돌아서지 않고 기다리다가 엄마에게 팔을 뻗었다.


"그거 도."


말없이 들고 있던 가방을 내미는 엄마와 그걸 받아드는 아빠. 아빠의 오른손에 엄마가방, 왼손에 장본 것들이 있다. 엄마의 손엔 딱 보기에도 가벼워 보이는 종이가방이 남아있었다.


"그것도 도."

"이건 괜찮다."

"도."

"괜찮다. 가볍다."

"경화야 니가 엄마 종이가방 들어라."


그러고 아빠는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엄마의 종이가방엔 새로 산 원피스 하나 들어있었다. 아빠 말대로 엄마의 가방을 받아들어야 하는 걸까 망설이고 있는데, 뭔가 쑥스러운듯한 엄마가 그냥 괜찮다고 했다. 


아빠가 엄마를 제일 우선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한참 생각해보았다. 내가 TV보고 누워있어도 시키지 않고 당신이 직접 청소를 하기 시작하던 그 무렵부터였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