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오늘

경쾌함을 위하여

cox4 2010. 7. 12. 13:01
대구에 다녀왔다. 금요일 밤 기차를 타고 내려갔다. 가기 전에 마음 상태가 좀 안 좋았지만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몸이 먼저 무너져버렸다. 콧물로 시작해서 현기증, 몸에 힘이 주어지지 않는 상태. 전형적인 퍼짐. 결국 한 컷도 촬영하지 못하고, 영화 GV만 마치고 올라왔다. 억지로 촬영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기차에서 창밖 풍경을 보고 싶었는데, 내가 앉은 자리는 창이 없었다. 짙은 녹음의 산 대신 162번 버스 창으로 회색의 빌딩숲들을 보았다. 버스가 신호에 걸려 서 있는데, 50대와 30대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뛴다. 횡단보도의 파란불이 다 되어가는 것이다. 차 사이를 전속력으로 달리는데 웃고 있다. 긴 머리를 날리며 뛰어가는 모습이 경쾌하다. 무단횡단 때문이라도 좋으니, 저렇게 경쾌하게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면 마음도 경쾌해질 것 같았다. 가장 최근에 뛰었던 것은 금요일 밤 기차시간이 간당간당해서 뛰었을 때이다. 하지만 들고 있는 카메라와 삼각대, 가방 때문에 절대 경쾌하지 않았다. 허덕였다. 경쾌하게 뛰기 위해서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뭐? (몇 달전부터 봐두었던 바로 그 조깅화!)

조용필 아저씨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가끔 듣는다. 반복적으로. 내가 꿈꾸는 것은 '여기'에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내가 원하는 것은 항상 '거기'에만 있는 것 같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내가 가진 것을 보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것만 보는 전형적인 어리석은 상태.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만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 거기도 결국 내가 가면 여기가 되고 만다는 걸, 경험해봤으면서도 자꾸만 눈을 돌리게 된다. 그래서 가만히 눈을 감아본다. 보이는 것은, 바로 그 조깅화. (이게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ㅎ)

다시, 서울이다. 이젠 내 일상이 여기에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있을 때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해 많이 보챘던 시간들이 아쉽다. 미안하다. 여전히 가슴이 아려 두 눈에 힘을 꼭 주어야 하지만, 앞으로도 '거기'는 '여기'가 될 수 없으므로...'거기'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기어서라도 가고 싶지만, 지금의 굳어진 머리로는 그런 방법마저 보이지 않으므로. 가기 전에 상처로 몸이 너덜너덜해질 것이므로. 이기적이므로. 각종 '이므로'를 갖다 붙이고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