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달에서 회의를 마치고 작업실로 걸어왔다. 대학로에서 창경궁과 창덕궁. 며칠 따뜻했던 날씨 덕분인지 새싹이 움트고 꽃이 피기 시작했다. 4월 초에 돋아난 싹이 제일 예뻐보인다. 맑은 연둣빛, 촉촉한 꽃잎. 시작과 변화는 언제나 설렌다.
작년에 갔던 섬에 짧게 다녀왔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여행이었다. 카메라를 가져온 사람이 없어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만 몇 장 남겨왔다. 내려놓고 싶은 생각들이 많아서 푸른 나무도 보고, 넓은 바다도 보았다. 하지만 내려놓고 싶다는 의지를 내려놓지 못한 탓인지,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았다. 이번 여행은 그런가보다 했다.
서울로 돌아온 다음날, 피곤한 몸을 들어 사무실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이어폰을 끼고 mp3를 플레이했는데, 음악이 들렸다. 지금껏 전혀 들리지 않았던 가사도 들리고, 전주도 들리고, 코러스도 들린다. 버스를 타도 잡생각이 많아서 일부러 애를 쓰지 않으면 이어폰에서 나오는 음악도 듣지 못했던 나인데, 집중하지 않아도 음악이 들리는 것이다. 그래도 전혀 버리지 못한 것은 아닌가보다, 하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행이란 건 내가 알지 못하는 쓸모도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뿐, 다음날부터 전혀 들리지 않았다. 어제는 사람들이 많은 버스를 타는 것도 힘들어서 몇 대를 그냥 보냈다. 그러다 집에 너무 늦게 도착하고. 이게 다 더위 탓이라고 생각한다.
사무실에 나올 때부터 오랜만에 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었다. 그러다 집에 와서 밥을 먹고 테레비를 보는데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앗 나도 전화하려고 했는데..." 이런 말을 내뱉었지만, 목소리가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지는 친구에겐 전혀...
기운이 빠지고, 쓸쓸한 것은 모두 더위 탓이다.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