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관련기사) 문제로 할매들이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오래 전에 들었었다. 시간이 나면 한 번 가야지, 하면서 여태 못 가고 있다가 이번에 영상을 만드는 친구들이 간다고 하여서 지난 주에 다녀왔다. 밀양은 내가 국민학교 4학년 2학기부터 6학년 1학기까지 살았던 곳이다. 친구들에게 나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하니, 왜 그러냐고 물어왔다. 그 이전에도 행복했을텐데 기억이 잘 나지 않고, 그 시절엔 친구들과 자연과 더불어 마음껏, 자유롭게 놀았던 기억이 가득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에게 밀양은 풍요로운 이름이다.
송전탑이 들어서는 지역 곳곳에 할매들이 대부분인 주민들이 임시거처를 마련하고 투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벌써 몇 년째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올해 초 한 할아버지의 분신으로 조금 알려지게 되었다. 우리는 두 곳의 투쟁현장을 찾아갔는데, 한 곳은 산의 꼭대기에 있었다. 해발 500미터의 산꼭대기를 올라가면서 헉헉거리다가도 그 마을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기를 반복했다. 매일 그곳을 오르내리는 할매들이 차린 임시거처를 보고는 정말 감탄하였다. 천막 안에 가스레인지를 설치하고 가스레인지를 놓을 2단 선반을 주위의 나무로 만든 것이다. 한 할아버지는 그 날도 도마를 만들고 계셨다. 할매들의 열정적인 연기와 유쾌함도 인상적이었지만, 이 선반이 나에게 가장 큰 감흥을 주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야말로 목숨을 거는 투쟁의 와중에도 유지되는 생활감각이!
밀양에 가기 전에 다큐멘터리 제작 때문에 스트레스를 좀 받고 있었다. 오기 직전 가까운 지인들에게 엄살도 부리면서 살짝 풀린 마음이, 밀양의 할매들 덕분에 시원하게 날아간 것 같다. 지금은 대범하게 살아갈 시기라고 2단 선반이 말해주었다. 할매들은 겨울을 준비하여 해발 500미터의 산꼭대기에 구들장이 놓여진 황토집을 만들고 있다. 구들장을 옮기는데만도 한 달이 걸린다는데...이리저리 재고 싶은 못난 마음이 나를 옭아맬 때, 이 사진들을 보아야겠다.
할매, 친구들과 하루만에 만든 영상 <밀양주민들이 직접하는 송전탑 국정감사>